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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기발랄하고 기상천외한 강좌로 대중과 만난다”
“재기발랄하고 기상천외한 강좌로 대중과 만난다”
  • 김봉억 기자
  • 승인 2013.07.08 10: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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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정한 연구 노동자들’, 인문학 협동조합 꾸린다

지난 6월 21일, 서울 서교동 수운잡방에서 열린 '인문학 협동조합' 준비위원회 4차 총회 모습이다. 사진제공 = 인문학 협동조합 준비위원회
“인문학 협동조합은 ‘비정규직 강사의 협동조합’? 황당했다. 대학에서 강의 자리를 얻지 못한 강사들이 일자리를 만들려고 설립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은 ‘진짜 인문학’을 하고 싶은 것이다.”

인문학 협동조합 준비위원회에서 총괄기획 책임을 맡고 있는 임태훈 성공회대 외래교수(34세ㆍ교양학부)는 “박사수료 이후, 대학에서 강의를 얻지 못하고 있는 ‘불안정 연구 노동자’들의 연대 거점이 필요하다는 문제인식에 출발했다”면서도 “장기적으로 출판ㆍ예술 노동자들도 함께 하기를 바란다. 대학이 아닌 다양한 곳에 있는 분들과 연대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만화, 영화, 역사 등 다양한 분야의 마니아는 물론 시나리오 작가, 소설가, 시인, 음악가 등 다양한 예술 노동자들과 함께 ‘총체적 인문학’을 지향한다.

인문학 협동조합 설립에 88명의 인문학 연구자들이 뜻을 함께 하고 있고, 20여명이 구체적인 준비 작업을 하고 있다. 7월 말에 인문학 협동조합 발기인 총회를 갖고, 8월에는 정식으로 설립을 완료할 예정이다. 인문학 협동조합은 크게 세 가지 주요 사업을 선정해 준비 중이다. 시민인문학과 도농인문학, 인문학 연구자 출판ㆍ기획 사업이다. 웹기반 인문학사전과 실버인문학에도 관심이 많다.

30대 초중반 신진세대들이 주축

인문학 협동조합은 박사수료 이상의 ‘불안정한 연구노동자’들이 주축을 이룬다. 대학원 박사과정생, 박사수료, 시간 강사 등이 주로 참여한다. 30대 초ㆍ중반의 신진세대들이다. 이들과 뜻을 함께하는 10여명의 전임교수는 서포터즈 역할을 맡았다.

내년 1월 시행 예정인 ‘강사법’은 이들이 인문학 협동조합을 준비하게 된 주요 배경 중에 하나다. 인문학 협동조합 설립 준비에 참여 중인 홍덕구 씨(31세ㆍ국문학)는 박사논문을 준비 중이다. “예전에는 박사논문을 쓰면서 강의를 하며 최소한의 생계비는 유지가 됐다. ‘강사법’의 영향으로 박사학위를 가진 전업강사를 중심으로 강의가 배치되면서 강의할 수 있는 기회를 잡기도 힘들어 졌다. 인문학 협동조합은 강사로서의 진입장벽도 낮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인문학 협동조합은 시간 강사들의 위기의식에서 ‘기회’를 찾게 됐지만, 상아탑 인문학을 비롯한 인문학의 현실에 비판적인 문제인식에서 비롯됐다. 임태훈 외래교수는 “‘학진 체제’에서 연구과제를 신청하고 연구비를 따내고 연구결과를 보고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진짜 인문학’운동을 하려고 한다”며 “연구자 자신도 논문 글쓰기와 하고 싶은 연구가 분리되면서 많이들 지쳐있다. ‘학진 체제’에 얽매여 길들여지는 것은 더 이상 못 참겠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진짜 인문학’은 무엇일까. 인문학 협동조합은 ‘생활’과 ‘삶’을 주목하고 있다. “총체적인 인문학적 사고가 필요하다. 우리의 생활에 밀착하는 게 중요하다. 그동안 ‘학진 체제’에서 하지 못한 게 무엇인가? 연구자들은 다양한 언어를 갖지 못했다. 논문 글쓰기에선 ‘나’는 빠져 있었다. ‘나’를 밀어 넣고 글을 쓸 수 있다면, 글쓰기 전략도 달라질 것이다. 다양한 소통의 방법과 언어를 구사하고 싶다.”(임태훈) 인문학 협동조합은 다양한 종류의 미디어를 활용할 계획이다. 팟캐스트 활동은 물론 웹진, 웹툰 등을 활용하고, 강의가 아니라 놀이로서의 인문학 등 다양한 방식과 포맷으로 대중에게 접근하겠다는 것이다.

홍덕구 씨는 “상아탑 인문학은 이미 그 자체가 구조화돼 있다”며 “새로운 발상과 아이디어를 구현하기 힘들다”고 했다. 그는 “협동조합은 동등한 관계를 이룬다. 학벌과 학력, 나이, 경력을 떠나 발상 대 발상, 지식과 지식이 직접 소통하는 관계를 추구한다”며 “젊은 연구자들이 동등하게 소통하며 자유로운 상상력을 펼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인문학 협동조합은 수유 너머, 푸른역사 아카데미 등 인문학 연구공동체와 수운잡방 등 다양한 인문학 모임과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허브 역할을 하고 싶다고 했다. 내년 초에는 인문학 협동조합의 색깔과 기획력을 보여 줄 예정이다. “대학의 인문학, 백화점 인문학, 고전강독식의 인문학은 지양한다. 기존 인문학 강좌를 뛰어 넘어 재기발랄하고 기상천외한 인문학 강의를 한꺼번에 집중적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임 외래교수는 ‘인문학 강좌를 통해 사람을 만나는 비엔날레’를 야심차게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대학 밖 인문학 운동의 가능성

이들 신진세대들의 뒤에는 10여명의 든든한 우군이 있다. 인문학 협동조합의 시민인문학팀에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가, 도농인문학팀에는 한만수 동국대 교수가 참여하고 있다. 권보드래 고려대 교수와 권명아 동아대 교수, 김춘식ㆍ박광현 동국대 교수도 서포터즈를 자청하고 나섰다. 국문학쪽에 적을 둔 이들 역시 비교적 '젊은' 인문학자들이다.

한만수 동국대 교수는 “(인문학 협동조합은) 젊은 연구자들이 중심이 돼 준비를 하고 있으며, 전임교수들은 뒤에서 돕는 역할을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의 지적이 뼈아프다.  “지금 대학에선 학문간 소통이 부족하다. 분과학문 내에서도 세부전공체제에서만 맨 돈다. 같은 분야의 전문가끼리도 소통이 안 되는 현실이다. 이런 현실인데, 대중과 소통이 되겠나?” 그래서 한 교수도 인문학 협동조합에 거는 기대가 크다.  “대중과 인문학은 어떻게 만나는 게 좋은 지부터 고민하고 있다. 대중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인문학 교육내용부터 재구성해야 한다.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래야 인문학이 산다. 이런 대학 밖의 인문학 운동이 대학 안의 교육에도 자극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 인문학 교육내용과 대중과의 소통까지 쇄신이 필요하다는 그의 말에서 이 협동조합 운동의 미래와 가능성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들이 쥔 소통과 상상력이 어떤 날개를 달지 궁금하다.

김봉억 기자 bo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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