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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곳에서 독일 이상주의 문화유산을 말하는 이유
지금 이곳에서 독일 이상주의 문화유산을 말하는 이유
  • 교수신문
  • 승인 2013.07.06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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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 『예술과 비판, 근원의 빛』 이순예 지음 ┃한길사┃432쪽┃25,000원

 

▲ - 현대사회의 병리에 대한 ‘분석과 해결’을 모색하는 견지에서 결론적으로 나는 아도르노의 예술론에 큰 기대를 건다. 비대칭적으로 발전해나간 인간의 이성능력에 다시 균형을 잡아줄 가능성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체계가 그냥 객체가 아니라 개인이 참여해서 만들어나갈 무엇이라면, 개인이 먼저 자신의 욕구와 지향에 대해 뚜렷한 의식을 지니고 가능성과 한계를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는 아도르노의 주장에 21세기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사회학자 아도르노가 예술론을 통해 제시하려는 전망은 인간존재의 이원성이 체계와 구조의 역동성을 보장하고 인간적 가능성을 실현시킨다는 것이다. ‘고전적인’ 근대가 체계의 완강함으로 인간의 삶을 파탄으로 몰아갔다는 현실진단에 따라 근대에 내장된 ‘비합리’를 저항의 거점으로 내세우는 논리다. 예술은 그 고유한 형식의 힘으로 비합리가 ‘사적 주관성’으로 추락하는 것을 막아준다. ―본문 중에서
2008년 6월의 일로 기억한다. 기말시험을 앞둔 즈음이었는데, 다음날 해야 할 마지막 강의를 준비하던 나에게 책 한권이 꼭 필요했다. 도서관에서 검색을 하니 ‘대출중’이었다. 저녁시간은 아직 아닌 늦은 오후, 광화문행 버스를 탔다. 서울신문사 앞에서 내려 교보문고로 향하려는데 ‘방패’를 든 전경들이 진로를 안내했다. 아직 ‘투구’는 안 쓴 상태였다. 젊음이 싱그러운 그 청년들이 왜 내가 갈 길을 지시하는지- 곧장 광화문 사거리로 가지 못하고 청계 광장을 통과해 종로 쪽으로 방향을 트는 행렬에 나도 끼어들 수밖에 없었다. 그 ‘우회로’가 이 책의 방향을 지시했다.

‘배재’의 場이 된 광장
목적지가 뚜렷한 ‘우회로’의 행인들을 바라보는, 광장을 점한 ‘룸펜 프롤레타리아트’의 시선에 합당한 어휘를 나는 여전히 찾지 못한 채다. 당시 촛불집회는 초여름의 태양이 빛을 거둔 시간에 정점을 이뤘고, 아직 빛이 남아있는 그 시간대에는 실직자나 비정규직 아니면 노년층으로 이루어진 ‘대기자’들이 모여 퇴근하고 올 ‘정규직’을 기다리는 양상이었다. 그런데 6월 10일을 지나 하순으로 향하던 당시 ‘대기자’들은 더 이상 그 ‘기다림’을 이어갈 수 없었다. 그들은 그냥 거기에 남았다. 촛불은 사그라지는 국면으로 접어들었고 그 ‘대기자’들은 하늘을 가릴 지붕이 없어(obdachlos) 거리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은 이들로 탈바꿈되고 있었다. 그들의 기다림은 사회적 ‘배제’를 받아들이는 의식(Ritual)이었다.

 

알고 지내던 어떤 좌파 교수님은 ‘황망한 중에 묘하게 때가 맞아 바닷가에 이틀 휴가를 다녀온 후’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노라고 상반기를 정리했다. 정규직에게 6월의 촛불은 한해의 활동을 정리하는 목록에 들어갈 사안이었고, 지붕 없는 이들에게는 배제됐음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나는 한국사회에서 ‘광장모델’이 더 이상 작동할 수 없음을 확인했다. 2002년 세칭 ‘붉은악마’ 현상에서 광장이 자본과 국가주의에 포위되는 조짐은 이미 뚜렷했다. 광장의 해방감을 만끽해야 할 개인을 ‘대중’으로 만드는 ‘붉은 색’을 ‘퇴행’으로 분명하게 짚으면서 이데올로기 투쟁을 벌여야 하는 시대적 과제를 독문학 연구자들은 감당하지 않았다. 이념적 자산은 넘치는 편이었다.

하지만 너무 소극적이었고, 그러다가 대중의 기세에 투항해버렸다. 발터 벤야민을 ‘대중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이론가로 만드는 근거없는 자의적 수용이 범람하면서 인문학의 대중화는 천박화로 추락해버렸다. 광장에서 대중이 되도록 개인의 등을 떠미는 벤야민식 화법 앞에서 전문가들은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벤야민의 돌파력은 자잘한 촌평들로 분해돼 힘을 잃었다. 사람보다 광장을 더 신뢰한 결과였다. 나는 이 모든 현상들에서 혁명을 하고 싶었고 또 어쩌면 좀 더 근본적인 개혁을 할 수도 있었지만 끝내 좌절을 맛본 우리 세대의 한계를 봤다. 문제해결 의지를 쉽게 굽히지 않는 변혁론자들은 일반적으로 인품이 선하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의지가 공론화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나쁜 일을 저지르는 사람은 나쁘다. 고쳐야 한다고 지적하는 사람은 선하다. 이러한 선악의 이분법은 그 자체로서 진리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국가주의와 결탁한 자본주의가 ‘나쁜 일’이 구성되도록 하는 조건이라는 사실 역시 진리이다. 천국에 가는 일이 아니라 지상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관건이라면 선악보다는 그 선악의 이분법을 발생시키는 조건을 더 진지하게 사유해야 한다. 21세기 광장은 자본주의 극복을 위한 투쟁의 장이 될 수 없다. 그리고 우리는 정말 자본주의를 ‘지금’ ‘여기에서’ 극복하고 싶어 하는가. 솔직한 대답을 가지고 있을 필요가 있다.

자유주의와 이상주의
변혁론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구성원들의 자율성과 합의를 존중하는 ‘항구적 구성과정’으로서의 시민사회를 적극 사유해야 한다는 생각은 이렇게 해서 굳어졌다. 관념론은 자유주의적 변혁이라는 세계사적 과제를 이행하지 못한 독일 식자층이 현실적 좌절을 철저한 자기반성의 동력으로 삼은 결과 지구상에 모습을 드러낸 인류의 지적 자산이다. 계몽의 이상에 비춰 봤을 때 봉건적 잔재에 발목이 잡힌 독일의 현실은 ‘비진리’였다. 그들은 ‘현실은 비진리’라는 자신들의 출발점을 가감 없이 받아들였다. 조건을 ‘무시’하면 미래를 위한 전망 역시 좌절의 덧에 빠질 것임도 간파했다.

비진리인 현실에 발을 딛고 계몽의 이상에 다가가는 길을 택했다. 근대화의 독일적 길(Deutscher Sonderweg)은 인문학의 길이었다. 자유주의가 좌절한 사회에서는 개인의 자유와 행복을 끊임없이 환기시키는 이념의 빛을 관리할 필요가 절실함을 깨우친 독일 교양시민이 등장했다. 찬란한 관념의 세계는 개인의 머릿속에 둥지를 틀 수 있었다. 개인의식의 힘으로 봉건잔재와 군국주의 유산을 탈각시키는 독일 교양의 역사가 시작됐고 지금도 계속된다.

독일 이상주의 문화유산을 80~90년대 한국의 인문학은 ‘우리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경원시했다. 부르주아적 허위의식이라는 낙인을 찍어 개인의 내면을 공론장에서 추방시키는 데 공을 들였다. 리얼리즘은 현실의 계급적 구속성에 충실할 것을 주문하면서 중산층의 생활감정을 부추기고 정당화했다. 오늘날 한국인의 심성을 점령한 물질주의는 한국적 리얼리즘이 거둔 승리의 역사철학적 결과이다. 페미니즘은 고학력 여성들이 가사노동과 남성연구자들과의 경쟁 모두를 면제받을 수 있는 절묘한 선택으로 ‘성담론’이라는 신천지를 개척했다. 상류층 고학력 여성들이야말로 한국사회 양극화의 주범이다.

이러한 ‘비진리의 현실’을 보면서 나는 신자유주의는 광장의 함성이 아니라 물질주의를 거스르는 이념의 힘으로 극복될 수 있다는 생각을 굳혔다. 비물질적 가치를 사회적 프로그램으로 내세운 근대의 원형인 독일 이상주의를 본격적으로 소개할 계획을 세웠다.

처음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제목은 ‘체계와 감성’이었다. 개인이 체계의 강압에서 벗어날 가능성은 내면세계를 통해서만 열린다는 사실을 전면에 내세우고 싶었다. 중산층의 생활감정은 사회구성원의 내면을 체계에 복속시킴으로서 그들의 존재를 사회에서 배제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개인의 자율성은 체계가 침투하지 못하는 내면성에 의해 보장된다. 이 내면성을 매개로 사회이론과 예술론을 결합하는 내용을 쓰려고 노력했다. 故 박경리의 『토지』는 어느 날 도둑처럼 집필과정에 스며들었다. 내가 오래 연구한 독일적 근대의 비물질적 가치를 일제강점기를 소재로 삼은 소설에서 새삼 확인하게 해주신 박경리 선생님은 인류 보편적 가치의 명실상부한 구현자이시다.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


이순예 이화여대 강사·독일문학
독일 빌레펠트대에서 박사를 했다. 한국사회역사학회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예술, 서구를 만들다』, 『아도르노의 부정변증법 강의』(번역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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