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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적인 그의 독해는 자신의 사고 위험성에서 기인한다”
“폭력적인 그의 독해는 자신의 사고 위험성에서 기인한다”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3.07.01 15: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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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인 고등과학원 수석연구원, 지젝의 들뢰즈 독해 비판

정신분석 이론가이자 거침없는 종횡의 글쓰기로 자신의 철학 지평을 넓히고 있는 슬라보예 지젝이 들뢰즈에 대해 위험한 오독을 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김재인 고등과학원 초학제연구단 수석연구원(철학)은 <진보평론>56호에 실은 그의 논문「지젝의 들뢰즈 읽기에 나타난 인간주의적-관념론적 오독」에서 지젝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지젝은 그의 저서『신체 없는 기관, 들뢰즈와 결과들』(2004)에서 들뢰즈와 가타리의 공저에 나오는 ‘기관 없는 신체’개념을 역전시킴으로써 들뢰즈에 대한 통념적 독해에 균열을 일으킨 바 있다. 그는 들뢰즈 철학의 정수를 들뢰즈와 가타리의 공동 저술에서가 아닌 이전의 단독 저술에서 찾고 있는데, 여기서 헤겔을 개입시켜 들뢰즈를 바디우와 라캉 쪽으로 편입시킨다. 지젝은 이 책에서 들뢰즈의 저서『의미의 논리』(1969)와 들리즈와 가타리의 공저서『안티 오이디푸스』(1972)를 마주놓으면서, 전자를 통한 후자의 극복을 도모한다. 지젝의 시각에서 두 책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가타리로부터 들뢰즈를 구원하라?

김재인이 주목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그는 지젝의 작업이 두 가지 중대한 오류를 내포한다고 지적했다. 첫째, 지젝은『의미의 논리』와『안티 오이디푸스』를 직접 읽지 않았거나 적어도 직접 인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지젝이 주로 마누엘 데란다의 해석을 인용하거나 아마추어적인 인상비평 수준에서 들뢰즈를 논하고 있다고 말한다. 둘째, 지젝이 두 책의 내용을 완전히 오독한 나머지, 자신의 들뢰즈 비판의 증거를 스스로 말소한다는 점이다.

김재인은 남는 것은 지젝 자신의 의견뿐인데, 이것을 들뢰즈의 이름과 더불어 설파하는 것은 바른 행실이 아닐뿐더러, 그의 저서를 통해 논증이 없는 억측만 난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젝의 폭력적 읽기가 갖는 위험성이 지젝 자신의 사고의 위험성으로부터 기인한다는 지적이다.

『신체 없는 기관, 들뢰즈와 결과들』에서 지젝은 들뢰즈를 관통하는 두 개의 논리, 두 개의 개념적 대립을 지적한다. 생성의 생산적 다수성을 강조한『안티 오이디푸스』와 의미-사건의 빗물체적 생성의 불모성을 강조한『의미의 논리』사이에는 내적 긴장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젝은 가타리에 의해 타락하고 평면화된『안티 오이디푸스』에서 들뢰즈를 구출해내 『의미의 논리』의 오염되지 않은 들뢰즈를 복원하자고 말한다. 김재인은 지젝이 지적한 이 두 개의 논리가 들뢰즈의 것이 아닌 데란다의『강도적 과학과 잠재적 철학』에서 유래한다고 말한다. 지젝이 제시하는 논거가 들뢰즈의 저술이 아닌 데란다의 저술이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욕망의 억압이라는 딜레마로 들뢰즈에게서 헤겔의 흔적을 찾아내려는 지젝의 시도는 가능한가. 욕망이 자신의 대립물을 포괄한다는 점에서 지젝은 들뢰즈에게서‘헤겔적 몸짓’을 찾아냈고, 이 점에서‘들뢰즈는 헤겔과 같다’라고 판단한다. ‘욕망의 딜레마’에 대해 김재인은 문성원 부산대 교수(철학과)의 이전 정리를 언급하는데, 문 교수는 “욕망의 산물을 예측하기는 곤란하며 욕망에 대한 기대는 일종의 비합리에 의존하는 모험으로 비칠 수 있지만, 비합리가 우리의 예측을 넘어선다고 해서 그것이 실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다”라고 말한다. 김재인은 들뢰즈가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이런 비합리적 욕망의 실재성이고, 해체나 파괴에 초점을 맞춘 욕망이 아닌 생산적 욕망이라고 덧붙이고 있다.

지젝은 들뢰즈의 ‘잠재(le virtuel)’개념을 독해하는 데 있어서도 데란다의 텍스트에서 간접인용을 하는데, 비판자인 김재인은 지젝의『의미의 논리』독해와 관련한 두 가지 문제를 지적한다. 첫째는 데란다의 들뢰즈 이해가 표준적인 것에서 벗어난다는 점(들뢰즈의 철학을‘창발’을 통해 설명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점)이고 둘째는 지젝이 생각하는 ‘준-원인’ 개념이 들뢰즈의 그것과 다르며, 그 개념이 의존하는 ‘잠재’ 개념이『의미의 논리』에서 거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김재인은 지젝이 들뢰즈에 대한 텍스트 내적 비판을 수행하지 않음으로써 무책임하게 독자에게 많은 모호함을 남기고 있다고 지적한다.

원전에 대한 ‘내적 비판’ 없는 지적 나태

김재인은 지젝이『안티 오이디푸스』를 비판하면서『의미의 논리』에 머문 것은 그가 물체 혹은 물질이 ‘표면의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을 회피했기 때문이라고 판단한다. 들뢰즈는『안티 오이디푸스』에서 직접 존재의 세계로 뛰어들어 존재론과 정치 철학을 펼쳤는데, 지젝은 들뢰즈의 이런 작업에 대해 바디우에 동의하며 ‘들뢰즈 자신의 비합리주의적 생기론의 파시즘’이라고 과격하게 비판하고 있다. 김재인은 지젝의 이 비판 역시 어떤 근거 제시하지 않은 감정적이며 부당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인간주의적-관념론적 토픽의 핵심에서도 지젝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완강히 고수하며 유물론이 아닌 신학에 머무르고 있는데, 김재인은 이 한계가 ‘지적 게으름’으로 명명될 수 있는 원저에 대한 성실하지 못한 독서를 통해 노출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당대 최고라 불리는 정신분석학자에 대한 도발적인 국내 연구자의 논문에 지젝 수용자들과 지젝이 어떤 대답을 내놓을지 궁금하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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