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21:20 (금)
“환경·노동이라는 게 인문을 빼고 얘기할 수 있나요”
“환경·노동이라는 게 인문을 빼고 얘기할 수 있나요”
  • 김봉억 기자
  • 승인 2013.06.28 19: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혜숙 한국인문학총연합회 대표 회장-신계륜 국회 환경노동위원장, ‘세상과 삶’을 이야기하다

“왜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이 인문학에 관심을 가지세요?”
“환경, 노동이라는 것이 인문을 빼고 얘기할 수 있나요”
김혜숙 한국인문학총연합회 대표 회장(이화여대 철학과)과 신계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민주당). 두 사람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이 됐다. 환경의 가치, 노동의 문제는 ‘인간다운 삶’을 위한 것이다. ‘인문의 가치’는 팍팍한 현실 사회 속에서 어떻게 구현될 수 있느냐가 과제다. 인문학자와 정치인이 만났다. 지난 달 23일 오후 3시, 서울 인왕산을 함께 걸었다.
‘마른 장마철’, 서울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인왕산 정상에는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열린 공간에서 얘기하니까 참 좋네요.” 54년생 말띠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정치철학, 감성정치, 도시환경, 인문문화, 사회적 경제까지 ‘바람’처럼 대화를 나눴다.

김혜숙 한국인문학총연합회 대표 회장(이화여대 철학과, 사진 왼쪽)과 신계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민주당)이 지난달 23일, 서울 인왕산을 걸으며 트레킹 대담을 나눴다. 신 의원은 "법과 제도, 학문도 '사람이 중심'이라는 생각이 늘고 있다"라고 말했다.

사회 : 최근 ‘국정원 정치 개입 사건’이 파문을 낳고 있습니다. 대학가에선 시국선언도 이어지고 있고요. 인문학자가 보기에는 어떻습니까.

김혜숙(김) : 국가가 저지른 일종의 폭력 상황 아니겠어요? 힘을 남용해 민주사회의 근간과 시민적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를 국가가 나서서 한 상황인데, 국가가 갖고 있는 힘을 과연 정당하게 사용하고 있는가, 국가가 행사할 수 있는 그 힘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과 함께 논의가 돼야겠죠. 대의민주주의 하의 시민적 자유와 국가적 정체성의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곰곰이 따져 봐야 하는 게 우리 사회의 이슈가 아닌가 싶어요.

신계륜(신) : 국정원 사건은 국가의 최고 정보기관이 경찰과 합작해서 사건을 저지르고 은폐하고, 지금까지도 축소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이 문제는 정치쟁점이 아니고 법치의 문제입니다. 법치국가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묵과할 수 없는 문제죠. 저도 처음엔 국정원 문제가 생겼을 때 설마 그랬을까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신계륜 국회 환경노동위원장(58세)은
주5일 근무제, 주40시간 근로, 남성근로자 육아휴직 허용, 정년 60세 연장 법안 등을 이끌어 노동환경 개선에 앞장서 온 민주당 4선(14ㆍ16ㆍ17ㆍ19대) 의원이다.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고려대 총학생회장을 맡았으며 1992년, 37세의 나이로 국회의원이 됐다. 386의 맏형으로 불린다. 생활체육 ‘배드민턴’을 16년째 즐겨왔고 최근 대한배드민턴협회장직에 취임하기도 했다. ‘걸어서 평화만들기’라는 모임을 통해 전국 산하 곳곳과 민생현장을 찾는 일도 즐기고 있다.
사회 : 법과 제도가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는데, 올해 초에 국민적 관심을 모았던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이 생각이 나네요. 신 의원은 가장 영향을 받은 책이 ‘레미제라블’이라고 들었는데.

신 : ‘레미제라블’은 제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입니다. 젊은 시절에 완역본을 구해 읽은 적이 있어요. 그렇게 방대한 양의 저술인지 몰랐죠. 사전처럼 굉장히 빽빽하게 만들어진 완역본이었어요. 사람의 삶을 중심으로 당시에 일어났던 프랑스 혁명과 그 이후 사회상이 너무나 사실적으로 묘사돼 있어서, 그 책을 읽으면 그 당시 혁명 상황이 눈앞에 훤히 그려지죠. 지금은 인생 전체를 통해서 한 사람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가, 어떤 게 아름다운 삶이고, 무엇이 승리한 삶인가, 진짜 맑은 영혼이란 무엇인가, 장발장이 보여 준 인간 승리는 참 감동적이었어요. ‘레미제라블’이 좋은 건 법과 제도의 승리라기보다는 인간이 승리한다는 것이죠. 법과 제도보다 사람이 중요하다고 느꼈어요. 저한테는 대단히 압도적인 영향을 미쳤어요.

사회 : 신 의원의 정치철학이라고 볼 수 있습니까. 4선 의원인데, 정치인 신계륜은 왜 정치를 하십니까.

신 : 정치를 시작할 때는 단순하고 명쾌했죠. 독재정권을 물러나게 하고 민주정부를 세우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봤습니다. 그래서 정치를 시작했죠. 그 꿈은 어느 정도 이뤘어요. 그렇다면, 그 이후는 무엇일까. 민주정부 다음에는 뭘까? 아직 대답을 못하고 있는 게 우리 현실이고, 명확한 답과 비전을 주고 있지 못하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봅니다. 그 문제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이렇게 산에도 다니고, 좋은 선생님께 답을 구하고 있죠.(웃음)

어떻게 보면, 제가 처음 정치에 입문할 때보다 지금의 정치력이 훨씬 떨어져요. 예전에도 제도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컸지만, 지금처럼 정치 불신이 커진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대의정치가 부정되는 시점인 것 같습니다. 대의정치의 위기인데 이런 혼돈을 어떤 새로운 가치관으로 모아 나가야 할지 고민입니다. 시대의 화두를 잃어버린 때가 아닌가, 지금 우리 국민을 하나로 모아낼 수 있는 큰 그림은 무엇일까, 하나로 모으기가 쉽지 않네요.

김 : 그런 거대담론이라고 할까요. 더 이상 사람들은 그런 것에 의미를 두지 않는 것 같아요. 어느새 우리 사회가 복잡해졌어요. 이제는 형식적인 민주주의의 상황을 굉장히 세밀하게 일상생활에 자리 잡게끔 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아요.

우리 사회가 굉장히 빠르게 변했어요. 그런데 우리사회가 변했다는 것을 잘 인정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사람들도 많이 변했고. 지금은 모든 사람을 하나로 모으는 이슈가 뭘까를 찾는 것 보다는 우리가 애써서 민주주의를 여기까지 키워 왔는데, 그것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가 중요한 일입니다. 제가 보기에 아직 우리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그 질서가 굉장히 불안정해요.

정치의 일상화가 필요해요. 지금 왕따 문제나 성폭행 문제 등이 빚어내는 온갖 상처는 결국 상호존중과 상호소통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상황을 보여주는 거예요. 우리가 다문화사회를 맞이하고 있지만, 앞으로 더 심각하게 다문화 상황이 될 텐데 이런 문제는 어떻게 해결을 해나갈 것인가도 중요합니다. 우리사회는 이질적이고 아주 혼돈적인 상황을 마주하고 있어요. 자기 것을 지키려고 하는 개인적 욕망이 강해지고, 이런 걸 보장해주는 법과 제도도 견고해지고 있는데, 공동체 정신과 정치력이 실종이 된다면, 그 사회는 약육강식만이 판치는 끔찍한 사회가 될 것 같거든요. 정치가들은 우리 사회가 변하고 있다는 것, 사회가 복잡해진 상황을 참고해야 어떤 정치가 좋은 정치인지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혜숙 한국인문학총연합회 대표 회장(58세)은
1987년부터 이화여대 철학과 교수로 있다. 올해 창립 60주년을 맞은 한국철학회의 첫 여성 회장을 맡고 있으며, 지난해 10월 출범한 80개 인문학 학회의 연합 단체인 한국인문학총연합회의 초대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 교수는 이화여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잡지사 기자를 지내다 철학 공부를 시작했다. 미국 시카고대에서 박사를 했다. 인식론과 예술철학, 여성철학을 연구했으며, 저서로 『칸트 : 경계의 철학, 철학의 경계』『혁명과 여성』『예술과 사상』『법과 폭력의 기억 : 동아시아의 역사경험』등이 있다.
사회 : 신 의원께서는 정치의 상실, 권위의 상실을 말씀해주셨는데, 인문학이 겪고 있는 현실도 상당히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지금의 정치현실과 사회현실을 보면서 뭐가 옳은 것인지, 혼란스런 상황이잖아요. 삶은 점점 더 팍팍해지고, 가치 혼란은 더 심해지고 있기 때문에 사회에선 인문학적 치유를 요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인문학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김 : 지금 인문학은 양립하기 힘든 두 가지 상황에 처해 있어요. 젊은 대학교수들은 논문쓰기에 바쁘지요. 그렇지 않으면 승진이나 재임용이 안 되는 상황이 되니까요. 문 걸어 잠그고 외부 일에는 일체 신경을 끄고 공부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어요. 사회적 이슈나 학내 이슈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어요. 영어논문을 써야 한다는 강박도 있고요. 그런 전문성에 대한 요구가 있어요. 그런가 하면 또 한편에선 인문학이 인간에 대한 학문이기 때문에 진리가 뭐냐, 인간의 본성이 뭐냐, 사랑이 뭐냐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까 인문학 자체가 요구하는 있는 본질적인 사유와 글쓰기를 해야 할 책무가 있거든요. 이 두 가지 상황은 양립할 수 없는 상황이에요. 이런 식으로 가면 인문학은 죽는 거죠. 사회와의 접점은 모두 상실되니까요.

그럼 이런 인문학에 대한 상반된 요구들이 어떻게 화해될 수 있을 것인가. 저는 교육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봅니다. 인문학은 교양교육의 차원으로 다룰 게 아니라 기초학문으로 봐야 합니다. 대학에서는 법학을 전공하든, 공학을 하든 인문학적 소양을 갖추는 게 필요하다고 봐요. 초ㆍ중ㆍ고등학교 교육에서도 인문적 가치를 살려 나가야죠. 전문성에 대한 요구와 대중성에 대한 요구가 대학교육과 초ㆍ중ㆍ고등학교 교육 안에 인문학이 개입함으로써 적절히 충족될 수 있다고 봅니다. 여기에는 많은 숙제가 남아 있는데요. 인문학자들이 교육현장에 접근하기가 어려워요. 교육이 아니면, 희망을 가질 수 없는데도 말이죠.

사회 : 이런 인문적 가치를 살려 나가려면 어떤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할까요.

김 : ‘인문진흥법’ 제정과 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인문학은 인문학자가 풀어가야 할 문제입니다. 그러나 사회 전반적으로 ‘인문 가치’를 살려 나가야 한다고 봐요. 우리가 너무 기능주의적 사고에 치우쳐 있기 때문이에요. 경제발전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 어떻게 잘 살 것인가, 이제 그런 급박한 생존 차원의 사회는 우리가 벗어난 것 같아요.

‘인문진흥’을 제안하는 것은 좀 더 나은 가치를 추구하는 삶을 만들어 가자는 거죠. 우리 사회의 격을 한 단계 높이고 삶의 질을 높이자는 것이지요. 경제 도약 또한 그런 바탕 위에서  돼야 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 양적인 성장에 치우쳐서 가치와 의미의 문제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어요. 빨리 좇아가기에 바빴지요. 그런데 그렇게 좇아와 보니까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은 거예요. 너무 많은 상처를 입게 됐고, 그 상처가 쌓이고 쌓여서 너무 힘든 상황에까지 온 거예요.

외양적으로는 잘 살고, 학생들도 표정이 밝은 것 같은 데, 얘기를 들어보면 내적, 외적으로 상처들이 너무 많아요. 그런 상처를 보듬고 자신의 삶을 가치 있는 삶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죠. 물질적으로 삶이 쪼들린다고 해서 그게 끝은 아니잖아요? 우리는 몹시 가난한 사회도 견디어 낸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가난은 지독한 불행이라고 느끼게 만들어요. 상대적 박탈감이나 차별, 빈부의 격차를 더 크게 느끼게 만들기도 하고요.

인문학이 역할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는데, 우리나라 교육체계 안에서도 인문학이 기능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게 안타깝습니다.

마침, 박근혜 정부가 ‘문화융성’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우리 사회가 황량한 가슴을 가진 사람들의 사회가 돼서는 안 되겠다는 문제의식을 가진 것 같습니다. 어려서부터 인권문제, 다문화사회, 함께 하는 삶에 대한 가치를 배우고 익히는 게 중요해요. 그래서 인문학자들이 ‘인문진흥법’이나 ‘인문문화 진흥법’이 필요하다고 얘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김혜숙 한국인문학총연합회 대표 회장은 "사람들이 빨리 좇아 왔지만, 행복하지 않다는 걸 느끼게 됐다"면서 "사회 전반적으로 '인문 가치'를 살려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인문진흥법이 필요하다"라고 했고, 신계륜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은 "인문진흥법 같은 법안이 형성될 시점은 성숙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사회 : 신 의원도 ‘인문적 가치’가 필요하다는 부분에 대해선 공감을 하실 텐데, 이런 걸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부분에선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어느 정도 필요성을 느끼고 있나요.

신 : 김 교수님의 말씀에 대해서는 대체로 이해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인문 가치라는 것이 원초적이고 기초적으로 중요하고, 인문 가치와 결합돼 나가는 과학기술이야말로 바른 과학기술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경제학을 보더라도 지금 빈부격차가 깊어지는 원인을 과학적으로 규명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정책수단을 만들어 내고는 있지만, 이것이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과 사랑에 기초해 있지 않으면 오히려 거꾸로 인간의 소외를 낳는 현상이 생겼단 말이에요. 정당도 마찬가지에요. 사람을 억압으로부터 자유롭게 하고 평등한 삶을 위해 정당을 만들었는데, 역사적으로 보면 정당 자체가 때때로 사람을 억압하고 그랬단 말이죠.

그런 역사적 경험 때문에 모든 과학기술의 기초에는 인간에 대한 사랑을, 인간을 기초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생각이 꽤 커졌어요. 법과 제도, 정당, 관행, 관습, 학문조차도 모든 것이 사람이 중심에 있다는 이런 생각이 발전되고 있어요. 법안이 구체화되면 법안 자체가 갖고 있는 한계도 있어서 조정절차는 밟게 되겠지만, 인문진흥법같은 법안이 형성될 시점은 성숙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을 해도 과학으로만, 사회과학으로만 해결할 수 없다는 게 분명해진 상황에서 이런 제안이 나온 것이고, 시대적 흐름과도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인문대중강좌 지원이나 퇴직자의 지식과 지혜를 살릴 수 있는 저술장려제도 같은 지원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김 : 문화체육관광부가 추진하려는 ‘문화기본법’도 거의 성안이 됐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인문학자들도 ‘인문문화’를 함께 엮어서 가면 좋지 않을까 생각을 하고 있어요. 지금까지 문화라는 개념이 우리사회에서는 예술문화, 공연문화와 동일시되면서 문화개념을 좁게 해석해 왔는데, ‘문화기본법’을 만들게 된다면, 문화기반이라든가 문화정신이라든가 인문적인 관점에서 문화를 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인문이라는 개념은 예술, 과학, 종교를 모두 포괄하는 의미거든요.

사실, 난립해 있는 도시환경의 문제도 건축공학적 문제로만 봐왔지 사람의 삶이 담긴 집, 이야기가 있는 집, 사람과 상호 작용하는 그런 건축물의 관점에서 보지는 않았잖아요. 이런 도시환경, 건축 환경이 다 지각에 관련된 것이고 어린이들한테는 배움의 장이거든요. 그래서 문화기본법과 인문진흥법을 함께 아우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 중입니다. 80개 인문학 단체의 모임인 한국인문학총연합회의 가장 큰 관심사이기도 합니다.

신 : 건축을 인문적 관점에서 보자고 하셨는데 굉장히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저렇게 천편일률적으로 세워진 건물을 보세요. 재미없거든요. 시민이 서로 소통하는 구조, 아이들이 즐겁게 만날 수 있는 구조로 만들려면 이렇게 건축을 하면 좋겠다, 뭐 이런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건축을 할 때도 인문적 관점과 환경적 관점, 에너지 절약의 관점 등 모든 게 종합적으로 고려가 돼야죠. 그래야 제대로 된 건축이 된다는 것이죠. 그렇게 하다 보면, 결국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인문, 사람이 아니겠어요. 모든 것이 사람을 위해 하는 거니까.

서울 시내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서울 인왕산. 두 사람은 도시환경, 건축도 인문적 관점이 필요하다고 공감했다. 건축을 할때도 인문적 관점과 환경적 관점, 에너지 절약의 관점 등 종합적으로 고려가 돼야 한다고 했다.
사회 : 신 의원은 정치활동이나 입법 활동을 하면서 아이디어나 상상력은 어디서 얻고 있습니까.

신 : 다른 것 보다 걸으면서 생각을 많이 합니다. 저는 걸으면서 진짜 많은 것을 얻었어요. 그림도 그리고요. 외국에 나가면 아침에 일어나 주변을 한 10km 정도는 걸어 봅니다. 도시의 윤곽이 그려지는 것 같아요. 사람 살아가는 모습도 보이고요. 걷는 게 나의 스포츠이자, 체험이고, 아이디어도 나옵니다. 저는 법대를 가지 않고 문학을 하고 싶었어요. 진짜, 글 쓰고 싶었어요. 학교 때는 백일장도 대표로 나가고 장원도 하고 그랬어요.(웃음)

김 : 지금이라도 글을 쓰시면 좋겠네요. 얼마나 멋진 일이에요. 정치가가 글을 쓴다는 게.

신 : 20대에는 그런 꿈이 있었어요. 막 써놓은 게 있어요. 언제 중단이 됐느냐 하면, ‘나라가 위급하다’ ‘노동운동 하자’ 하면서 그만뒀어요. 선배들이 글 쓰는 걸 경계하더라고요.

김 : 그런 얘기까지 다 쓰세요. 왜 중단했는지, 왜 다시 시작하는지.(웃음)

신 : ‘나약하다’ ‘감상주의다’ 뭐 그렇게 비판도 하고 그랬어요. 그때는. 감성이라는 게 오감을 열어 놓고 늘 받아들여야 하는데, 저는 너무 닫아 놓고 지낸 시간이 오래돼서 다시 살아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거의 환갑이 다돼 가는데.(웃음)

김 : 그러니까 이제 쓸 수 있는 나이가 됐어요. ‘이제는 쓸 수 있다.’(웃음) 이제는 감성정치가 미래정치인데, 굳은 얼굴로 하는 게 아니라 감성정치가 아니면 이제 안 되는 거거든요. 사람들이 지적 수준도 높아졌고, 뭔가 계도하는 리더는 싫어해요. 누가 말하는 대로 살기 싫다는 사람들이 많아지거든요.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지는 거예요. 대중이라는 개념도 옅어 지겠죠. 개별자들로 이뤄진 모래알 같은 사회에서 그런 사람들에게 다가가려면 ‘나를 따르라’ 하면서 하나의 기치를 내걸고 하는 정치는 통하지 않아요. 내가 아무리 끈을 죄려고 해도 공중에서 덜거덩, 덜거덩 되는 무의미한 끈으로 돼 버려요. 같이 느끼고 공감할 수 있는 토대를 갖는 게 미래정치의 핵심이 되지 않을까요. 공감할 줄 아는 인간 신계륜, 얼마나 멋집니까.

신 : 감성정치 좋은 말이네요. 감성이 중요해요. 맞습니다. 감성이 과학이다, 내가 느끼지 않는 것은 없는 것이다, 이런 생각도 드네요. 사람이 감각을 느낀다는 게 제일 중요한 게 뭘까요.

김 : 오감,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터치하고. 서양문화는 시각중심문화라고 하죠. 띠어리(theory) 같은 단어도 그리스어 ‘테오리아’라는 ‘보다’는 뜻에서 나온 거고. 동양문화는 시각중심은 아닌 것 같아요. 뭘까. 음. 좀 더 공감각적인 여러 개의 감각이 어우러진, 보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듣고 냄새 맡고 먹고 몸으로 느끼는….

사회 : 고령화시대를 맞아 100세 시대 이런 얘기도 하는데, 앞으로 살아갈 미래의 중요한 가치는 무엇일까요.

김 : 어렸을 때는 ‘생명이 중요하다’는 말을 내 스스로 뼈저리게 느낀 경험은 별로 없었어요. 나이가 들어가면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 이런 생각도 많이 하게 되는데, 그러면서 생명이라는 게 내가 이 순간에 살아있다는 것이 참 소중한 가치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요. 우리 사회가 생명 경시가 만연돼 있고 사람을 도구화해서 보는 경향이 굉장히 강한 사회인 것 같습니다. 미래 가치라고 한다면, 온전한 생명의 문제가 미래의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기를 바랍니다.

신 : 비슷하네요. 자본이, 제도가, 정당이 사람을 지배하는 것을 거꾸로 세워야 합니다. 최근 우리 사회를 비꼬는 말이기도 한데, 『키스를 원하지 않는 입술』이라는 시집이 있어요. 젊은이들이 풍요로운 물질적인 것을 찾다 보니까 결혼도 늦어지고 정말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결혼을 하는 풍조를 담은 것인데요. 키스를 원하지 않는 입술. 이게 무슨 말인가 하고 며칠간 들여다보니까 사랑마저도 소외되는, 내가 원하는 입술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받아들인다는 뜻인 것 같았어요. 새로운 소외 현상인 거죠. 잘 살게 되면서 생기는 소외. 진짜 심각하거든요. 인간, 생명, 사랑. 이런 개념을 지켜내는 것이 미래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는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인데, 생각하면 할수록 우리에게 엄청난 비극이고, 앞으로도 비극이 될 수 있는 소지를 안고 있어요. 우리 민족에게 과제가 있다면, 민족 분단의 문제를 평화롭게 해결하고 통일을 이루는 것이 우리에게 남아 있는 거대 담론이 아닐까요. 너무나 가슴이 아파요.

"미래의 중요한 가치? 온전한 생명의 문제, 인간, 생명, 사랑. 이런 개념을 지켜 내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김 : 그래요. 통일이라고 하는 거대담론이 하나 남아있네요. 임기 내에 꼭 하고 싶은 일은 뭐에요?

신 : 비정규직 문제는 꼭 해결하고 싶어요. 제가 ‘주5일제, 주40시간 근로’ 법을 만들었는데요.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요. 일방적으로 해결하기 보다는 경영, 노동, 정부 모두 합의해서 내년 4월 안에는 해결하고 싶어요.

김 : 비정규직 문제는 심각하죠. 모든 직업군에서 비정규직화가 확산되고 있으니까. 서구의 트렌드를 보면, 예전에는 대체할 수 없었던 높은 기술을 요구하는 직군까지도 비정규직화가 진행이 된다고 해요. 미국의 경우도 전문성이 강한 직종까지도 비정규직화 속도가 빠르게 진행된다고 해요.

저는 계속 정규직으로 일해 왔기 때문에 정규직이 줄 수 있는 직업의 안정성이 사람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경험적으로 실감해요. 1~2년 단위로 계약을 하게 되면 장기적인 계획을 세울 수 없잖아요.  참으로 피곤한 삶이 되는 거죠. 어떤 방식으로 정규직을 늘릴까를 고민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젊은 사람들이 쾌락주의로 가고, 내일이 없는 듯이 살 수밖에 없는 게 미래가 잘 안보이니까 그런 것 아니겠어요.

신 : 제가 추구하는 방향은 비정규직은 가능한 한 정규직 전환을 기본으로 하되, 비정규직의 하위성이랄까 비정규직의 열등한 부분을 고급화할 수 있는 방법도 있다고 봐요. 자기 능력을 살려서 스스로 비정규직을 원하는 사람도 있어요. 자기 시간을 자유롭게 쓰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어요. 나는 당신 회사에 영원히 귀속되기 싫다, 이런 요구도 채울 필요가 있다고 봐요. 자기 전문성을 살려 자기 시간에 맞게 일할 수 있는 제도는 필요한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전업주부처럼 시간제로 일하고 싶어 하는 요구도 있어요.

"어떤 방식으로 정규직을 늘릴까를 고민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김혜숙) "비정규직 문제는 꼭 해결하고 싶어요. 비정규직은 가능한 한 정규직 전환을 기본으로 하고, 비정규직의 열등한 부분을 고급화할 수 있는 방법도 있다고 생각합니다."(신계륜)

사회 : 비정규직 문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풀어 가야 한다고 보십니까.

신 : 정규직이 비정규직의 상위 개념이 됐어요. 권력과 연봉의 서열 관계로 돼 버렸어요. 비정규직은 매우 나쁜 것, 하등적인 것으로 평가를 받아요. 이런 걸 바꾸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래야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개념도 바뀔 수 있어요. 비정규직 모두가 정규직이 돼야 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비정규직 내에서도 훌륭한 자질을 가진 인재가 열심히 일하면 정규직 전환은 물론 상승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죠. 반대로 비정규직 중에서도 좀 문제가 있거나 소양이 낮으면 그만한 대가를 받아야 합니다.  지금은 모든 게 딱 고정돼 있으니까 그게 문제에요. 이런 문제가 풀어가야 할 핵심적인 과제입니다.

비정규직 문제를 풀어가려면 정규직의 양보도 필요한데 그 양보를 어떻게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인가도 역시 관건이 될 겁니다. 비정규직도 누가 보더라도 객관적인 기준과 원칙에 따라 자연스런 능력 평가가 이뤄지는 구조가 된다면, 사회 전체적으로 이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 : 그런데 비정규직 자체로도 좋은 그런 종류의 비정규직이 있을 수 있고, 원론적으로 맞을 수 있어요. 그러나 그런 고급 비정규직은 소수지요.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나 가능성이 개인에게 열려 있어서 스스로 비정규직이 될 수도 있으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겁니다. 그런 종류의 비정규직 자리는 한정돼 있고,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하고요. 비정규직 일자리를 잃어도 기본적인 생활은 무너지지 않아야 하는데, 대체로 비정규직의 생활은 그런 기본생활이 위협받는 수준이 되니까 그게 문제죠. 그러니까 불안해하고, 당연히 안정성을 추구하는 것이죠.

사회 : 최근에 사회적 경제의 대안으로 협동조합 설립이 늘고 있습니다. 인문학 강사들도 여러 군데서 협동조합을 추진하고 있어요. 대학에서 자리를 잡기가 힘든 현실이기도 하니까요.

신 : 노동 분야가 제 전공 분야인데, 기업은 어떻게 할 것인가 생각을 하다가 협동조합을 많이 주목하게 됐어요.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마을 공동체, 이런 곳에 관심을 갖고 있어요. 사회적 기업은 현재 경제운용의 주체가 갖고 있는 모순과 잘못된 것을 보완해주는 기능과 역할이 있다고 봐요. 전통 기업이 80%를 차지한다면, 사회적 기업은 20% 정도를 차지할 수 있겠지요. 사회적 기업의 유의미한 역할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회적 기업 생산제품 우선구매 촉진에 관한 법률안’을 만들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사회·글 : 김봉억 기자 bong@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