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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IF는 저널 줄세우고 학문마저 죽인다”
“한국형 IF는 저널 줄세우고 학문마저 죽인다”
  • 장영준 중앙대·영어영문학과
  • 승인 2013.06.24 16: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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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평가 어떻게 할 것인가? 4. 인문학 평가라는 넌센스

최근 연구평가 논란이 뜨겁다. 각 대학에서는 정부의 연구평가 방향에 맞춰, 혹은 미리 대응하여 연구평가 방법을 바꾸거나 강화하고 있고, 연구력 향상이란 미명하에 연구 논문 생산량 증가를 계속해서 강요하고 있다. 몇몇 대학의 이러한 조치들은 곧 이어 모든 대학으로 퍼져나가, 이제 대학 간 차이가 없이 거의 모든 교수들이 동일한 풍파를 겪고 있다.

필자는 인문학 분야에 속해 있다. 어학분야라서 일부에서는 이를 과학(science)으로 간주하기도 하고, 과학적 속성을 갖는 인문학이라 하기도 한다. 인문학이라고 해서 거기에 속한 모든 분야가 동일한 속성을 가질 수는 없다. 문학에서도 통계를 많이 활용하는 연구방법론을 취한 연구라면, 인문학에 속할 수도 있고 자연과학에 속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학에서는 이러한 개별 학문, 혹은 개별 교수 간 차이점을 고려할 수 없다. 이공계, 인문사회계, 예체능계와 같은 대분류, 혹은 인문학과 사회과학이라는 대분류 하에서는 이러한 개별적 차이를 고려할 수 없다.

학문·교수의 개별적 차이 고려 않는 구분법

이러한 상황에서 각 대학들이 교수평가를 위한 방편으로 연구평가를 과도하게, 지나치게, 일률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이전 기고들에서 이공계와 사회과학 등에 대한 평가방식이 가져올 폐해들이 다뤄졌다. 교수평가가 국내 저널의 경우 등재지->해외저널의 경우 JCR 등재지->영향력지수(IF) 고려->SCOPUS 등재 유무로 개악되거나 편중화되고 있다. 국내 저널의 경우에는 한때 금과옥조처럼 여겨지던 등재지와 비등재지의 구분이 없어지고, 등재지 논문은 점점 더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등재지 논문에 대해 지급하던 인센티브는 점점 축소되거나 폐지되고 있고, 소위 SCI, SSCI, A&HCI 등재 해외 유명저널에 실린 논문에 대해 지급하던 인센티브도 축소되고 있다. 정부와 학교 당국은 난데없이 SCOPUS 수록 저널이나 학회를 강조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평가척도 역시 그런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국제 저명 학술지도 IF를 고려해 인센티브를 차등지급하고 있다.

교수평가가 얼마나 희화화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넌센스가 바로 여기에 있다. 모 대학에서는 A&HCI 등재지의 경우 IF에 따라, 혹은 해당 저널이 상위 10%인가 아닌가에 따라 인센티브를 차등지원하고 있다. 그런데 이 인용지수를 개발한 톰슨로이터사는 인문·예술인용지수(A&HCI)의 경우 순위를 매기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IF도 부여하지 않고 있다. IF는 SCI와 SSCI등재 저널의 경우에만 부여하고 있을 뿐이다. 특정 저널이 SCI, SSCI, A&HCI에 모두 속한 경우가 있는데, 그 경우에는 IF가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SCI와 SSCI 분야에서의 평가 혹은 변별도일 뿐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한국정부, 즉 연구재단에서는 인문학 분야에 대해서까지도 한국식 IF를 개발해 모든 저널들에 수치화한 줄세우기를 강요하고 있다.

지나친 연구평가 강화의 폐해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지적이 있었다. 그 폐해는 주로 인문학 분야에 편중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인문학이야말로 장기적이고, 자유롭고, 사회의 단기적 필요에서 벗어나 학문 그 자체로 존립할 때 최대의 성과를 볼 수 있는 학문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계몽주의 시대건, 제국주의 시대건, 어느 시대 어느 사회건 관계없이 인문학에 대한 평가가 지금처럼 획일적으로 예외 없이 이뤄진 적은 없고, 그것이 연구자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적도 없다.

IF가 처음부터 부여되지 않았는데, 상위 10%가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데도 불구하고 자기 분야의 A&HCI 등재지에 논문을 실을 것인가? 아니면 IF도 부여되고 상위 10%도 결정된 SSCI나 SCI 등재저널에 논문을 투고할 것인가. 또 이러한 국제저널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한국형 학문분야들인 국문학이나 국악이론 등의 연구자들은 학문분야를 바꾸어 논문을 써야 할까. 자신의 학문 분야를 버리고, 이른바 SCOPUS 등재지에 논문을 싣기 위해 외도를 해야 할 것인가. 어불성설이다.

학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연구 분야에서 질 높은 연구를 하도록 하려면 학자들을 흔들지 말아야 한다. 각 분야에서 열심히 연구하고 있는 인문학 종사자들로 하여금 연구비에 있어서의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하거나 불이익을 받도록 해서는 안된다. 지금 현실은 어떤가? 국제저널에 논문이 실리지 않으면, 소위 존재하지도 않는 IF가 높은 저널에 논문을 쓰지 않으면, 학교는 곧바로 이러한 연구자를 연구력이 없는 교수로 낙인찍고 당장 연봉을 삭감한다. 학생들은 이러한 교수가 무능한 교수라는 인식을 가지게 되고 다음 수강신청에서 이를 고려한다. 이러한 구조 아래서는 진지한 연구, 수준 높은 연구가 나올 수 없다. 편수 채우기에 급급하여, 소위 등재지에 이름이 있는 저널을 찾아, A&HCI에 등재된 만만한 저널을 찾아, 혹은 존재하지도 않는 IF가 있을 것 같은 국제저널을 찾아, 논문을 출판하려고 애쓸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당장 불이익이 닥치는데 왜 그렇게 하지 않겠는가.

각종 국책 연구사업에 지원하려해도 평가방식이 이러한 평가기준에 따라 연구업적을 평가하고 있다. 최근에 마감된 BK+ 사업에서도 소위 IF를 밝히는 부분이 있었는데, 연구재단에서 급조하여 발표한 한국형 IF가 있긴 하다. 거의 모든 저널이 큰 차이 없이 0.0xx로 나가는 한국형 IF를 고려해 과연 어떻게 연구자의 연구력을 평가하겠다는 것인가. 지나친 행정편의주의 내지는 광적인 평가 편집증이다.

행정편의주의 혹은 광적인 평가 편집증

기본적으로 인문학 분야는 평가를 해서는 안 된다. 평가를 할 수 없다. 학문 전통이 수 백 년 내지는 수 천 년 된 분야도 있고, 통계와 같은 사회과학적 방법을 활용하는 분야도 있다. 그런데 이를 통틀어 하나로 묶고, 여기에 존재하지도 않는 IF까지 고려하여 모든 교수들을 하나의 잣대로 평가하여 줄을 세우고, 연봉을 결정하고, 능력을 낙인찍는 행태는 인문학 죽이기이자 인문학자들에 대한 테러이다.

인문학을 살리는 길은 자유로운 학문 분위기를 제공해주는 데서 끝나야 한다. 굳이 인문학 발전을 위해(정부가, 혹은 학교 당국이) 무언가 하고 싶다면, 훌륭한 연구에 대한 포상에서 끝나야 한다. 해당분야에서 공감대를 형성한 우수 연구에 대해 포상을 하면 된다. 부당하게 평가받고 있고, 부당한 기준을 무리하게 적용하고 있다고 판단되는 한, 그러한 평가는 정당성을 확보할 수도 없을뿐더러 결국에는 해당 학문을 죽이게 될 뿐이다.

왜 A&HCI 리스트를 만든 원조인 미국에서도 하지 않는 짓을 하려 드는가. 우리 학계의 크기를 고려해볼 때, 어떤 학회지는 관련자와 구독자가 극단적으로 적은 경우도 많다. 여기에 무슨 영향력지수를 부여한단 말인가. 정부와 학교가 교수들을 편리하게 줄세우기 하려는 의도가 없다면, 끊임없이 평가 방법을 개발해서 교수들을 정신없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인문학자는 자유를 먹고 사는 존재들임을 고려해주기 바란다.


장영준 중앙대·영어영문학과
하버드대에서 박사를 했다. 한국언어학회와 한국영어영문학회에서 이사를 역임했고 현재 한국언어학회의 <언어>지 편집위원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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