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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위에 나무가 자랄 수 없으니 결혼 하면 안 된다?
돌 위에 나무가 자랄 수 없으니 결혼 하면 안 된다?
  • 홍순일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
  • 승인 2013.06.24 11: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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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이야기 33. 섬문화의 수수께끼, ‘혼인 기피’ 문화

제주도 제주시 추자면 예초리 마을에 있는 ‘엄바위 장승’. 옛날 엄바위의 억발장사가 있었는데, 바윗돌로 공기놀이를 즐겼다. 어느 날 횡간도로 건너뛰다가 미끄러 넘어져 죽었는데 그 이후로 예초리와 횡간도 사람들은 서로 결혼하지 않는다고 한다. 결혼하면 청춘과부가 된다는 것이다. 사진=홍순일
섬에서 듣는 혼인을 기피하는 이야기는 섬사람들의 관념을 드러내는 독특한 섬문화 중 하나다. 이른바 ‘기혼(忌婚)’ 문화다. 별다른 이유가 있어서 ‘혼인을 하면 안 된다’는 금기 문화는 ‘혼인을 하라’는 일반적인 인식보다 더 강한 행동지침이 된다. 혼인 금기는 일종의 섬생활의 안전장치다. 혼인을 기피하는 이유를 빙산의 일각만 드러내고, 그것도 속뜻을 숨기는 섬사람들의 ‘기혼’ 문화코드는 행위의 단순성과 복잡성을 해독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섬문화의 수수께끼이다.

섬사람들의 ‘기혼관념(忌婚觀念)’은 서얼 신분의 남자와 양반 여자 사이의 금혼, 부모상을 당했을 때 3년 간 금혼처럼 전통사회에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섬사람들이 결혼을 기피하는 문화현상에 대해 이유 같지도 않은 이유를 말할 때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혼인 기피 이야기는 대개 섬마다 있다. 그런데 관심을 끄는 것은 말하는 이유가 혼인 기피의 진짜 이유인가 하는 것이다. 속뜻을 제대로 말하는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먼저 제주도 제주시 추자면 예초리 마을의 경우를 보자. 하추자의 동북단에 위치한 작은 포구마을이다. 이곳에 ‘억발장사 이야기’가 전한다.

“옛날에 엄바위의 억발장사가 있었다. 엄바위 아래 바닷가에 ‘장사공돌’이라는 바위 다섯 개가 있었는데, 이 바윗돌로 공기놀이를 즐겼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횡간도로 건너뛰다가 미끄러 넘어져 죽었다. 그래서 예초리와 횡간도 사람들은 서로 결혼하지 않는다고 한다. 결혼하면 청춘과부가 된다는 속설 때문이라고 한다. 언제부터인가 마을 누군가가 억발장사를 상징하는 목장승을 깎아 세웠으며, 예초리에 해마다 걸궁을 할 때면 이 엄바위 앞에 와서 한마당 소원을 빌기도 한다.” 이 이야기는『추자도지』에서 ‘엄바위 밑 목장사’로 확인이 됐고, 필자도 현지 조사(2010년 7월)때 ‘엄바위장승(억발장사) 이야기’로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이런 섬사람들의 혼인 기피는 완도항에서 서남쪽으로 31.5km 떨어져 있는 노화도 사람들의 이야기에서도 발견된다.

‘기혼’ 이야기는 노화도의 이포리(梨布里)의 이목리 1구(梨木里 一區) 마을과 이목리 2구 마을, 구석리(久石里)의 구목(久木)마을과 석중(石中)마을, 충도리(忠道里)의 충도(忠道)마을과 관련된다. 이 중에서 이포리 이목2구 마을의 경우를 소개하면, 구목리(龜目里)에서 구목리(鳩木里)로 변경된 구석리(久石里) 석중(石中)마을과 이포리 이목(梨木)은 ‘돌 위에 나무가 자랄 수 없다’는 이유로 결혼을 꺼린다.

여기서 발견되는 ‘기혼 관념’의 전제는 ‘돌 위에 나무가 자라날 수 없다’는 것이고, 결론은 ‘두 마을 처녀총각들이 서로 혼인만 하면 일찍 죽거나 이혼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혼인이 마을 이름과 결합돼 마을사람들이 결혼을 꺼리는 현상을 표현함으로써 노화도 사람들의 의식을 드러낸 것이다.

이런 현상은 안좌도(安佐島) 사람들의 이야기에도 묻어난다. 안좌도는 목포시에서 서남쪽으로 약 21㎞ 지점에 있는 신안군의 섬이다. 여기에서 듣는 이야기 하나는 안좌면 구대리와 내호도의 경우이다. 안좌면 구대리는 서북쪽에 있는 내호도와 마주 보고 있는데, 대나무로 마을의 울타리인 우실을 세워 내호도와 마주보는 것도 차단하고, 서북풍도 막아낸다. 마을끼리 혼인을 안 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니까 바람을 막는다고 하면서 사람을 막는 셈이다. 암태도, 비금도, 우이도, 장산도 등에서 볼 수 있는 우실로 말이다.

다른 하나의 이야기는 안좌면 자라도와 박지도에서도 전한다. 안좌면 자라도는 박지도와 마을당을 마주 보고 있는데, 여기에서도 약속이나 한 것처럼 마을간 혼인을 기피한다. 마을당을 이유로 삼는 것이다. 섬사람들의 수호신을 섬기며 마을공동체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곳인데 말이다. 짐작이지만 생업의 태도·지식·기술이 거주처를 정하게 하는 진짜 이유가 아닌가 한다. 자라도 사람들이 볼 때 밭농사 위주인 박지도 사람들이 자라도의 논농사에 적응할까하고 걱정하며 결혼을 기피했다고 하면 지나칠까.

이처럼 섬사람들의 ‘기혼’ 문화코드는 암호 풀이가 필요한 섬문화의 수수께끼이다. 섬사람의 사건과 섬의 사물은 모두 암호화돼 있으므로, 섬문화는 이를 해독하고자 하는 자에게만 그 속마음을 털어 놓을 것이다. 일정한 사회적 규정의 제약 속에서 행해지는 혼인, 특히 기혼관념이 표현된 혼인 회피 이야기는 섬사람들의 또 다른 의식세계를 알 수 있는 구비전승자원임에 틀림없다.

홍순일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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