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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주관적 평가지표 혼용하자”
“객관적·주관적 평가지표 혼용하자”
  • 강명구 서울대·언론정보학과
  • 승인 2013.06.18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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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평가 어떻게 할 것인가? 3. 사회과학계 평가를 위한 몇 가지 제안

지난달 16일 세계 각국의 과학자 150여 명과 주요 과학자 단체 75개가‘영향력 지수(Impact Factor, 이하 IF)가 학술지와 연구자의 질을 평가하는 척도로 쓰이는 것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발표한 샌프란시스코 선언 이후, <교수신문>은 5회에 걸쳐 연구 평가의 문제점과 개선안에 대한 학문 분야별 릴레이 기고를 게재하고 있다. 자연과학 분야에서 안병찬 울산대 교수(생명과학부)가‘DORA’가 시사하는 것을, 공학분야에서 김형순 인하대 교수(신소재공학부)가 ‘IF의 문제점’을 소개했고, 이번호에서는 사회과학 분야에서 강명구 서울대 교수(언론정보학부)가‘연구 평가에 대한 제안’으로 릴레이 기고를 이어간다. 남은 두 기고에서는 인문학 분야에서 바라보는 IF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연구평가의 나아갈 길에 대한 논의로 마무리한다.

SSCI, A&HCI, 연구재단인증저널 거기에 이들 저널의 영향력지수. 이정도가 현재 이뤄지고 있는 사회과학분야 평가의 고려사항이다. 상당수 대학에서 SSCI, A&HCI에 논문을 게재하면 현금으로 지원한다. 한 편에 2천만 원 준다는 학교도 있고, 1천만 원 준다는 학교도 있다. 교수공채와 승진, 정년보장 심사에서 이들 외국저널에 논문을 필수적으로 요구하는 대학도 여전히 많다. 이런 조류가 2000년 초부터 시작됐으니 벌써 10년이 넘었다. 외국저널, 논문 편수, 영향력(그것도 이번에 문제가 제기된 IF지수)으로 교수의 연구업적을 평가하는 풍토가 10년만 더 지속된다면 한국의 사회과학의 기반이 크게 훼손된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비미국· 비유럽 필자는 5% 미만

지난 2007년 필자는 정치학, 사회학, 인류학, 사회복지학, 커뮤니케이션학 5개 분야의 IF top journal 3개를 선택하고, 이들 저널에 실린 10년치 논문의 필자와 주제를 분석한 바 있다. 그 결과, 예상은 했지만 너무 놀라웠다. 비미국, 비유럽의 필자가 쓴 논문이 5% 미만이었고, 그나마 여기에 실린 비미국, 비유럽 필자(예를 들면 대만, 브라질 등)의 논문주제도 미국의 주류학문의 조류를 따라가는 것이었음을 발견한 바 있다(이 논문은 <Inter-Asia Cultural Studies>에 게재했다).

한국정치, 한국의 시민사회, 한국의 문화에 대한 논문을 쓰면 SSCI 저널에 실릴 확률이 거의 없고, 이론도 미국의 주류학문에서 인기가 있거나 영향력 있는 것들을 인용하지 않고는 게재될 확률이 거의 없었다. 미국의 주류이론과 문제틀을 따라가는 논문을 써야 그나마(그것도 5% 미만이지만) 이른바 Indexed Journal에 게재가 가능하다는 현실을 보여줬다. 한국에 대해 연구하면 영향력 최고수준의 저널에 실릴 수 없으니까, 한국에 관한 논문을 쓰지 않게 된다. 이게 우리가 원하는 한국 사회과학의 세계적 경쟁력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SSCI, A&HCI를 중시하면서 생겨난 두 번째 문제. 사회과학분야에서도 자연과학이나 공학분야와 연관된 연구 분야의 업적이 높게 평가되는 심각한 왜곡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심리학, 자연지리, 보건, 의료 관련 분야, 테크놀로지 연관분야, 실험에 기초한 미시적 행동과학 분야가 IF 높은 저널에 많은 논문을 게재하게 된다. 지난 10년간 사회과학 여러 분야에서 신규채용 교수들이 대부분 이들 분야에 집중되고, 이들이 소위 촉망받는 학자로 대접을 받고 있다. 역사적 연구, 철학적 연구, 이론적 연구, 1년 이상 현지조사 연구를 하는 학자들은 푸대접을 넘어 게으른 학자들로 취급되고 있다.

사회과학의 탈역사화, 철학과 이론의 부재, 구조와 거시적 문제틀의 부재 등등. 이렇게 SSCI, A&HCI를 중심으로 연구를 평가하는 정책은 중국, 홍콩, 대만, 싱가포르 대학에서 동시에 시작되었다. 일본만이 예외로 있지만, 몇몇 대학은 이 조류에 합류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중국도 이야길 들어보면 이들 저널에 논문이 있으면 유수대학에 자리 잡기가 훨씬 쉬워지고 연봉도 달라진다고 한다. 후발주자들의 천박함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 지수와 함께 연구평가에 나타나는 또 한 가지 심각한 문제는 저서를 논문 두 편으로 쳐주는 평가기준이다. 하나의 주제를 오랫동안 천착하면서 만들어낸 연구서가 논문 두 편에 불과하다면 누가 책을 쓰겠는가. 책을 그렇게 밖에 인정하지 못하는 까닭은 객관적인 평가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한다. 미국이나 유럽은 출판사가 저서의 질을 평가해서 책을 출판해주기 때문에, 그리고 책을 서평을 통해 평가하는 제도가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우리나라 출판사는 그런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 대학출판부는 물론이고 상업출판사도 그런 문화적 권력, 지식생산 권력을 축적하지 못한 게 사실이다.

이런 까닭에 미국, 유럽 유수대학에서 정년보장의 기본요건으로 박사논문 이후 별개의 주제를 발전시킨 저서 한 권을 요구하는 게 가능하다. 한국대학은 저서를 평가할 능력이 없음을 스스로 자백하고 논문 2편 정도의 점수를 준다.

문제점은 이 정도하고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몇 가지 제안을 드린다. 첫째, 교수 평가에서 못하는 사람을 걸러내는 작업보다 잘하는 상위 30%를 지원하는 방식이 중요하다. 1986년 이후 교수로서 생활한 경험에 비춰 볼 때 한국대학의 실정에 맞는 평가틀은 잘 하는 사람 존중해주기 아닐까 싶다. 정년보장을 못 받으면 먹고 살 길이 없어지는데, 어떻게 그것을 주지 않겠는가. 교수들이 객관적 평가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하면 사람을 벼랑으로 미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못하는 것이다.

저서 평가 능력 없는 국내 대학과 출판사

둘째, 평가기준을 현재 사용하는 소위‘객관적’평가측정방식과 주관적인 평가 방식으로 이원화하길 제안한다. 가장 주관적인 방식이란 동료들에게 묻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저서이든 논문이든 스스로 선택한 대표 저서나 논문 3편을 제출받아서, 유사분야의 동료 10명에게 (미국대학에서 정년보장 심사할 때 5명 혹은 10명의 심사위원을 추천받기도 한다) 평가를 요청하면 된다. 질문은 “당신 대학에서 이 사람을 정년보장 교수로 임용할만한가”, “이 저서는 해당 학계에 전환점이나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는가, 기여한다면 어떤 근거로 그렇게 평가할 수 있는가”, “이 논문은 해당 학문 분야에 어떤 의미 있는 기여를 하고 있는가” 등에 대한 답을 들으면 된다. 최상위 2개, 최하위 2개의 평가는 버릴 수도 있다. 이렇게 하면 주관적이지만 오히려 더 나은 평가가 가능하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셋째, 학술지는 ‘학문적으로 의미 있는 작업’을 북돋우는 역할을 해야 한다. 지금처럼 각 학회지들이 세 사람의 평가를 평균해서 (수정 후 게재+대폭 수정 후 재심+대폭 수정 후 재심=대폭 수정 후 재심) 기계적으로 논문게재여부를 결정하는 풍토는 개혁할 필요가 있다. 편집장과 편집위원은 책임과 권한을 가지고, 가장‘주관적’으로 좋은 논문, 꼴은 덜 갖췄지만 도발적이고 도전적인 논문을 게재할 자신감과 권한을 행사하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이걸 못한다면 대학원생이 편집위원회를 운영해도 충분하지 않겠는가. 교수신문이 이런 특집을 기획해서 감사드리면서, 사회과학계가 이 문제를 토론하고 성찰하는 기회를 만들기를 기대한다.


강명구 서울대·언론정보학과
아이오와대에서 박사를 했다. 문화연구, 저널리즘 분야의 연구를 해왔다. 지식생산의 식민성을 넘어서는 대안을 위해 최근에 훈민공론장의 이론을 구성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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