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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상한 이름의 유래… 먹물 들었으니 글도 잘 할까?
고상한 이름의 유래… 먹물 들었으니 글도 잘 할까?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 승인 2013.06.18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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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86_ 문어

文魚는 軟體動物, 頭足綱, 八腕目으로 주꾸미, 낙지와 함께 다리(팔)가 여덟이고 오징어, 꼴뚜기들은 다리가 열 개인 십완목이다. “여덟 가랑이 대 문어같이 멀끔하다”란 무엇이 미끈미끈하고 번지르르하거나 생김생김이 환함을 이르는 말이요, 눈에 보이는 대로 기업을 확장하는 것을 두고 ‘문어발 경영’이라 한다지. 문어는 세계적으로 300여종이 있고, 가장 대표적인 것이 倭文魚(Octopus vulgaris)이며, 문어 중에서 제일 큰 놈은 ‘거대태평양문어(giant pacificoctopus)’로 체중이 15kg, 벌린 팔 길이가 4.3m나 된다고 한다.

문어는 주로 해조류가 그득 있는 암초지대에 살며, 뼈가 없는 말 그대로 軟體라 유연하게 몸을 비틀어 좁은 틈에도 기어든다. 또한 소라(고둥)를 깨어 먹을 정도로 날카로운 앵무새부리 닮은 키틴질의 부리(이빨)가 팔의 중앙부에 있어 물리면 다치고, 특히 열대 종인 ‘푸른점문어(blue-ringed octopus)’침(타액)에 맹독성인 테트로도톡신(tetrodotoxin)이 있어 물리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한다.

‘바다의 카멜레온’이라 불리는 야행성인 이 동물은 몸 빛깔이 대체적으로 적갈색 또는 회색인데, 살갗의 色素胞(chromatophore)에는 노랑, 빨강, 갈색, 귤색, 흑색 등의 색소가 들어 있어 자극을 받거나 주변 환경변화에 따라 붉으락푸르락 제 맘대로 체색을 바꾼다. 또한 근육을 자유자재로 또르르 말고, 주르르 펴서 가시돌기를 만드는가하면 海草꼴이나 울툭불툭 바위모양도 만들어내고, 또 너부시 엎드려 죄다 무서워하는 바다뱀이나 장어흉내를 내기도 한다.

그리고 새우, 게(갑각류)나 고둥, 조개(연체동물)를 먹으며, 갯지렁이도 주된 먹잇감인데, 먹이를 잡아 집으로 가져가 먹는 습성이 있어 이들의 집 앞에는 조개껍데기가 널려 있다한다. 또한 먹이를 잡으면 제일 먼저 침을 집어넣어 마비시킨 다음에 부리로 뜯는데, 딱딱한 껍데기를 가진 조개는 부리로 조가비에 구멍을 뚫어 거기로 독을 집어넣어 두 껍데기가 열리면 살을 뜯는다.

이들의 몸 보호 작전이 여럿이니 위장하고, 몰래 숨고, 경계색으로 겁주며, 또 안 되겠다 싶으면 멜라닌(melanin)이 주성분인 먹물을 뿜어버리니 상어 같은 천적의 후각기를 마비시켜 追擊을 피한다. 또 바로 눈 앞에서 발각돼 오도가도 못 할 최악의 지경이면 도마뱀처럼 제 다리를 스스로 잘라주고(自切) 내뺀다. 그리고 제 패거리끼리 서로 헐뜯고 비방함을 일러‘문어 제 다리 뜯어먹는 격’이라고 하는데, “갈치가 제 꼬리 베먹는다”와 같은 속담인데, 실제로 몹시 주리면 제 다리도 끊어 먹는다고 한다.

문어발에 붙은 빨판(suctioncup)은 달라 붙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맛을 보며, 이 빨판을 흉내 내어 주방기구인 흡착행거를 만들었다. 문어 미로실험에서 무척추동물 중에 지능이 가장 높은 것이 알려 졌으며, 아주 복잡한 신경계를 가졌지만 그 중 일부만 뇌에 있을 뿐 온 전신에 퍼져 있어서, 다리도 뇌의 명령을 받지 않고 자율적으로 자극에 반응한다. 그러니 걸핏하면 아픔을 덜 타는 제 다리도 잘라 먹을 수 있는 것. 더불어 신경도 1mm나 굵어서 神經生理學실험 재료에 단골로 쓰인다.

交接腕또는 生殖腕이라 부르는 오른쪽 셋째 다리 끝에다 정포(정자를 모운 덩어리)를 얹어 암컷의 外套腔(몸 안)에 넣어주며, 암놈은 내처 2~10만개의 수정란을 수심 13~30m의 바위 틈새 등 후미진 곳에 몇날며칠이 걸려 소복이 달라 붙이고, 어미는 어디 가지않고 눈을 치뜨고 주변을 맴돌면서 알을 지키며, 기다란 발을 설렁설렁 흔들어 산소 많은 물을 흘려준다. 문어의 지극하고 끔찍한 모성애다! 이러기를 내리 수 개월을 이어가는데 아비는 짝짓기하고 얼마 후에 죽고, 몸이 지칠 대로 지쳐 핼쑥하고 눈까지 거슴츠레해진 어미는 부화와 동시에 깔축없이 시나브로 죽고 만다. 몸은 죽어도 이렇듯 새끼를 남기는 것이 永生하는 길임을 문어는 알았도다! 눈은 아주 크고 무척 발달해 척추동물과 별반 다르지 않으며, 눈동자(pupil)가 가로로 짜개졌다.

문어 잡이는 통발도 쓰지만 주로 ‘문어항아리’를 사용하니, 문어가 은신처를 찾아드는 본성을 써먹는 것으로, 20~50m 깊이에 빈 항아리를 여럿을 줄줄이 매달아 떨어뜨리고 하루나 이틀 후에 배로 끌어올린다. 물고기들은 항아리가 움직이면 도망가지만 문어는 더욱 옹송그리고 벽에 찰싹 붙으니 들었다면 백발백중이다. 그런데 단지가 아무리 커도 딴 놈은 얼씬도 못 하기에 딱 한 마리씩만 들었다.

문어를 살짝 데쳐 어슷썰기로 삐져대니, 둘레에 붉은 가는 테를 한 純白의 넓적한 살점을 초고추장이나 기름소금에 찍어 먹는 文魚熟膾는 그야말로 별미요, 일본사람들은 초밥이나 타코야끼에 쓴다(타코는 낙지, 문어를, 야끼는 구움을 이름). 그러나 앵글로색슨계 사람들은 악마의 고기(devil fish)라 해 기피하며, 요리천국인 중국에 오히려 문어요리가 드문 것도 이상스럽다.

흔히 둥그스름하게 사람머리 닮았다하여 ‘문어머리’라 부르는데 그것은 결코 머리가 아니라 먹통 등 내장이 든 ‘몸통’이다. 그리고 ‘먹물’하면 배움이 많은 사람이나 글을 잘 쓰는 이를 이르는 말이 아닌가. 아무튼 ‘문어 머리에 먹물이 들었으니 글도 잘 할 것이라’하여 ‘文魚’란 이름이 붙지 않았을까. 아주 고상한 이름의 소유자 문어로다.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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