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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들은 왜 책을 읽을 수 없는가
대학생들은 왜 책을 읽을 수 없는가
  • 교수신문
  • 승인 2013.06.10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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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최근에 우리 대학생들의 독서량이 다시 도마 위에 오른 바 있다. 통계조사 결과, 우리 대학생들이 한 해 평균 도서관에서 대출하는 도서가 아홉 권 남짓 된다는 것인데, 이 요령부득의 지표를 놓고 네티즌들의 의견이 분분했던 것이다. 우리 대학생들이 한 해에 도서관에서 아홉 권 남짓한 책을 빌려본다는 사실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 아홉 권의 책이 어떤 성질의 책인지를 묻는 일은 더욱 두렵다. 그 아홉 권의 책을 왜 빌렸고 어떻게 처리했는지는 묻기조차 싫다. 우리 대학생의 독서 실태에 대한 우려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가령 캠브리지대 대학생들이 한 학기에 읽는 책들의 양과 비교할 때 우리 대학생들은 차라리 문맹이라고 불릴 만하다.

다른 통계에서는 하버드대 학생들이 구입하는 책들이 이른바 고전이라고 할 만한 책들인 반면에, 서울대 학생들조차 베스트셀러 위주의 시간 죽이기에 가까운 성질의 독서를 하고 있음이 밝혀진 적도 있다. 이런 사실들을 들어 사람들은 누누이 우리 학생들이 좋은 책을 더 많이 읽어야 한다고 강조하곤 한다. 그렇지만 실제로 대학에서 바라보는 책의 미래는 암울하다. 우리 사회가 거의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우리 사회는 너무 실용적이고 지나치게 조급하다. 그런 사회가 진정으로 대학생들에게 책읽기를 권장하는가도 의문이다.

아마도 IMF체제 이후부터 심화된 현상일 텐데 대학은 더 이상 바깥세상과 독립된 공간이 아니다. 학생들은 다양한 활동들을 통해 자신의 가능성을 타진하거나 책들을 통해 자신이 가보지 못한 낯선 곳을 꿈꿔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언제나 조바심에 사로잡힌 예비 사회인일 뿐이다. 대학 안의 대학이라고 불리었던 대학의 도서관은 독서실이나 고시원, 취업준비생들의 집결지나 다름없다. 한 대학이 얼마나 성실하고 특성 있게 학생들을 교육하는가와는 무관하게, 그야말로 단순무식한 방식으로 취업률이라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전국의 대학들이 차례대로 눕혀지고, 그러한 키재기에 의해서 대학이나 학과의 운명이 결정된다. 그러다보니 인문학 영역은 언제나 구조조정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학문의 다양성이라든가 교육시스템의 특화는 더 이상 깊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교양의 영역은 실용성이라든가 취업과의 연계성에 맞춰 빠르게 재편되고 있으며 결국 학생들에 대한 교육은 졸업 후에 당장 유용할 ‘맞춤형 교육’의 형태를 취하게 된다. 이 시대의 학생들은 최소한의 배터리를 장착한 채 취업전선으로 내보내지는 것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이러한 맞춤형 교육은 기술혁명 등에 의해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문명 속에서 순식간에 시효를 다해버린다. 대학들은 한때 전문대학이라든가 기능학원에서 맡아하던 분야들을 새로운 학과로 개설해 높은 취업률을 확보하려고 애쓰고,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학생들은 오로지 실용적 관점에서 단기간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학업에 매진한다. 그러다 보니, 대학의 캠퍼스에서 학생들이 책을 읽는 모습을 보기란 어렵다.

실용적 관점에서 볼 때, 책은 책 읽는 사람을 미궁에 빠트리는 위험한 물건이기 쉽다. 그들이 보기에 책은 위험한 열정이나 너무 커다란 관념들에 의지하게 만든다. 실용주의 시대의 대학생들에게도 책은 그저 시간을 죽이는 재미있는 것이어야 하거나 자기계발서이거나 이른바 ‘힐링’을 가져다주는 것이어야 한다. 아마도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貿易艦 위에서 살아남으려면 절실하게 실용주의적 감각이 요구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눈앞의 현실이 우리 사회의 ‘無-책’에 대한 면책특권이 되지는 않는다. 젊은이들이 이미지들에 열광하고 스마트폰 등의 게임에 빠져들고 결과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소통되는 책이 공항 대기실의 간이서점에서 판매되는 가벼운 물건 같은 것으로 전락할 때, 우리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를 한 권의 책에 비유한다면 그 책은 이미지들로 가득 찬 가벼운 책이거나 본질에 있어서 ‘反-책’에 가깝다. 물론 책이 전부라거나 무조건 다독을 칭송하자는 게 아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며 생각을 반추하고 성찰의 깊이를 더해가지 않는 사회에는 미래가 없다. 그 사회는 냄비처럼 끓다가 힘없이 식어버릴지도 모르며, 자기 생각이나 비판력이 없는 좀비들의 서식지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평균 수명 100세를 눈앞에 둔 시대에 고작 스무 살의 젊은이들에게 오로지 취업만을 목표로 하는 실용적인 맞춤형 교육을 내세운다는 것이 결과적으로 얼마나 괴물스럽고 심지어 폭력적인 것인가를 다시 한 번 진지하게 물을 때다. 우리 대학생들이 조금 더 깊고 두꺼운 책이 돼야 하지 않을까.

손종업 서평위원/선문대·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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