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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들 간의 엇갈린 대화가 ‘혼돈’ 불러왔다
이론들 간의 엇갈린 대화가 ‘혼돈’ 불러왔다
  • 교수신문
  • 승인 2013.06.10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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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 『사회학 이론 무엇이 문제인가』 니코스 무젤리스 지음|정헌주 옮김|아카넷|376쪽|24,000원

▲ 니코스 무젤리스
오늘날 사회과학이론은 심히 혼란스러운 상태에 있다. 이론과 경험적 연구의 상대적 단절, 철학적 이론화로 사회학이론의 복속, 사회과학 분과학문들 간의 경계와 하위 분과학문들 간 경계의 소멸, 또는 각 분과학문들의 내적 논리의 융합이 이러한 혼란을 초래했다. 『사회학이론: 무엇이 문제인가』의 저자 니코스 무젤리스(Nicos Mouzelis)는 오늘날 사회학이론이 당면한 현실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사회학이론: 무엇이 문제인가』는 이러한 혼란을 극복하고 그 대안을 제시하고자 하는 노력의 산물이다. 이 책은 1999년에 출간된 Sociological Theory: What Went Wrong?을 완역한 것이다. 저자는 1939년 그리스 태생으로 현재 런던정경대(LSE) 사회학부에서 30년간 교수직에 있다가 현재는 명예교수로 있으며, 역사사회학, 조직사회학, 발전사회학, 사회이론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수십 편의 논문과 다수의 저작을 출간한 열정적인 사회학자이다. 무젤리스는 이미 28세에 『조직과 관료제(Organization and Bureaucracy: An Analysis of Modern Theories)』(1967)를 출간해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이후 제3세계 주변부국가의 정치, 발전, 농업 등에 관한 연구에 치중해 수많은 논문을 집필했으며, 1990년대부터 사회학이론으로 관심이 이동했다.

1990년대 격변의 시기에 학문적 관심 이동
특히 이 책은 무젤리스가 사회학이론으로 관심을 이동한 초기에 해당하는 저작이다. 그가 사회학이론으로 관심을 이동한 1990년대는 사회경제적 격변의 시기였다. 1980년대부터 불어닥친 신자유주의 열풍으로 시장만능주의가 팽배해지고, 베를린장벽의 붕괴로 탈냉전시대에 돌입했으며, 소련의 해체와 함께 자본주의의 고삐가 풀리고, 복지국가의 쇠퇴로 사회양극화가 심화되는 등 사회변화가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이러한 사회변화의 와중에서 새로운 세계관과 사회이론의 정립이 요구됨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사회이론은 이러한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하기는커녕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는 것이 저자가 지적하고 있는 현실이다. 

현대 사회학이론의 출발점이자 전후 사회학이론의 새로운 지평을 확립한 것은 단연 파슨스의 구조기능주의이다. 구조기능주의는 전쟁의 혼돈 속에서 사회의 질서와 안정을 희구하는 가운데 사회통합과 균형 회복의 원리를 추구하는 많은 이론들을 제치고 완성태로서 자리를 잡았다. 사이버네틱스에 의한 체계의 균형유지 논리에 입각한 구조기능주의의 이론적 견고함은 한때 전가의 보도, 이론적 철옹성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구조기능주의의 쇠락과 미시사회학의 출현
하지만 과잉체계화로 인해 인간의 자율성 및 주체성 묵살, 자동조절장치에 의한 사회균형 유지의 강조로 사회역동성에 대한 이해 부재, 사회갈등의 주변화 등 구조기능주의는 근본적 약점이 부각되면서 다방면에서 이론적 도전을 받게 됐다. 이러한 이론화들은 한편으로는 체계적 측면보다는 개인의 행위에 초점을 두는 미시사회학으로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구조와 같은 외재적 요소보다 인간의 내면적 측면을 우선시하는 해석사회학으로 전환된다. 전자는 합리적 선택이론, 후자는 상징적 상호작용이론, 민속방법론 등으로 전개되며 사회학이론의 발전을 주도한다. 이러한 미시적 접근의 공통점은 개인을 기본 분석단위로 삼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공통 관심사는 들의 상호작용에 있다.

공통점은 여기서 끝난다. 이제 관심은 상호작용의 방식에 있다. 즉 상호작용의 근원이 무엇이냐에 따라 미시사회학은 분기하며, 사회학이론의 급격한 발전을 가져온다. 미시사회학의 무한한(?) 분기에 따른 사회학의 이론적 발전은 사회학이론의 지평을 넓혀주는 한편 이론적 상실을 수반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그가 지적하는 상실은 세 가지다. 첫째, 위계적 맥락의 상실이다. 미시사회학은 인간을 체계에서 탈피하는 데 성공했지만, 그때 인간은 평평한 공간 속의 개인이다. 인간이 속해 있는 사회는 평평하지 않다. 요컨대 사회 속의 인간은 수직적으로, 위계적으로 배열돼 있다.

사회적 게임은 위계적 게임이며, 합리적 선택도 위계적 선택이라고 저자는 일갈한다. 둘째, 역사적·사회적 맥락의 상실이다. 미시사회학에 등장하는 인간은 추상적 개인이다. 인간은 체계이론에서처럼 사회적 조건의 산물은 아니지만 어쨌든 영향을 받는다. 사회적 맥락을 벗어난 개인은 당연히 역사적 맥락도 벗어난다. 셋째는 이론적 맥락의 결여다. 미시사회학의 발전과 분기는 서로 어긋나는 길을 가며 타 이론과의 연계와 접목을 불가능하게 해 전체를 조망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특히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이 체계를 벗어나며 체계이론으로부터 멀어져 가게 되었고, 이윽고 급진적 행위중심 이론화로 치달으며, 급기야 구조기능주의의 부정을 넘어 폐기로 나아가기도 했다.

그 결과 사회학이론은 서로 상반되는 두 개의 방향으로 이론화가 전개되며 양자간에 깊은 간극과 불화가 조성됐고, 사회학이론이 각자의 방향으로 발전과 분화를 거듭하면서 둘 사이의 간극은 서로 건너갈 수 없을 만큼 넓어졌다. 그 넓어진 공백 사이로 언어학, 정신분석학 등이 침투하면서 이론과 이론, 학문과 학문 사이의 경계를 허물며 사회학이론의 전통을 해체하고 사회를 언어, 상징, 담화, 무의식으로 되돌려놓으려는 경향이 일며 사회학이론의 본토를 잠식해갔다.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구조주의, 심지어 포스트마르크스주의가 득세하면서 사회학이론은 드디어 미궁에 빠져 사회학이론 본연의 색채가 퇴색하고 만다고 저자는 개탄한다. 이에 한편에서는 넓어진 구조와 행위, 거시와 미시의 간극을 이어 둘 간의 이론적 조화를 이루려고 하는 시도가 여러 사회학자들에 의해 진행됐다.

이러한 시도는 크게 세 가지 형태로 전개됐다. 하나는 거시와 미시를 결합하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둘을 연결하려는 것이며, 또 하나는 둘을 초월하려는 것이다. 저자는 엘리아스, 부르디외, 기든스를 각각의 시도와 결부시킨다. 엘리아스는 ‘결합태’, 부르디외는 ‘아비투스’, 기든스는 ‘구조의 이중성’을 각각 도입해 구조기능주의도 극복하고 미시사회학도 극복하려고 시도한다.

이들의 시도는 체계 중심적 이론화로 경도된 파슨스의 사회학이론과 행위 중심으로 경도된 각종 해석적 미시사회학이 지닌 이론적 편향성과 경직성에 대한 대안으로 양자 간의 화해, 극복, 통일을 성공했다고 자처했고 사회학이론계에서 일정한 정도 공인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 세 이론가에 대한 세간의 평가와는 달리 무젤리스의 진단은 가혹하다. 한 마디로, 이들은 자신들의 의도와는 달리 구조기능주의를 뒷문으로 재도입하고만 것이다.

새로운 이론적 시도의 한계
구조기능주의의 경직성에 대항하는 미시사회학, 모든 학문간 경계를 타파하려는 포스트모던 이론화 등에 대한 가혹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이들 이론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지금까지의 이론적 혼돈은 이들 이론들이 서로 엇갈린 대화를 하고 있는 데서 연유한다는 것이다. 각 이론들은 타 이론과의 대화 없이 자기 영토 속에 구획화돼 있는 것이다. 저자가 추구하고 있는 것은 이론적 통합이 아니라 이론들 간의 대화 연방체를 구성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경험적 연구와 일반이론, 구조와 행위, 거시와 미시의 대립이 아닌 소통의 세계가 열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것이 저자의 처방이다.

 


정헌주 고려대 한국사회연구소 연구교수·사회학
필자는 고려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저서로는 『현대사회와 미디어비판』(공저)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지구화의 실상과 허상』(근간)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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