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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술 처먹었죠?”
“또 술 처먹었죠?”
  • 교수신문
  • 승인 2013.06.03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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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릴레이’ 에세이

“선배님, 오늘은 저 술 조금만 마시겠습니다.” “아니, 왜 그러시나, 자네답지 않게?” “내일은 1교시부터 수업을 해야 합니다. 저까지 봉변을 당할 수야 없어서요.” “당하다니, 무슨 봉변을 당한다는 말씀인가?” 반쯤 남은 소주잔을 훌쩍 비운 후배는 그제서야 껄껄껄한 웃음을 꿀꺽 삼키더니, 자기네 학교에서 있었다는 치부를 끄집어낸다. 얼마 전, 학과 동창회 임원회를 마치고 난 후의 회식 자리에서였다. 모 고등학교의 학생부장 보직을 맡고 있는 그 후배가 무르익어가는 좌중을 둘러보며 전해 준 ‘봉변’이란 대충 이러했다.

대부분의 학교들이 그렇듯이 그 학교 역시 학생들의 생활 지도로 하루도 빤한 날 없이 골머리를 앓고 있는 중이란다. 얼마 전에도 2학년 학생들의 심각한 폭력 사건이 발생해서 가해 학생들을 다른 학교로 전학을 보내야만 하게 되었단다. 그런 아픔을 겪어야 하는 40대 후반의 담임교사는 퇴근 후에 몇몇 동료들과 어울려서 자책과 위로의 술자리를 가졌다고 한다.

문제는 바로 다음날이었다. 선생님은 어쩔 수 없이 술이 덜 깬 상태로 수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마침 첫 시간이 담임 학급이었다. 안 그래도 다소 긴장을 하고 막 수업을 시작하려는데, 느닷없이 교탁 앞에 앉아 있던 한 녀석이 뭐라고 빈정거리나 싶더니 불쑥 큰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선생님, 어제 또 술 처먹었죠?” 순간, 그 선생님은 그만 머리가 ‘띠이잉’, 어안이 벙벙해지고 말았다. 귀엽게 군다고 흉허물 없이 대해 줬어도 그렇지, 이건 전혀 아니었다. 그는 퍼뜩 정신을 추슬러 냅다 소리를 질렀것다.

“그래 이놈아, 나 어제 네놈들 때문에 밤새 술 잔뜩 처먹었다.” ……? ……! 이 무슨 변괴란 말인가?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 국어국문학을 전공한 우리들은 모두 한동안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감히 실소조차도 머금을 수 없었다. 하기야 우리말의 존비어가 여간 복잡해야지. 그만큼 우리의 문화와 언어가 빼어나다는 證左이지만,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습득하는 과정에서 몹시 힘들어 하는 부분 중의 하나다.

우리말의 높임과 낮춤에는 크게 어휘 구사 방법과 어법을 활용하는 방법이 있다. 말씀/말, 진지/밥, 치아/이/이빨, 당신/자네/그대/너, 나/저, 우리/저희, 돌아가시다/죽다/뒈지다, 사뢰다/여쭈다/말하다/지껄이다, 잡수시다/드시다/먹다/처먹다, 계시다/있다, 아버님/아버지/애비, 옥고/졸고, -께옵서/-께서/-이, 가 …… 등이 전자의 경우요, 어법을 통한 높임에는 선어말어미 ‘-시-’를 써서 행위의 주체를 높임에, 이에도 관련 인물을 직접 높이는가 하면, 인물과 관련된 사물이나 신체의 일부분 등을 높이는 간접 높임이 있다. 또한 어휘 높임과 관련하여 목적어나 부사어를 높이는 객체 높임도 있다.

그런가 하면, 일반적인 대화에서는 대화의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서 일정한 종결 어미를 선택해 상대방을 높이는데, 상대를 높임에도 격식을 갖추어 말할 때의 아주 높임, 예사 높임, 예사 낮춤, 아주 낮춤이 있고, 격식을 덜 따지는 반말 중에도 두루 높임과 두루 낮춤을 구별한다. 그 뿐만 아니라, ‘-옵-’, ‘-삽-’, ‘-잡-’ 따위의 선어말어미를 사용하여 말을 하는 사람이 특별히 공손한 뜻을 나타냄으로써 말씀을 듣는 분을 높이는 공손법도 제대로 써야 한다.

게다가 ‘할아버지, 아버지는 또 술을 먹고 있습니다.’와 같이, 말을 하는 사람에게는 높여야 할 분이지만 말씀을 듣는 분에게는 높여야 할 대상이 아닐 경우, 행위자를 높이지 않는 압존법까지도 두루 고려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럼에, 아무리 선생이 술을 과하게 마신 것이 못마땅해도 그렇지, ‘술 처먹었죠?’라니. ‘‘약주 드셨사옵니까?’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술 드셨어요?’ 정도라도 됐어야지. 그 놈은 공손법은 고사하고 어휘 높임은 물론, 주체 높임, 상대 높임을 전혀 모르는, 도대체 돼먹지 않은 후레자식 중에서도 개자식이로고. 젊은것들에겐 온통 막짓과 막말만이 난무할 뿐이다. 부모님께도 거침없이 삿대질이요 반말 투정인데, 그까짓 교사들에게야 오죽하랴.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꼬? 가정 구조의 붕괴 탓인가, 학교 교육의 오류인가, 아니면 사회 규범의 증발인가. 풀리잖는 직장 일로, 꼬이기만 하는 사업 때문에 피할 수 없는 술자리가 남편은 하루하루가 고달프다.

그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건 다음날 아침에 미처 눈도 못 뜬 상태에서 들어야 하는 송곳끝 같은 여편네의 외마디다. “웬 술을 그렇게 줄창 처먹고 다녀?” 초·중·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도덕이니, 윤리니 하는 교과가 첫자리를 빼앗긴 것은 이미 오래다. 온 국민들이 온통 영어 환장증에 걸려서 국어 과목은 아예 맥을 못 춘다. 국어의 어법이나, 문법, 화법의 기초마저도 제대로 학습하지 않는다. 장유유서 좋아하시네. 오늘, 이 나라엔 위계나 질서 같은 건 없다. 규범과 예의가 무너진 지가 언제인가. 목소리 큰 놈이 이기고, 권력 나부랭이나 돈푼 꽤나 있으면 장땡이다. ‘말이 고우냐 비단이 고우냐.’, ‘말로 온 공을 갚는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가린다.’, ‘말 잘하고 징역 가랴.’는 등의 깨우침은 한낱 속된 말들일 뿐이다. 지성과 덕성을 수련한답시는 학생들의 입술엔 온통 쌍욕을 달고 다니니, “씨이발 조도! 꼰대야, 어제 또 술 졸라 처먹었지?”하지 않은 것만 해도 천천만만 다행이다. □ ‘추천 릴레이 에세이’의 다음 필자는 <수필문학> 편집장으로 있는 이자야 수필가입니다.

전병삼 이음새문학회 회장·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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