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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이기심과 애국심의 광기를 주제로 해석했죠”
“정치적 이기심과 애국심의 광기를 주제로 해석했죠”
  • 송현민 음악평론가
  • 승인 2013.05.27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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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아이다」 연출한 김학민 경희대 교수

 

 

올해는 베르디(1813~1901)의 탄생 200주년이 되는 해. 베르디가 섭섭하지 않을 정도로 국내 공연장 곳곳에 베르디의 작품이 오르고 있었다. 무엇보다 지난 4월 25일부터 28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 오른 서울시오페라단의 「아이다」는 세간의 화제를 모은 작품이었다. 특히 『오페라 읽어주는 남자』라는 책으로 유명세를 떨쳤던 김학민 연출가(경희대·연극영화과 교수)가 ‘오페라 연출하는 남자’가 됐던 무대. 그의 「아이다」는 뭔가 남달랐다. 생각해보니 대중예술의 첨병인 뮤지컬과 클래식의 최종고지인 오페라 사이에서 ‘경계인’으로 지내며 여러 무대에서 전리품으로 획득한 모든 감각을 털어놓은 듯 한 무대였다.

-「아이다」를 끝낸 소감이 어떠한가?
“막을 내린 후에도 국립오페라단과 작업이 시작돼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25년 전에 서울시오페라단이 했던 「아이다」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본 적이 있다. 당시에는 연출가 지망생이었는데, 이번에는 연출가로 참여했다. 기쁘지 않겠는가.”

- 자신이 생각하는 「아이다」는 어떤 작품인가?
“고전으로 남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연출가에게 잘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하는 재료를 이미 가지고 있는 작품이다. 그래서 연출가노트에도 ‘이번 작품의 연출자는 제가 아니라 이 작품을 작곡한 베르디 선생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라고 썼다. 베르디의 초기 작품인 「맥베스」(1846), 「일 트로바토레」(1853)에 비하면 굉장히 정밀한 작품이다.”

- 무대를 만들면서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군중에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이었다. 악보에는 그냥 ‘군중’으로만 되어 있었다. 살펴보면 군중 안에는 다양한 이들, 대신, 군인, 백성, 귀족, 시녀, 혹은 광신자가 있다. 그런 군중의 구체화 작업이 흥미로웠다.”

작품의 백미로 꼽히는 2막의 개선행렬은 물론 1막의 전쟁선포나 제식 장면 등에 출연한 ‘군중’은 좀 특별했다. 전문 합창단원·배우와 함께 서울시민으로 구성된 시민합창단과 시민배우들이 함께 올랐던 것. 정식 오디션을 거친 이들은 성악가들과 배우들, 무용수와 함께 연습에 참여하면서 군인, 백성여자, 사제 등의 역할을 맡았다. 김학민 연출가는 이들을 “정상이 아닐 정도로 열정에 사로잡힌 이들”이며 “오페라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이”들이라고 했다.

- 그렇다면 아쉬운 점은?
“50명의 전문합창단원과 40명의 시민합창단이 함께 했다. 남성합창이 더 많았으면 쏟아내는 느낌이 달랐을 것이다. 더 많은 무용수의 출연과 앙상블에 욕심을 냈지만(1막의 제식, 2막의 암네리스 방과 개선행렬에 무용수들이 등장하여 관객의 시선을 모았다), 시간과 물리적인 환경이 부족했던 것 같다.”

「아이다」는 에티오피아 공주였지만 전쟁포로로 끌려와 이집트 왕궁에서 노예로 일하는 타이틀롤 아이다, 이집트 장군 라다메스, 그리고 라다메스를 사랑하는 이집트 공주 암네리스, 이 젊은 주인공들의 삼각관계를 다룬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김학민 연출가의 시선은 달랐다. 그는 연출노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이집트 백성과 사제들의 광기를 끄집어내고자 합니다. … 이기심, 단체적 히스테리는 때로는 애국심의 형태로 때로는 종교적 열정의 모습으로 드러납니다. 이러한 원초적 심리상태는 수천년이 지나 현대를 사는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 오페라 「아이다」 제2막의 개선행렬 장면.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 주제를 광기로 잡은 것이 독특하다.
“고대 이집트 백성들의 광기어린 애국심, 에티오피아와 일으킬 전쟁을 향한 광기를 드러내고 싶었다. 제식 장면(1막 2장)에서 전쟁의 승리를 기원하는 광신도들의 기도와 희생양으로 바쳐지는 노예의 죽음. 한쪽에서는 전쟁을 준비하며 축성을 내리고 있지만 그 안에는 정치적 이기심과 애국심의 광기가 들어있다. 한 쪽의 승리는 다른 한 쪽의 비극 아닌가.”

- 이 주제를 드러내기 위해 힘을 실었던 장면이 있을 것 같은데.
“종교재판(4막 1장)이다. 라다메스를 향해 개선장군으로 칭송하던 이들은 그가 군사기밀을 누설했고 진술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그에게 죽음을 선고한다. 애국심의 형태로 드러내는, 사실은 단체적 히스테리이다. 악보에는 재판을 주관하는 사제들이 무대 밖에서 부르고 무대에는 암네리스가 자신의 방에서 두려움에 떨며 노래를 부르게 돼 있었다. 그녀가 사랑한 라다메스였기에. 난 그렇게 해서는 사제들이 지닌 광기가 드러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제들을 직접 무대에 세워 보이게 했고, 암네리스는 마치 재판의 현장에서 지켜보며 경악하는 모습으로 연출했다. 원래 무대 뒤에서 노래를 부르는 이들과 전면에 있던 암네리스가 한 무대에 있게 되니 무대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

- 원본에 해석과 변화를 준 것으로는 또 무엇이 있나?
“전쟁선포 장면(1막 1장)도 원래는 이집트왕과 대신들, 그리고 노예가 함께 있을 수 없는 장면이다. 하지만 다 한 무대에 출연시켰다. 에티오피아와의 전쟁이 선포되는 가운데 노예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군인들이 제압하는 무대 위의 모습이 금방이라도 전쟁이 일어날 것 같은 긴박한 느낌을 주었다.”

- 왜 해석과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는가?

“현대사회는 복잡한 시공간의 구조를 갖고 있다. 그래서 정서적으로도 관객들도 시간과 공간에 대한 융통성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앞서 말한 종교재판(4막 1장)에서 사제와 암네리스를 한 무대에 세우니, 두려움에 떠는 암네리스의 ‘방백’이 사제에게 향하는 직접적인 호소가 되지 않는가. 공간이 합쳐 변화를 주니 인물의 성격이 새롭게 창조되더라.”

- 변화는 필수지만 출연진과 스태프도 그 변화에 적응하려면 힘들 것 같다.
“종교재판 장면에서 사제 역할을 각기 다른 무대에서 열 번 이상 해본 이들이 한 번도 가사를 외워본 적이 없었다고 하더라. 무대 뒤에서 불렀으니. 하지만 내게는 이 장면이 작품의 승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장면이었다.”

아이다에게 군사기밀을 누설한 라다메스는 종교재판에서 진술을 거부하여 사제들에게 사형선고를 받고(3막) 돌무덤에 산 채로 갇힌다(4막).

- 지하감옥(4막)에서 죽어가는 아이다와 라다메스의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보통은 아이다와 라다메스가 죽는 장면은 보여주지 않기에 비극이지만 관객은 해피엔딩으로 상상하게 된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이다를 실제로 죽게 해 작품에 담긴 비극성을 보여주고 싶었다. 하늘에서 만나자며 죽어가는 아이다, 죽음이 앗아간 애인의 시체를 안고 본인의 죽음을 기다리는 라다메스. 무덤 밖의 암네리스는 ‘내게 평화를. 평화… 평화’라고 말하는, 비극의 삼박자. 나도 이 장면을 보는데, 배우들이 감정을 잘 살려 눈물이 났다.”

- 이번에 참여한 젊은 성악가들에 대한 평을 한다면?
“정말 ‘어렵게’ 발굴한 팀이었고, 모두가 다 잘 해주었다. 가장 믿음직스러운 이는 아모나스로 역의 이원종 테너였다. 연륜에 비해 흔들리지 않는 일관성, 지구력, 집중력이 있었다. 그 외에도 아이다 역의 손현희, 암네리스 역의 김정미, 아모나스로 역의 최기돈. 모두가 다 잘해주었다.”

오페라연출가를 “남들이 무엇을 볼지 그것을 미리 알고 계산하는 이”라고 그는 말한다. 관객을 직격할 감동을 미리 ‘예언’해야만 하는 연출이라는 예술. 앞으로 김학민 연출가가 선보일 작품과 이번 공연으로 강한 인상을 준 서울시오페라단의 남은 행보에 많은 기대를 걸어본다.

김학민 연출가는 고려대에서 영문학을, 서울대에서 음악이론 석·박사를 수료 후, 미국 텍사스 오스틴 주립대에서 오페라 연출 실기 박사를 취득했다. 뮤지컬「오페라의 유령」을 비롯해 모차르트와 베르디 등의 오페라를 연출했다.

 



송현민 음악평론가
제13회 객석예술평론상을 수상했고 이런저런무대연구소를 운영하면서 다양한 음악평론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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