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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70년대 국가통제가 學術場 망가뜨려”
“1960~70년대 국가통제가 學術場 망가뜨려”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3.05.27 11: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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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숙 배재대 교수, 「대학·학술정책과 국가 개입」 분석

“1960~1970년대 대학의 제도적 안정화에도 불구하고 교육과 연구는 황무지가 됐다. 생계로서의 교수, 국가발전학, 학술활동 자격증으로서의 학위를 의미하는 제도로서의 학술(안)과 사회문제에 대한 전방위적 접근, 잡문으로 치부되는 고발적 글쓰기, 실천지향적 학술추구를 의미하는 운동으로서의 학술(밖)이 분기됐다.”

민주화된 오늘날의 대학에서도 여전히 연구비란 명목으로 국가가 교수들에게 미시적인 통제를 가하고 있는 연원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대학에 대한 통제의 역사를 거슬러 찾아보면, 1960~1970년대 정부의 거시적 대학정비로 소급된다고 주장한 논문이 발표됐다. 연세대 국학연구원 HK연구단(단장 백영서 사학과)이 지난 24일 ‘권력(국가-지식)과 학술장, 경합하는 공공성’을 주제로 개최한 학술대회에서 강명숙 배재대 교수(교양사)가 발표한 「1960~70년대 대학 및 학술정책과 국가의 개입」이 그것. 강 교수는 1960~1970년대의 고등교육정책에 작용한 국가의 통제 메커니즘이 제도권 안의 대학 학술장을 망가뜨림과 동시에 이로부터 축출된 교수가 재야의 지식세력 형성의 젖줄이 됐다는 논지를 펼쳤다.

진단 방식은 제도화된 학술장에 가해진 국가 정책을 살펴봄으로써 제도화된 장에서의 학술 연구 행위의 성격 및 그 한계를 가늠해보는 우회적인 방식이었다. 박정희 정권의 조국근대화와 경제개발 추진, 정치적 정당성의 위기와 맞물린 상황에서 대학은 자율적인 거버넌스의 원리를 잃었고, 이는 제도권 밖의 학술장 형성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강 교수는 이에 대한 실증적인 통계자료를 제시함으로써 그의 주장에 대한 근거를 분명히 제시했다.

4·19가 대학사회에 하나의 전환기로 작동했던 1960년은 양적으로 급증한 대학생 및 대학교수로 인해 ‘대학망국론’이 제기될 정도로 대학사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팽배했던 시기다. 무능, 어용, 부패, 독재 교수를 축출하려는 시위가 잇따르자 정부는 ‘학원 정상화를 위한 긴급조치의 건’을 발표하고 ‘교수 축출의 기준’을 제시했다. 강 교수는 5·16 군사쿠테타로 집권한 정부가 이 기조를 이어받아 두 차례에 걸쳐 발표한 대대적인 대학정비계획으로 국가 개입의 정당화와 통제를 강화했다고 말했다.

국공립대와 사립대로 나누어 추진된 대학정비는 집단적 반발로 실패했고, 1966년 경제개발을 위한 장기종합교육계획을 마련하기 시작한 군사정부는 본격적으로 대학 통제에 나선다. 강 교수는 사립대 중심으로 추진했던 실험대학, 대학특성화 정책은 대학 구성원의 합의보다는 국가에 의해 인큐베이트된 계획적 개혁이자 국가가 대학에 개입하는 방식의 다양화를 시도한 것으로 읽어냈다. 또한 그는 1975년 부활한 학도호국단은 교수와 학생 상호 검열 및 감시체제 구축했고, 평가교수단과 교수재임용제는 교수의 지위를 불안정하게 만듦으로써 국가의 교수 및 학생 통제체제가 완성됐다고 말했다. 그가 근거로 제시한 ‘1976년도 국공립대 교수재임용 탈락 및 사임교수’ 표에서는 연구실적, 지도능력, 품위 등의 사유와 사임으로 제도권을 떠난 교수수가 사립대 포함 416명에 이른다.

강 교수는 국가의 통제로 매년 제도권 밖으로 축출된 교수와 학생의 5%가 학술활동 자격증의 의미가 된 제도화된 장이 아닌, 실천지향적 학술추구, 운동가로서의 재야에 또 다른 지식세력으로 재편된 한 원인이 됐다고 분석했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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