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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방지에서 투명한 질서의 공간으로
추방지에서 투명한 질서의 공간으로
  • 교수신문
  • 승인 2013.05.20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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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한국을 만든 40곳 22_ 소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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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충단공원, 명동·충무로 일대, 남산, 서울시의회 건물, 경복궁(광화문)일대, 덕수궁(정동), 서대문형무소, 탑골공원, 천도교 중앙대교당, 군산항, 부산근대역사관, 광주일고, 상하이 임시정부, 만주, 서울역, 경무대·청와대, 경교장(현 강북삼성병원), 이화장, 서울대(동숭동·관악), 부산 항구, 목포항, 소록도, 인천항, 제주도, 판문점·휴전선, 부산 국제시장, 거창, 지리산, 용산, 매향리(경기도), 여의도광장(공원), 마산(현 창원) 바다, 4·19국립묘지·기념관, 명동성당, 광주 금남로·전남도청, 울산 공단, 포항제철, 경부고속도로, 청계천·평화시장, 구로공단

 

▲ 곧게 뚫린 길 옆으로 한센병 환자들이 수용된 건물이 산뜻한 모습으로 서 있다. 소록도는 ‘병명’ 대신 ‘공간명’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여주는 역사적 실증이다. 사진제공 조명기

소록도 가는 길은 한센병에서 시작해 한센병으로 끝난다. 소록도 자혜병원이 개원한 1916년부터 100년 정도의 시간 동안 소록도라는 섬을 메운 건 한센병과 관련 정책ㆍ제도, 건축물, 인식 같은 것들뿐이다. 동시에 이 100년의 시간은 호모사케르의 추방지라는 부정적인 이미지에서 탈피해 투명한 질서의 공간으로 재사회화하려는 시간이기도 했다. 병을 가리키는 기표는 문둥병에서 나병으로 다시 한센병으로 바뀌었는데 이를 통해 기의에 내재돼 있는 부정적 이미지를 탈각시키고자 했다. 이에 걸맞게 병원의 명칭 역시 소록도 자혜의원에서 소록도갱생원으로 다시 중앙나요양소로 그리고 국립나병원과 국립소록도병원 등으로 7차례 바뀌는데, 이 변화는 소록도와 한센병을 분리하려는 의도 그리고 병명 대신 공간명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다크 투어리즘, 제유적 상상의 통로
소록도의 공간성 변화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폐쇄적이고 고립된 섬이 개방 공간으로 변모했다는 점이다. 소록도가 외부인에게 개방된 1980년 이후 특히 ‘인도가 없는’ 소록대교가 개통된 2009년 이후 소록도에 발을 들여놓는 사람의 대부분은 관광객이다. 현재 소록도에 거주하는 보호인원은 600여 명 가량이지만 한해 관광객은 50만 명이 넘는다. 유독지대(병사지대)와 무독지대(병사지대)로 엄격히 구분됐던 소록도는 이제 관광객 출입 가능 지역과 제한 지역으로 분할됐는데, 주민들이 살고 있는 마을과 학교 등은 ‘외부인 출입금지’ 팻말로 둘러싸여 있다. 종교단체를 통하지 않고 소록도를 방문한 관광객이 접근할 수 있는 곳은 소록도 해수욕장과 중앙공원뿐이다.

현대식 건물의 국립소록도병원 옆을 지나 검시실, 감금실, 한센병자료관 등을 거쳐 구라탑 일대로 이어지는 중앙공원 관광 경로는 이곳 방문객들이 주로 일제강점기 식민지 조국의 한을 상상하도록 인도한다. 특히 단종수술과 시체해부를 실시했던 검시실과 저항적인 한센환자를 가뒀던 감금실은 문화재로 등록돼 일제강점기 인권탄압의 상징물 역할을 하면서 한센환자의 고통을 한민족 전체의 고통으로 확대하는 데 분명한 역사적 근거를 제공한다. 소록도의 탄생은 일제가 질병의 관리를 통해 제국의 실체와 위엄을 과시하려 한 데서 비롯됐다. 일제는 한센환자의 엄격한 격리를 최선의 대책으로 삼았던 유럽 제국들을 모방해 일본의 한센병을 관리하기 시작했고 이를 식민지 조선에 그대로 재적용했다.

육지에서 적당한 거리에 있는 따뜻한 섬 소록도가 한센환자의 격리와 통제, 운영비의 절감, 환자의 노동 생산성 향상, 국제사회에서 일제의 위상 정립 등에 유리한 공간으로 선택됐다. 한센병 관리 주체는 부산 등지에서 이미 나요양시설을 운영하고 있던 외국인 기독교 선교사에서 소록도 자혜병원을 설립한 일제로 이동됐다. 전국에 설치된 자혜병원 중 하나인 소록도 자혜병원은 조선이 질병에 감염되지 않은 청결한 몸으로 일제에 포섭될 수 있는 중요한 기반을 제공했다.

조선의 정화란 각종 외세를 차단함으로써 일제가 조선의 위생을 독점적으로 관장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했음을, 그리고 근대적 의료시설과 무료진료를 통해 식민 상태에 대한 피식민자들의 동의를 확보하고자 했음을 의미한다. 한센병은 그 자체로도 고통스런 병이지만 사회적 멸시와 배척이라는 더 큰 고통을 동반했다. 당시 언론들은 전염에 대한 공포를 배경으로 한센환자의 변형된 외모와 범죄를 연결지음으로써 신체적 질병과 사회적 질병의 연계를 부추겼다. 일제는, 희생물로도 바칠 수 없는 존재, 죽여도 처벌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는 존재가 돼 공동체 주변을 배회하고 있는 한센환자들을 예외상태의 소록도에 격리 수용함으로써 조선 육지의 위생 혹은 정화에 대한 환상을 도모했다.

소록도 자혜병원의 ‘자비로운 은혜’를 입은 쪽은 소록도와 한센환자들이라기보다 식민지 조선의 육지였던 셈이다. 동시에 소록도는 질병체를 황국신민으로 탄생시키기 위한 재사회화 교육의 장이기도 했다. 일본식 생활습속의 학습부터 수용시설 확장과 전쟁물자 조달을 위한 강제노역에 이르기까지, 소록도 수용자들은 제국의 유지와 확장에 봉사하는 존재가 돼야 했다. 동남아 국가들을 침략한 일제는 새로운 식민지에서 동일한 한센병 관리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소록도 수용자들을 강제징용하기도 했다.

기억에 편승한 망각들
일제강점기의 소록도는 끊임없이 기억의 체계 속으로 편입되지만, 이보다 가까운 해방 후의 소록도는 조용히 망각되기를 요구받고 있다. 왜냐하면 소록도와 한반도의 친연관계에 대한 상상이 가능한 시기는 1945년까지이기 때문이다. 한반도는 일제강점기를 벗어났지만 소록도는 거의 그대로였다는 것이 문제였다. 병원장은 여전히 군의관이 맡았으며 소록도 관리체계 역시 변화가 없었고 단종수술도 계속됐다.

소록도에서 진행되는 제한적인 다크 투어는 소록도와 피식민지 조선 전체의 친연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이 정당한 제유적 상상은, 배제에 동의했던 육지와 산업화ㆍ근대화에 매진했던 한국 사회가 자기반성이라는 불편한 작업을 굳이 진행하지 않아도 되는 알리바이 또한 제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특히, 구라탑 부근의 정원은, 역경과 편견이 이미 과거형이 됐으며 지금은 관광객과 주민이 이 공간에서 자유로이 공감하고 있다는 환상을 제공한다.

다크 투어는 아프지만 기억해야 할 과거로의 여행이므로. 게다가 소록도 다크 투어가 소환하는 과거는 특정 시기로 한정돼 있으므로. 소록도는 국가유기체에서 배제된 공간이면서도 국가의 의지가 절대적인 공간, 국가를 위해 봉사해야 하는 공간이었다. 경제개발5개년계획이라는 이름으로 육지를 휩쓸기 시작한 근대화담론이 소록도에서는 나병관리5개년계획으로 실행됐다. 이 계획은 한센환자의 사회 복귀를 최종 목표로 삼았는데, 이때 사회 복귀란 조국 근대화의 기술을 습득한 산업역군으로의 전환을 의미했다. 소록도 맞은편의 바다를 서울 여의도 3배 규모의 육지로 만들려는 오마도 간척사업은 국가가 소록도와 그곳 주민들을 어떻게 간주했는지를 여실히 증명하는 사건이었다. 소록도는 1960년대 초반 한센병 치료제의 보급으로 급격히 증가한 치유환자를 수용하기 위해 간척사업을 추진했는데, 국가는 이를 농토 확장의 기회로 여겼다.

국가 지원이나 한센병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소록도 주민들은 1962년부터 공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2년 후 사업주체는 국가 하위기관으로 바뀌었고 소록도 주민은 새로운 땅에 정착할 수 없었다. 그들은 육지의 인적 드문 곳에 정착촌을 만들어 흩어졌다. 오마도 한센인 추모공원의 동상이 그들을 대신해 2011년 간척지 인근에 세워졌다. 과거의 소록도는 살아있는 한센환자를 격리하고 배제하기 위한 공간이었고, 지금의 소록도는 이미 죽어 두렵지 않게 된 한센환자를 추상적인 표상체로 대체한 후 회고적인 다크투어를 진행하는 공간이다. 소록도는 언제나 그 외 공간의 안전을 보장하고 증명해왔다.

조명기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 HK교수ㆍ한국현대소설
부산대에서 박사를 했다. 「일상적 장소성과 관계적 공간성의 두 변증법」, 「김소진 소설에 나타난 도시 주변 공간의 로컬리티」 등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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