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0 12:00 (토)
흔들리는 지방대 ③ 푸대접의 현실─ 3. 참여할 곳이 없다.
흔들리는 지방대 ③ 푸대접의 현실─ 3. 참여할 곳이 없다.
  • 설유정 기자
  • 승인 2002.09.14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02-09-14 12:29:59
지방에서 근무하는 최 아무개 교수의 고민은 요즘 이렇다. 민간의 자율성을 신장하고 각계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한다는 취지 하에 운영되는 각종 위원회가 대개 서울에서만 열리다 보니 참여하고 싶어도 그럴 기회가 없다는 것. 하기사 과거에 몇몇 서울 지역 학회에 참여했던 기억을 더듬어보면 엄두가 안나는 것은 사실이다. 가는데 하루, 오는데 하루가 꼬박 걸리는 서울, 한두번쯤이야 ‘봉사’ 개념으로 다녀온다 하지만 ‘회의 수당 5만원’을 받고 돌아오는 길에는 얼마나 몸고생 마음고생이 심했던가.

지방이 ‘허탈한’ 이유

2000년 12월 교육부가 발표한 ‘지방대학 육성 대책’에는 ‘정부 부처 위원회 구성시 30%이상을 지방대학 교수 등 지방인사로 참여 요청’이라는 조항이 있다. 그러나 2001년도에 중점 추진될 것이라 예정됐던 이 조항이 얼마나 지켜졌냐는 물음에 교육부 대학행정지원과의 한 담당자는 “아무 자료가 없다”라는 말로 답했다. 다만 “시행하라고, 많이 하라고, 그렇게 말하고 있다”는 이야기 뿐.
지방 교수들의 정부 위원회 참여 문제에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온 김윤상 경북대 교수(행정학과)는 “정확한 통계 자료를 백방으로 구했지만 조사 결과가 없다거나 개인 프라이버시라는 이유로 주지 않았다”며 “분명한 것은 이 제도가 절대 30%까지 실행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전한다.
실제로 각종 위원회 홈페이지에서 위원들의 약력을 찾아보면 대학교수인 위원 중 대다수는 서울 및 수도권 소재 대학교수임을 알 수 있다. 대통령 직속 위원회 8곳 중에서도 지속가능발전위원회의 회원 중 대학교수는 모두 서울 소재 대학에 근무하고 있었고, 전 회원 35명 중 학부를 지방에서 다닌 사람은 4명에 불과했다. 특히 서울 소재 대학을 나온 31명 중 26명은 서울대 출신이다. 올 1월에 출범한 반부패특별위원회도 현직 변호사인 비상임위원 6명중 5명이 서울법대 ‘동문’. 정부혁신추진위원회의 민간위원 10명 중에도 지방대 교수는 없었으며, 실무위원회의 민간위원 10명 중에 전남대 교수가 단 한 명 포함돼 있었다.
웹서핑을 조금만 하면 이처럼 대다수 정부 정책 자문 위원 중 서울소재 대학 교수, 그리고 서울대 및 서울소재 대학 졸업자가 많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된다. 문제는 ‘일면식’도 한번 해보지 못하는 사이에 지방의 인사들에게 제공되는 기회가 점점 줄어든다는 사실이다.
이에 대해 성경륭 한림대 교수(사회학과)는 “지방 교수들 중에도 의견을 제시하고 싶은 사람이 많은데 그것이 제대로 활용되지 않고 있다”라며 “지방대 교수라고 해서 서울 소재 대학 교수와 실력에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꼬집는다. 이윤배 조선대 교수(컴퓨터공학부)도 이에 대해 “미국처럼 자유롭게 교수들이 학교를 옮기지 못하는 상황에서 한번 ‘지방’이란 곳에 들어와버리면 그 틀에 갇혀버리게 하는 현재의 구조는 문제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윤덕홍 대구대 총장은 “지속적으로 정치권 인사들을 만나 설득 작업을 벌여 왔지만, 여야 위원들은 별 관심이 없다”며 “한나라당 의원들은 ‘주의깊게 검토중’이라고, 민주당 의원들은 ‘관심있게 검토중’이라고 말했다”며 씁쓸히 웃는다. ‘지방대 특별법’에 첨부한 2만여 지방대 교수들의 서명도 소용이 없자 일부 지방대 총장들에게선 학생 서명까지 받자는 이야기가 나온다.

못하나, 안하나?

지방에서 외치는 ‘30%론’은 일견 매우 소박한 주장이다. 그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서울 대 지방인사의 비율이 2 대 1만 되도 좋지 않겠습니까. 우리 나라의 유능한 인재 중 서울의 반쯤은 지방에도 있지 않겠습니까.’ 김윤상 교수는 “한 후배에게 지방에 남을 것을 권하자 ‘저는 아직 꿈이 있는데요’라 하더라”며 “장관의 삼분의 일을 지역 인사로 임명하거나 교육부·행정자치부 같은 정부부처를 지방으로 옮기면 절대로 안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이냐”고 물었다.
예산이 없고, 학생이 없고, 기업과 언론이 무관심하다고 탓하기에 앞서 정부는 인재조차 폭넓게 쓰지 않아 왔음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설유정 기자 syj@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