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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음악 그리고 전시회의 靈感
달과 음악 그리고 전시회의 靈感
  • 교수신문
  • 승인 2013.05.20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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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릴레이’ 에세이

짧게 온 봄이 바야흐로 여름으로 건너뛰고 있습니다. 푸른 신록이 마음 깊은 곳에서 삶을 관조하면서 詩心마저 자극합니다. <교수신문>은 교수들을 비롯, 다양한 사회 인사들이 참여하는 ‘추천 릴레이 에세이’를 시작합니다. 첫회에는 국제힐빙학회 회장인 박헌렬 중앙대 교수의 에세이를 소개하며, 다음호에는 그의 추천을 받아 다음 에세이가 이어집니다.

산수유와 개나리, 움츠렸던 마음을 환하게 열어주는 봄의 전령사. 지난 겨울의 그림자가 5월이 다가오는데도 머뭇거리고 있다. 모두가 싫다는 데도 말이다. 이상기후 탓인가! 지난달 초순 어느 날 오후, ‘1970년대 이후의 일본 현대미술전’을 감상하러 국제힐빙학회 간사 일을 하는 K씨와 함께 지하철로, 또 버스로 서울대 미술관에 갔다. K의 전공은 작곡이고, 노인합창단을 이끌며 장애우들에게 음악 행위 프로그램 등 봉사를 열심히 하고 있다. 경영대 앞 정류소에서 내려 미술관으로 향하니, 하얀 점이 있는 빨강 딱정벌레처럼 생긴 설치작품이 멀리서도 눈에 들어온다.

‘울트라 사고’ 섹션으로 분류된 쿠사마 야요이의 「물방울 강박」이다. 이름도 요상하게 갖다 붙였다. 그의 강박관념은 성장해 온 과정에서 영향을 받았다. 파릇파릇 풀들이 돋아난 언덕에 핀 개나리는 봄을 알리는 오케스트라 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고 있었다. 자연과 인공작품이 잘 어울린다. 미술관 안으로 들어가 작품을 감상한다. 나라 요시모토의 「아이 모습」이란 작품에 시선이 멈춘다. 동화 속의 주인공처럼 환상적인 분위기를 잘 나타냈기 때문일까. 어른들의 세계를, 진실을 꿰뚫어보는 어린이 눈으로 그린 작품이 사리사욕에 젖은 현대인들 심장을 향해 레이저를 쏘는 듯하다! 발길은 ‘우선 확실성의 세계를 버려라’라는 섹션의 그림들로 향한다. 에노쿠라 코지의 작품인 「무제」가 눈길을 끈다. 몽롱한 느낌을 전달하는 그림 속의 긴 막대기가 홀로 화폭의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폐유나 유채물감을 가느다랗고 긴 나무에 스며들게 해, 판화처럼 천에 찍어 흔적을 화폭에 남긴 그 나무를 비스듬하게 같이 천에 걸친 작품이다. 이 작가는 다마 미술대 출신으로 ‘모노하(物派)’흐름에 함께 하고 있다. 바로 옆에는 어디선가 많이 본 작품이다. 니혼대 철학과에서 수학한 이우환의 「다이어로그」이다. 이우환은 미술과 철학을 공부한 작가로, 1960년대 말에 일본에서 많은 평론을 발표하며 ‘모노하’의 이론과 실천 양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다. 그의 작품은 ‘그려서는 안 되는 것을 그리지 않는 작가’로 분류된단다. 그의 철학적인 면모가 작품에 투영된 것이다.

그의 그림은 인간과 사회를 우주로 넓게 확장하고 연계시키는 세계를 보여 준다. 누구에게나 작품에 대한 느낌을 쉽사리 허락하지 않는 듯한 여백을 남기면서…. 노무라 히토시의 작품 「달의 악보」 시리즈로 천천히 옮아간다. 저게 뭘까. 까만 바탕의 오선지에 그려놓은 그림 네 점이 언뜻 봐선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제목의 달과 무슨 상관이 있나? 그런데 현미경으로 관찰하듯 자세히 응시해 보니, 오선지 사이에 변하는 달 모양을 음표로 옮겨 놓았다. “아, 이게 예술이로구나!” 작가는 인간의 의사와 관계없이 만들어지는 형태나, 주제로서의 시간에 관심을 가졌다는 설명을 보고서야 고개가 끄떡여진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달 모양을 음악으로 담아내고 있었다.

자연인 달을 오선지에 놓인 선율로써 들려주고 있으니, 이야말로 자연대상을 인간이 어떻게 융합하고 소통해야 하는가를 깨우쳐 주는 것이 아니랴. 바로 이게 화가의 역할이구나! 세속에 물들어, 찌들고 지친 생활에서 일탈해 자연과 어우러져 몸과 마음을 깨끗하고 바르게 다잡아갈 방도를 알려 주고 있는 듯하다. ‘미술의 언어로 말하기’란 섹션으로 가본다.

소비사회의 아이콘이나 사소한 경험을 다양한 소재와 방법으로 담아낸 작품들이다. 요네다 토모코의 작품은 안경시리즈란 제목부터가 흥미를 끈다. 그는 우리들이 현재 서 있는 장소에서 일어나고 있는 역사적 사건들과 거기에 침전해 있는 무수한 개인들의 기억, 역사의 기억, 그리고 개인과 사회를 둘러싼 문제를 작품화한다. 여기서는 유명한 인물들의 안경을 통해 관찰하는 사진작품 시리즈. 「프로이트의 안경-융의 텍스트를 보다」에서는 칼 융이 쓴 텍스트를 프로이트의 안경을 통해 굴절돼 보인 것을 그림에 담아냈다. 「르코르뷔지에의 안경-파리 근대 주거의 강연 원고를 보다」에서 르코르뷔지에는 그 당시 파리의 도시계획을 담은 원고를 통해 새로운 건축물 비전을 제시했다. 「말러의 안경-그의 마지막 교향곡 No.10을 보다」에서는 작곡가 자신의 안경을 통해 구스타브 말러의 미완성 교향곡 악보를 보여준다. 한참동안 안경시리즈 작품을 이리보고 저리 봤다. 옆에 도슨트가 있기에 말을 건넨다.

“여기서 알바 하세요?”, 그녀는 그렇다고 끄떡인다. “미술 전공의 이 대학 출신인가요?” 전공은 미술 맞지만 이 학교 출신은 아니란다. 나는 작품들을 감상하면서 머릿속이 즐거운 상상력으로 가득 채워지는 느낌을 받는 동시에 통섭적 사고의 필요성을 절감하며 물었다. “혹시 『미술관에 간 CEO』라는 책을 보셨나요?” 그녀가 못 읽었다고 답하기에, CEO들이 경영혁신과 경쟁력 향상을 위해 시간을 쪼개 자주 미술관을 찾는다…. 그래서 예술작품으로부터 독창적인 사고와 영감을 많이 얻어 창의적 상품 개발에 큰 도움이 됐다…. 대강의 책 내용을 설명해줬다. 이를테면 마이크로소프트의 시애틀 본사에 들어서면 입구에서 미니멀리즘의 거장 솔 르위(Sol LeWitt)의 작품인 거대한 벽화를 만난다.

또 미국 전역 80여 개의 지사 사무실에는 6천여 점의 그림이 걸려 있다. 이 회사는 사원들이 그림을 보면서 상상력을 키우고 창의성을 높여 세계를 이끌어가는 혁신제품을 생산하도록 돕는다. “전시회 보러 정말 잘 왔구나!” 마이크로소프트사의 경쟁력이 어디서 나왔는지 새삼 깨닫게 된 날이었다. 세계 일등 국산제품이 수십 개 있다니 다행이지만 중국의 부상으로 그 수가 점점 줄어든다는 최근 기사가 떠올랐다. 기업 경영인은 물론 각계 지도자들과 미래의 주역이 될 인재들이 각종 전시회에 자주 들러 상상력을 풍부하게 하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많이 얻길 바란다. 그래서 대한민국에 창조경제의 시대가 활짝 열리고 문화가 융성해져 ‘대한민국 브랜드’가 다시 비상하길 염원한다.

박헌렬 국제힐빙학회 회장·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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