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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화제] 남북한 철학연구 분석한 동양철학자들
[학술화제] 남북한 철학연구 분석한 동양철학자들
  • 이지영 기자
  • 승인 2002.09.1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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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9-14 12:27:31
“남쪽에서 가장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퇴계에 관한 연구가 북에는 한편도 없다. 남한에서 연구실적 상위 10위에 올라있는 전통 철학자 가운데 북한에서는 전혀 개별적인 연구가 이뤄지지 않은 경우도 3명이나 있으며, 정도전, 이수광, 이규경 등 남쪽에서는 전혀 비중 없는 학자가 북한학계에서는 중시되고 있다.”

다소 길게 인용한 이 흥미로운 분석은 지난달 9일 한국 동양철학회가 강원대에서 개최한 ‘근 100년 한국 동양철학 연구의 현황과 전망’이라는 주제로 열린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내용이다. 그간 한국 철학계의 논의가 대부분 외국 이론에 집중돼 있었던 것에 반해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남한과 북한의 철학 연구 업적을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국내 북한철학 연구는 1980년대 후반부터 시작됐다. 그러나 이 연구는 개별 연구자 중심으로 이뤄졌을 뿐 큰 흐름을 형성했던 것은 아니었다. 이번 학술대회는 기존의 연구를 발전시켜 한자리에 모은 것. 유흔우 동국대 교수(철학)는 “최근 북한의 경기가 나빠져서인지 예전보다 철학 관련 자료를 구하기 어렵다. 지금 가지고 있는 자료는 1992년까지의 자료가 대부분이다”라며 북한철학 연구가 쉽지 않음을 알렸다.

남·북한 철학 연구 비교시도

남북한의 철학 논의 차이는 퇴계 등의 인물 연구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각 학계가 주장하는 세부적인 논의를 살펴보면 연구의 관심 자체가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남북한 中觀 空思想의 현황과 문제점을 주제로 한 남수영 동국대 교수의 분석을 들어보자. 남 교수에 따르면 “북한의 기본 통치 이념은 주체사상이며, 북한의 종교, 문화, 사회의 모든 것이 주체사상에서 시작해 주체사상에서 끝나기 때문에 불교 역시 그들의 이념과 체제에 부합시켜 일종의 혁명과업의 도구로 이용하기 위해 불교를 연구했다”는 것. 동시에 남한 중관 공사상 연구의 문제점으로는 “자신이 미리 설정한 결론에 맞추어 원전을 자의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원전을 왜곡하거나 수긍하기 힘든 결론을 도출해 내는 것과 분명한 문헌적 근거를 제시하지 않은 상태에서 확인되지 않은 특정 내용을 단언하는 것”을 지적했다.

실학 연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임원빈 해군사관학교 교수는 남한에서는 1970년대 중반에 역사학계의 실학 연구 성과를 토대로 철학계에서도 실학의 철학적 성격 조명에 관심을 가진 것에 반해, 북한에서는 1930년대 이미 실학 연구가 시작됐고 그 첫 성과인 ‘실학파와 정다산’이 1955년에 발간됐음을 지적했다. 그는 “북한에서는 실학의 중심과제가 윤리 도덕 문제가 아니라 자연과학, 정치, 경제 등 사회 개혁의 문제였으며 그런 면에서 실학은 선행하는 정통 주자학과 구별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또한 “실학의 한계에 대해서도 실학이 비록 봉건 사회의 위기와 모순을 반영하여 반봉건적이며 이상적인 방안을 내놓았으나 시대적 제한성으로 말미암아 근대사상으로까지 발전하지는 못했으며, 또한 주자학의 스콜라적 성격을 반대하여 유학을 실천 입장에서 해석했으나 유학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했음을 지적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이런 철학연구의 차이는 어디서 비롯한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김교빈 호서대 교수는 전통을 보는 관점에서 그 답을 찾는다. 김 교수는 “북한의 전통철학 연구 목적이 ‘사회주의 새문화와 생활기풍을 창조 발전’시키고, ‘사회주의 애국주의 정신으로 무장’시키기 위한 것”에 두는 것을 그 원인으로 꼽았다. 이같은 관점은 민족주의 입장에 선 비판계승론적 관점으로서 북한 정권의 초기 이데올로기였던 마르크스 ─ 레닌주의 하에서나 1960년대 이후 자리를 잡아가는 주체사상 하에서나 동일하게 유지되는 관점이다. 이 관점 속에 있는 계급성은 역사 분석을 통해 이뤄지기 때문에 북한학계에서 역사 분석은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 이에 반해 남쪽 연구자들이 내세우는 연구 원칙의 주류는 ‘보편성 원칙과 객관주의 원칙’이다. 보편성 원칙은 계급성 원칙에 대한 반대 기준이며 객관주의 원칙은 역사주의 원칙에 대한 반대 기준이다. 보편성 원칙을 본다면 전통철학, 특히 성리학의 경우 그 학문의 목적이 ‘인간의 보편성에 대한 추구’라고 규정하는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어떤 사상 하나를 다룰 때 철학 자체를 논리적으로 분석하거나 철학사적 의미를 정리하는 데 촛점을 맞추고 있다. 따라서 계급분석이나 그에 근거한 유물론과 관념론의 대립 투쟁 같은 관점은 거의 없다.

상반된 입장, 극단적 평가

이처럼 양자가 서로 상반된 입장에 서있기 때문에 연구 대상도 또 서로의 연구 경향에 대해 평가도 다를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남한의 연구에 대해 북한학자들은 어떤 학자를 막론하고 동일한 주장을 하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이황을 중시하는 남쪽의 전통철학 연구를 ‘인민들에 대한 통치계급의 착취와 계급적 압박을 합리화하는 도구’라고 비판하고 있으며, 남한학자들이 북한의 연구에 가하는 비판 역시 ‘철학사적 愚民化를 노리는 주체철학의 이데올로기’, ‘성리학의 진의를 모르기 때문’, ‘북한 유물론자들은 우선 먼저 유물변증법의 속박으로부터 탈피하지 않는 한, 역사적 사실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는 안목을 가지게 되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비판을 하는 것이다.

지난 50여 년의 분단이 남북의 사유체계에 많은 차이를 낳았다. 그러나 이기용 연세대 교수의 문제제기는 이것을 메워야 할 이유를 분명히 제시했다. 그는 ‘남북한의 유학사상에 관한 연구현황과 전망’에서 “이제까지의 선행연구 대부분이 남한과 북한의 현황에 대한 각각의 개괄적 소개와 분석, 혹은 남한의 연구성과와 대비시켜 그 쟁점들을 분석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졌을 뿐, 남북한 철학사를 통시적 시각에서 새롭게 정립하는 차원에까지 이르지 못했다”며 “다가올 통일한국사회를 준비해야하는 지금 철학계의 준비는 미흡하기 그지없는 현실이고, 따라서 통일의 역할을 일부 담당해야할 전통유학에 대한 통시적이고 전문적인 비교를 토대로 남북한이 공유할 수 있는 통일유학사의 정립이 절실하다”고 말하면서 철학계가 당면한 문제의식을 밝혔다.

이날의 자리가 남북한 철학이 만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시발점이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아직은 기존의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단계에 그치는 것이기 때문에 남북한 철학이 만날 수 있는 틀을 제시한 것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다만 이 작은 내딛음이 남북한 철학 연구의 간극을, 나아가 사상적·이념적 간극을 메울 수 있는 시도라는 점은 높이살 만하다.

이지영 기자 jiyou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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