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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의 고전] : <34>프레드릭 제임슨의 『정치적 무의식』
[우리시대의 고전] : <34>프레드릭 제임슨의 『정치적 무의식』
  • 이경덕 / 연세대
  • 승인 2002.09.1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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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9-14 12:27:13
이경덕 / 연세대 강사·비평이론

프레드릭 제임슨(Fredric Jameson, 1934~)이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포스트모더니즘, 혹은 후기 자본주의의 문화적 논리’(Postmodernism, or, the Cultural Logic of Late Capitalism, 1984)라는 좀 긴 논문 때문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성격을 두고 모더니즘의 연속이다, 모더니즘과의 단절이다, 오히려 모더니즘을 예비하는 것이다 등 이런저런 논쟁들이 벌어지고 있는 와중에 이 한 편의 논문은 포스트모더니즘이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후기 단계, 즉 이전 생산양식들의 잔재들을 일소해 가장 순수하게 자본주의적인 시대의 문화적 논리임을 설파했다. 말하자면 제임슨은 문화 내적 논리보다는 그 문화가 포함되고, 또한 그 문화를 낳는 생산양식의 총체적 작용을 중시했던 것이다.

현대 문학 및 문화이론 어디에서나 언급되기 마련인 프레드릭 제임슨은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론을 발표하기 이전 오랜 지적 과정을 거쳐온 학자이다.

‘정치적 무의식’(The Political Unconscious, 1981)은 이처럼 맑스주의 및 현대이론들에 대한 섭렵과 평가를 토대로 하여 자신의 맑스주의 문학연구 방법론을 확립하는 동시에, 맑스주의 이론을 은밀히 침식해 들어가는 후기구조주의 이데올로기 및 포스트맑스주의에 대항한다고 하는 이중적 과제를 수행하고 있는 책이다. 이후 제임슨은 포스트모더니즘론, 영화론, 아도르노론, 브레히트론 등 수많은 저서를 출간하게 되지만, 그의 이론의 골간은 여전히 ‘정치적 무의식’에 있다고 하겠다.

‘정치적 무의식’은 이제 제임슨의 책제목인 동시에 하나의 비평 용어로 정착된 양상인데, 사실 제임슨의 사상 전체를 꿰뚫고 있는 단어이기도 하다. ‘정치적’이란 물론 개인적이고 심리적 차원이 아닌 계급적, 집단적 차원을 말하는 것이고, ‘무의식’이란 의식적이고 의지적인 사유와 행동이 아니라, 레비 스트로스의 “야생적 사고”처럼 모순에 가득찬 현실과 역사에 대한 무의식적이면서도 필사적인 반응임을 말한다. 만일에 사회적 모순을 직접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이러한 정치적 무의식은 작동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의 생산양식에 내재하는 모순들은 그 생산양식 자체가 다른 어떤 것으로 바뀌기 전까지는 지속되게 마련이며, 이 모순들을 의식적 사유와 행동으로 해결할 수 없는 그 때에 문화와 예술은 해결을 ‘꿈꾸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상상적으로, 상징적으로 모순을 해결하려 하는, 즉 모순없는 질서화에의 경향을 무의식적으로 드러내게 된다. 그리하여 자본주의 모순 하에 생산된 모든 예술품들은 자본주의 모순의 산물이지만 동시에 또한 정치적 무의식에 의해 그 모순을 봉쇄, 혹은 상징적으로 해결하는 양상을 보인다. 이것이 ‘사회적으로 상징적인 행위로서의 서사’라는 이 책의 부제가 의미하는 바인 것이다.

이 책의 1/3을 차지하는 ‘해석에 대하여’라는 장은 해석을 불신 내지 폐기하는 현대 이론들의 경향에 맞서서, 이처럼 사회적 모순을 담지하되 그것을 상상적, 상징적 차원에서 해결하고자 하는 예술 작품을 그 모순의 차원에서 해석할 것을 주장하는 셈이다. 이러한 해석의 과정은 우선 가장 가시적인 연대기적 정치적 사건의 지평에서, 그다음 계급적 지평에서, 그다음 최종적으로 자본주의라는 생산양식의 지평에서 이루어지게 되는데, 그는 이 각각의 지평에서 모순을 억압 내지 봉쇄하는 측면, 즉 이데올로기적 측면과 모순을 넘어선 새로운 사회를 꿈꾸는 유토피아적 측면 양자를 동시에 파악할 수 있는 변증법적 사유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그가 경계하는 것은 작품 이전에 미리 판단의 잣대를 설정하는 윤리적 비평, 혹은 재단 비평으로서, 모든 작품은 스스로 해석 범주를 산출한다라고 주장한다. 다시 말하면 해석이란 어떤 주체가 주관적으로 판단하는 것도, 혹은 미리 설정된 객관적 기준을 적용하는 것도 아니고, 작품을 산출한 사회와 그것을 누리는 사회 사이의 마주침 가운데 저절로 의미가 드러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해석의 장 다음에 이어지는 장들은 실제 비평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로맨스, 리얼리즘, 자연주의, 모더니즘 예술을 각각 다루고 있다. 로맨스는 특히 생산양식과 생산양식 혹은 생산양식 내 단계들 사이의 이행기적 특징을 보여주는 예술이며, 따라서 그 장르적 성격이 문제가 되는 예술이다. 여기서 제임슨은 노쓰롭 프라이의 장르이론을 자세히 고찰하면서 맑스주의 장르이론의 확립 필요성을 강조한다. 그다음으로는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정착하기 이전, 부르주아 상승기의 활기찬 시대에 생산된 발자크의 리얼리즘을 다루고, 그다음 장에서는 부르주아가 프롤레타리아를 누르고 권력을 장악한 뒤의 기씽의 자연주의 소설을, 마지막으로는 제국주의적 혹은 독점자본주의 단계의 지배적인 예술형태인 모더니즘에 대해 조셉 콘래드의 소설들을 중심으로 하여 다루고 있다.

70년대 이후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다국적 자본주의 단계의 지배적인 예술인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서 이 책에서는 암시에 그치고 있지만, 앞서 말했듯이 그 본격적인 고찰이 2년 뒤에 이루어지게 된다. 마지막 결론 ‘유토피아와 이데올로기의 변증법’은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한 부분으로서, 비평이 이데올로기 비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작품 속에 담지돼 있는 새로운 사회에 대한 열망 또한 발견해내야 함을 강조한다.

이는 사실 변증법적 과정 내에서는 부정적인 것과 긍정적인 것이 언제나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간다라고 하는 저 기본적인 원칙을 확인하고 적용한 것에 불과하다 할 것이지만, 변증법적 사유가 거의 불가능한 오늘날에는 여전히 낯설고 충격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프레드릭 제임슨(Fredric Jameson, 1934~)
프레드릭 제임슨은 예일 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했고, 1959년에 사르트르에 관한 논문으로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버드 대학,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 대학, 예일 대학 교수 등을 거쳐 1985년부터 듀크 대학교 비교문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1970년대 초에 이미 ‘변증법적 문학이론의 전개’와 ‘언어의 감옥’으로 이름을 얻은 제임슨은 1981년에 대표적 주저로 인정받은 ‘정치적 무의식’을, 1989년에는 ‘포스트모더니즘-후기 자본주의의 문화논리’를 펴냈다. 주로 모더니즘을 비롯해 제3세계 문학과 영화, 마르크스 및 프로이트, 사르트르, 현대 프랑스 소설과 영화, 프랑크푸르트 학파 등에 관해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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