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3 20:40 (화)
문화주체는 古東夷族系 … 태양의 심볼인 불꽃봉오리 상징한 디자인
문화주체는 古東夷族系 … 태양의 심볼인 불꽃봉오리 상징한 디자인
  • 교수신문
  • 승인 2013.05.14 10: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 고대문화 원형의 상징과 해석 7. 琵琶形 銅劍

▲ -부여 송국리출토, 1974년/길이 33.4cm/ 국립중앙박물관
한국문화의 원형에 내재한 상징을 새롭게 읽어내는 시도를 하고 있는 김양동 교수는 이번호에서는 ‘비파형동검’으로 통칭되는 동검을 ‘청동 불꽃형신(무)검’으로 부르자고 제안한다. 그는 어떤 이유에서 이같은 제안을 한 것일까.

한국문화의 원형에 내재한 상징을 새롭게 읽어내는 시도를 하고 있는 김양동 교수는 이번호에서는 ‘비파형동검’으로 통칭되는 동검을 ‘청동 불꽃형신(무)검’으로 부르자고 제안한다. 그는 어떤 이유에서 이같은 제안을 한 것일까.

 

한국문화의 원형에 내재한 상징을 새롭게 읽어내는 시도를 하고 있는 김양동 교수는 이번호에서는 ‘비파형동검’으로 통칭되는 동검을 ‘청동 불꽃형신(무)검’으로 부르자고 제안한다. 그는 어떤 이유에서 이같은 제안을 한 것일까.

“비파형동검은 劍身의 형태가 비파와 비슷해 붙여진 이름이다. 중국 동북지방에 있는 遼河를 중심으로 한 遼寧지방에 주로 분포하기 때문에 ‘요령식 동검’이라고도 하며, 광복 전에는 ‘만주식 동검’으로 불렀다. 학자에 따라서는 부여 송국리에서 출토된 예에 따라 ‘부여식 동검’이라고도 하며, 형태에 따라 ‘曲刃靑銅短劍’으로 부르기도 한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비파형동검의 異稱은 이처럼 다양하다. 중국에선 곡인청동단검으로 호칭되고 있고, 한국에선 비파형동검으로 불러왔다.

 

음악과 관계가 없는 청동기유물을 단순하게 형태가 비파처럼 생겼다고 해서 비파형동검이라고 명명한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명칭이다. 때문에 최근에는 이 동검의 기원과 출토지에 연계해 ‘요령식 동검’으로 부르는 추세가 늘고 있고 국립중앙박물관에서도 그것을 공식명칭으로 정하고 있다. 이러한 비파형동검은 “한국의 청동기문화의 변천과정을 살피는데 기준이 되는 표지유물로서 청동기유물 중 가장 많이 연구되어 왔다.”(『한국고고학 사전』, 국립문화재연구소, 539쪽) “한국에선 함경북도를 제외하고는 전국에서 현재까지 약 60여 점이 발견되었는데, 대체로 남방식 고인돌이나 돌널무덤에서 출토되고 있으며 드물게 산비탈의 너덜겅이라고 하는 돌무더기 속에서 발견되는 경우도 있다.” (이건무·조현종,『한국미 재발견1-선사 유물과 유적』, 131~135쪽)고 한다.

동검의 문화담당 주체는 누구인가
그런데 黃河와 長江유역에선 비파형동검이 한 자루도 출토되지 않고 요하유역과 한반도에서만 출토되는 이 동검의 문화담당 주체는 누구인가 라는 문제가 가장 중요한 관심거리였다. 이 문제는 청동기시대 한반도 先民들의 來源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일이어서 우리의 관심을 끌지 않을 수 없다. 그런 까닭에 그동안 청동기유물 중에선 가장 많이 연구돼 왔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검과는 다르게 왜 비파처럼 특이하게 만들었느냐 하는 조형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할 상징 해석은 연구된 바가 없었다. 그래서 이 동검의 상징성을 해석하고 그 속에 저장된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선 분포지역에 따라 출토되는 유물의 특성을 발견해 어떤 공통분모를 추출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실제적으로 가장 중요하다고 하겠다.

그런 작업을 위해 일차적으로 (1) 비파형동검문화 담당 주체가 누구였느냐 하는 문제, (2) 비파형동검의 기능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 (3) 비파형동검의 조형적 특징과 그 이유는 무엇인가 하는 문제, 이 세 가지를 통해서 비파형동검의 상징성을 해석하는 길에 접근하고자 한다. 첫째 비파형동검 문화의 주인공은 누구였느냐 하는 문제다. 비파형동검이 어떤 족속의 문화인가라는 것을 알아야 할 이유는, 그 족속의 종교적 의식과 사상이 문화에 반영되기 때문에 문화 담당주체가 밝혀져야 그 문화의 상징성을 해석할 수 있는 기초자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에 의하면 이 문화의 주체자는 요하문명과 관계가 있는 동이계통설(김원룡, 김정학, 임병태), 동호족계통설(윤무병, 주귀, 근풍의), 최근 제기되고 있는 요하문명론과 商周문화 北上說 등 다양하다고 한다(하문식, 「요동지역의 문명기원과 교류」, 『동북아시아의 문명기원과 교류』, 학연문화사, 2011년, 188~192쪽). 東夷와 東胡는 사실상 뿌리가 같은 종족이라고 할 수 있으며, 鮮卑族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들이 고대 요하문명의 주인공들이었으므로 따지자면 역사적 전개에 따라 호칭은 달리했어도 혈통은 유사한 족속이라 하겠다.

 

 

 

이들 주인공들의 사상적 공통점은 태양숭배 사상이다. 이 지역에서 출토되는 청동기시대 표지유물인 동경과 동령에 시문된 문양들이 모두 태양을 모티브로 한 神意의 상징임을 이미 전회에서 살펴보았다. 비파형동검에도 칼자루의 손잡이부분[劍把部]엔 이른바 三角文, 雷文 등 태양을 意符한 문양이 시문돼 있다. 이것은 비파형동검도 동경과 동령과 마찬가지로 태양을 神의 원형으로 숭배한 고대 동이족들의 의식을 표현한 物徵이란 이야기다. 그렇다면 비파형동검과 동경, 동령의 삼대신물은 동일한 상징성을 공유한 神物이며 의기라는 설명이 가능해진다. 그러고 보니 이 세 물건을 묶어서 삼대신물이라고 한 이유가 명확해졌다. 다시 말해 신석기시대 홍산문화와 그 문화적 인소를 승계한 요령지방의 청동기문화의 주체세력은 북방 유목문화를 형성한 동이세력들이다. 고대 민족의 보편적 현상이긴 하지만 북방 유목문화의 특색도 역시 태양숭배사상을 母型의 원리로 하고 있다.

동이계통인 少昊族의 활동무대로 비정된 대문구문화 유물들을 비롯해, 『漢書』 「匈奴傳」에 기록된 祭天儀式과 아침저녁 拜日習俗 등은 모두 태양숭배 사상을 증명한다. 인간들의 시원사상인 태양숭배는 태양의 다른 모습인 불[火]을 숭배해 神權과 王權을 상징했다. 화염문과 불꽃봉오리를 冠飾과 服飾의 문양으로 사용하거나 조형물로 만들어 최고 尊者는 늘 그것을 몸에 지녀 권위의 상징물로 삼았다. 郊祭를 지낼 땐 섶을 모아 거대한 횃불을 올리는데, 횃불은 불이라는 거대한 에너지를 통해 모든 사악한 기운을 태워 날려버리는 除厄의 정화의식이기도 하지만, 그 바탕사상은 태양숭배에서 싹튼 天祭의 성격처럼 신께 기원하는 인간들의 숭고한 의식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민속의 달집태우기가 바로 그러한 유습의 흔적이라고 생각된다([그림3]). ‘횃불’이란 말이 ‘해’와 ‘불’을 복합한 언어구조인 것을 두고 보더라도 이는 분명한 사실이라 하겠다. 이런 것이 곧 事徵이자 言徵인 것이다. 비파형동검은 遼河유역을 중심으로 遼寧지방에 분포된 의기이다. 地名이면서 나중엔 國名도 된 ‘遼’의 字解를 보자. ‘遼'(멀료)는『漢書』와 『晉書』에 이미 나타나고 있는 글자인데, 원래 ‘尞'(불태울료, 횃불료, 燎의 初文本字)에 책받침이 더해진 글자이다.

郊祭를 지낼 때 섶을 모아 태우던 거대한 횃불이 ‘???’이다. 그러므로 ‘尞’에 책받침 착(辶)을 첨가한 ‘遼’의 해석은 ‘尞’(횃불)의 이동, 곧 郊祭의 祭壇을 옮겼다는 의미가 된다. ‘尞’(횃불)의 제단과 神位를 짊어지고 동이들은 중원에서 변방인 遼河유역으로 멀리 밀려난다. 遼遠하다는 말이 여기서 나온 말이다. 밀려난 세력들은 고토회복의 염원을 이루기 위해 中原을 향한 끊임없는 침략을 한다. 그것이 중원세력[漢族]들로 하여금 만리장성을 쌓게 했던 이유가 되지 않았을까. 地名에는 거기에서 살았던 인간들의 신화와 전설과 역사가 서려있다. 『欽定盛京通志』에선 遼河를 고대엔 句驪河로 불렀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고구려와 이름도 비슷한 句驪河는 고구려와 어떤 관계의 명칭이며 요하를 중심으로 한 요동과 赤峰과 紅山, 朝陽, 醫巫閭山 등은 선사시대 우리 역사와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 땅일까. 그 상상은 흥미롭기 그지없다.

文徵으로선 해결할 수 없는 이런 갈증이 해석고고학을 더욱 필요하게 만든다. 해석고고학은 땅속에서 발굴되는 유물들의 발언을 해석해 문헌에서 얻지 못하는 정보를 얻어내는 작업이다. 해석고고학에선 풍부한 상상력이 대단히 중요한 요체다. 처음엔 상상력의 발동에서 시작해 그 상상력을 사실로써 증명해야 되기 때문에 인접 학문에 대한 통섭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그런 통섭을 통한 증명은 四徵이 가장 합리적인 방법임을 앞에서 강조했다. 둘째로 비파형동검의 기능 문제이다. 이 동검이 실용적인 무기인가? 아니면 의식용 儀器인가? 라는 기능 문제가 동검의 상징성을 해석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 기능을 정확하게 따져야 그 상징성도 정확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삼불 선생의 ‘儀器用’ 설명에 동의
그런데 비파형동검의 용도에 대해서 대체로 연구자들은 무기와 의기의 두 가지 기능을 함께 보고 있다. 그러나 故 김원룡 교수는 “이 검은 그 형태로 보아 처음부터 실용검이 아닌 儀仗用劍인 것으로 출발한 듯하며, 거기서 다시 발전한 細形동검도 재질이 부러지기 쉬운 白銅質이라는 점은 처음부터 儀器的인 성격을 띤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한국고고학개설』, 일지사, 1991, 86쪽) 라고 했다. 비파형동검의 성격을 정확하게 파악한 말씀이라 생각돼 이러한 三佛선생의 說에 필자도 左袒(편집자주: 왼쪽 소매를 벗는다는 뜻으로, 남을 편들어 동의함을 이르는 말. 『史記』 「呂后本紀」에서 유래한다)하고자 한다. 위의 [그림5, 6]은 商代 儀器用 玉矛인데 밝고 투명한 옥을 재질로 사용해 불꽃봉오리 모양을 여실하게 본뜬 점과 자루[矛柄]를 화려하게 상감하거나 청동으로 장식한 점 등으로 봐서 의기이거나 巫具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비파형동검은 [그림5, 6]의 玉矛와 같이 투명한 고급 옥을 사용하진 않았지만 특수한 디자인을 볼 때 무구였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 통상적으로 무구의 디자인은 약간 기괴한 점이 있는데 비파형동검이 바로 그런 추측을 더욱 짙게 한다. 셋째로 비파형동검이 지닌 조형상의 상징은 무엇이며 그 의미를 어떻게 해석해야 되는가? 하는 문제가 남아 있다. 이 문제가 사실상 가장 궁금한 문제임에도 한국과 중국을 통틀어 비파형동검의 상징에 대한 해석을 시도한 글을 보지 못했다.

 

단순히 모양만을 보고 비파형동검 또는 곡인청동단검으로 부르거나, 출토지역을 좇아 요령식 동검이니 부여식 동검 등으로 부를 뿐, 아직 통일된 이름을 정하지 못한 이유도 이상야릇한 미감을 주는 이 동검의 형태에 대한 상징을 풀어내지 못한 데 그 원인이 있지 않나 싶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공식명칭으로 ‘요령식 동검’을 사용하고 있으나, 국립문화재연구소가 펴낸 『한국고고학사전』엔 ‘비파형동검’ 으로 기술한 것을 봐도 바로 그런 현상이 예증된다. 중국식 동검과 오르도스식 동검은 劍身과 劍把가 한 통속으로 주조된데 비해 비파형동검은 검신과 검파부를 따로 주조해 끼움으로써 T자형이 되게 하는 조립식 동검이다. 검신 중앙부에 돌기가 있고 돌기부 양쪽의 날은 S자형으로 휘어져 아랫배가 둥글게 불러 있다. 마치 비파악기와 같아서 그 모양이 기묘할 뿐 아니라 女體와 같은 매혹적인 느낌마저 준다. 하지만 모양이 그렇다고 해서 음악과 관계없는 고대유물을 비파형동검이라고 부르는 것은 타당한 일이 될 수 없다. 비파형동검의 상징성을 해석하려는 이유도 이 동검의 올바른 이름을 찾아 주기 위한 해석고고학의 작은 시도라고 하겠다.

‘청동 불꽃형 신(무)검’으로 명명하는 이유
비파형동검은 아름답기는 하지만 검으로서 실용성과 효율성을 고려하지 않은 디자인 형태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거기에다가 강도가 낮은 청동의 재질을 사용했다는 것과 검파부가 속이 비워 단단하지 못한 이유 등 여러 모로 살펴보더라도 무기가 아닌 의기임은 확실시된다. 따라서 일찍이 의장용 의기의 성격을 띤 것으로 파악한 김원룡 교수의 설이 가장 설득력 있는 견해라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동검의 비파 모양은 무엇을 상징하고 있느냐 하는 문제가 상징해석의 핵심이 된다.

그 시대 검의 형태로선 다른 지역에서 전혀 볼 수 없는 기묘한 비파모양의 동검을 아무런 의미를 부여함이 없이 그렇게 만들었을 이유는 없다. 발굴고고학 분야에서 유물의 편년구분과 형태의 사실적 설명을 잘 해놓았다해도 선사시대 고대인들이 무엇 때문에, 무슨 생각으로, 어떤 의미로서, 왜 그렇게 만들었을까? 라는 의문에 대한 갈증은 해소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비파형동검의 상징을 해독하기 위해 살펴본 내용은, 첫째 이 동검을 사용한 문화주체는 요하유역을 중심으로 태양숭배의 원시신앙을 가지고 생활한 古東夷族 계통이란 사실, 둘째 이 동검의 용도와 기능은 최고 존자가 사용한 巫具와 같은 儀器의 성격이라는 점, 셋째 이 동검의 조형이 상징하는 의미는 태양을 意符한 주인主( ) 즉 불꽃봉오리를 아름답게 디자인한 형태라는 것으로 정리하고자 한다.

결론적으로 비파형동검은 불꽃봉오리를 매력적인 디자인으로 상형한 태양숭배족의 표지물로서 지도자의 권위를 나타내는 심볼인 의기 또는 무구라는 것으로 그 상징성을 해석하려고 한다. 청동기시대 동경과 동령 및 비파형동검은 형태와 문양에서 태양의 神意를 상징한 神物이란 공통성이 증명된다. 맥락상 그 성격들이 같은 유물임도 알 수 있게 됐다. 따라서 위와 같은 종합적인 해석에 의해 비파형동검의 명칭을 ‘청동 불꽃형 神(巫)劍’으로 명명하면 어떨까 하는 방안을 제시해 보는 것으로 이 글을 맺는다

 

 

김양동 계명대 석좌교수·서예가
ydk629@kmu.ac.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