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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발전방향보다 학생들을 어떤 인재로 키울지가 더 중요”
“대학 발전방향보다 학생들을 어떤 인재로 키울지가 더 중요”
  • 권형진 기자
  • 승인 2013.05.13 17: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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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16개월, 김기섭 부산대 총장의 도전

대표적인 지역거점 국립대 가운데 하나인 부산대의 발걸음이 올해 들어 빨라지고 있다. 연초부터 대대적인 행정조직 개편을 단행해 대외협력부총장을 신설하고, 대학원장을 교육부총장으로 격상했다. 지난 3월에는 지난해  수립한 대학 중장기 발전계획 ‘PNU Vision 2030’에 대한 외부 컨설팅 결과를 발표했다. 특히 이번 학기부터 국립대 가운데 처음으로 ‘고전 읽기와 토론’을 교양필수로 지정하는 실험을 시작했다.

김기섭 부산대 총장(56세, 사학과)이 지난 1월 제19대 총장으로 취임한 이후 일어난 변화들이다. 김 총장의 전공은 요즘 총장으로는 드물게도 역사학이다. 부산대에 총장 직선제가 도입된 이후 인문학자가 총장에 선출된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부산대를 상징하는 말 ‘文昌’이 북두칠성 가운데 학문을 맡아 다스린다고 하는 ‘文昌星’에서 유래한 것에 비춰보면 오히려 뒤늦은 감마저 있다.

지난 8일 만난 김 총장은 “표면적인 ‘실적’만을 중시하는 과거 CEO형 총장의 모습보다는 교육의 본질에 충실한 총장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포부를 묻자 “학교 발전방향도 중요하지만 학생들을 어떤 인재로 키워가야 할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 전공지식뿐 아니라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글로벌 리더를 육성하는 게 기본이 돼야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김 총장은 “그 동안 양적 성장에 힘을 기울이다 보니 기초를 소홀히 한 면이 많다”면서 “부산대가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기초와 토대를 닦겠다”라고 말했다.

●대담: 최익현 편집국장  ●사진·정리: 권형진 기자 jinny@kyosu.net
●일시: 2013년 5월 8일 오후 2시 부산대 총장실

제19대 총장에 취임했다. ⓒ권형진 기자

△ 취임한 지 1년이 훌쩍 지났다. 그 동안 어떤 성과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지난해 대학발전종합계획인 ‘PNU Vision 2030’을 수립하고,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 외부 컨설팅을 받았다. 창조적 지식공동체 구현을 통해 글로벌 명문대학으로 도약하고자 한다. 통섭형 창의적 인재 양성, 융합연구 선도, 기부와 나눔의 실현을 모토로 삼고 있다. 통섭·융합 교육체제 구축, 글로벌 연구역량 강화, 지역 및 국제사회 선도, 행정·재정 혁신 및 기반 확충이라는 분야별 주요과제도 만들었다. 이를 통해 2016년까지 국내 제1의 국립대학으로 기반을 조성하고, 2017년부터 2020년까지는 아시아 허브대학으로 도약을, 2021년부터 2030년까지 글로벌 명문대학으로 완성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융·복합 교육을 실현하기 위해 교육과정은 물론 학사조직과 행정조직도 개편했다. 본부 조직을 교육, 대외협력, 의무 등 3부총장 체제로 바꿨고, R&D미래전략본부와 대학원 행정실을 신설했다. 종합인력개발원은 미래인재개발원으로, 교양교육센터는 교양교육원으로 승격했다. 융·복합 교과목을 신설하고, 학과 중심적 학사조직의 경직성을 탈피하기 위해 융·복합 형태의 학부, 대학원, 연구소로 조직을 개편했다.”

△ 인문학자로는 드물게 총장이 됐다. 대학의 본질은 무엇이라고 보나. 그리고 총장, 교수의 역할은.
“대학은 미래의 인재를 키우는 장이다. 기본적으로 인성교육을 바탕으로 통섭형 인재 양성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교수들도 연구가 기본이긴 하지만 연구자이기에 앞서 교육자라는 인식이 전제가 돼야 한다. 학생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갈 수 있어야 하고, 미래 설계에 충실한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총장 역시 표면적인 실적만을 중시하는 과거 CEO형 총장의 모습보다는 교육의 본질에 충실한 총장상이 필요하다. 구성원과 함께 대학 발전을 모색해 나가는 중심점 역할을 해야 하고, 권위보다는 구성원에게 다가가는 소통의 총장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권형진 기자

△ 이런 대학을 만들겠다고 하는 포부가 있다면.
“부산대의 발전방향도 중요한데, 사실은 우리 학생들을 어떤 인재로 키워가야 할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 전문지식은 기본이고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글로벌 리더로 육성하는 게 기본이 돼야 한다. 그런 방향에서 교과과정과 교육과정을 개편했고, 특히 교양교육을 강화해나가고 있다. 인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한 전문인 육성을 위해 올해부터 ‘고전읽기와 토론’을 교양필수로 지정했다. 99권의 고전을 골라 69명의 전문가가 해제를 단 『고전의 힘』도 발간했다. 그 가운데 4가지 정토 텍스트를 골라 읽고 토론한다. 1년 정도 준비했고, 지난 겨울방학에는 두 달 동안 어떻게 교육할 것인지를 놓고서도 치열한 토론을 거쳤다.”

△ 어떤 변화가 있을지 기대된다.
“당장 변화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겠지만 우리 학생들이 기초에 철저했으면 한다. 대학생이라고 하면 소위 지성인인데, 기본적 소양은 갖춰야 하지 않겠나. 그리고 사회적 지성인으로서 앞으로 사회에 나가서 무엇을 할 것인지 스스로 생각게 만드는 그런 것이 대학에서 이뤄져야 한다. 항상 아쉬운 게 대학이 너무 취업, 스펙에 매몰돼 있다 보니 기본을 소홀하게 된다. 우리 사회도 좀 길게 내다봤으면 한다. 말은 백년대계라고 하지만 백년대계를 할 수 없게 만드는 게 우리 사회 아닌가. 기업도 인성, 인성 하지만 실질적으로 기업에 가보면 당장 써먹을 수 있는 기술이나 전공지식을 더 요구한다. 학생들이 자기를 위한 시간에 투자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주는 게 중요하다.”

△ 대학원 행정실을 신설하는 등 대학원 교육에도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지역인재 유출은 지역대학들이 당면한 문제 중 가장 핵심적인 사항이다. 특히 대학원의 경우도 훌륭한 자질을 갖춘 학생이 대학원에 진학할 때 수도권으로 빠져나가는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그런 면에서는 BK21사업이 오히려 지역대학을 상대적으로 위축시킨 의미도 있다. 그러다 보니 연구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이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대학원이 제 역할을 충실히 실행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10년 만에 대학원 행정실을 부활하고, 대학원장을 교육부총장으로 격상했다. 대학원을 활성화해 연구역량을 증진시키자는 목적이 있다. 어떻게 보면 지역대학으로서는 절실한 측면도 있다. 교육부도 정책적 고려가 있어야 한다. 지역거점대학들이 지역인재를 키워서 지역에서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갈 수 있게 틀을 잡아가야 한다. 우리도 대학원발전위원회를 만들어서 여러 가지 시스템이나 방법을 만들어내려고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다.”  

ⓒ권형진 기자

△ 연구력 향상을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방안을 구상하고 있나.
“R&D미래전략본부를 통해 우수 연구자가 지역에 정착해 제대로 된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려고 한다. 특히 기초분야인 자연과학과 이공계 특성화 분야를 적극 지원할 계획이다. 정말 잘 하는 분야를 특성화해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우수한 연구 인력을 확보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에 초점을 두고 있다.”

△ 부산대가 경쟁력을 갖고 있는 분야는 무엇인가.
“부산대는 전통적으로 기계공학, 조선해양공학이 강한 면모를 갖고 있고, 화학공학과 고분자공학 분야도 세계대학 평가에서 상위에 들어가 있다. 우선 그런 분야를 특성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수송기기 원천·첨단소재 연구, 그린물류 및 지속가능 생산시스템, 나노 기반 고효율 시스템, 환경 및 재생에너지, 면역세포 치료연구 분야, 분자과학기술 등 성장 잠재력이 인정되는 6개 분야를 전략특화 분야로 육성할 계획이다. 원자력 비발전 분야, 융·복합 의료소재 등도 전략육성분야로 생각하고 있다. 특히 강조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노화 연구다. 부산시가 부산지역을 노화산업의 메카로 발전시키려고 준비하고 있다. 이에 맞춰 의학, 약학 분야에서 노화연구를 특성화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부산을 포함한 동남권은 800만 인구가 밀집해 있는 곳이다. 800만 인구의 거점대학으로서의 역할을 특성화 전략을 통해서 좀 더 확대 발전시키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 앞서 융·복합 교육을 위한 학사조직 개편을 언급했는데.
“학사조직 개편보다는 대학원 조직 전문화에 초점을 두고 있다. 융·복합 교육 실현을 위해 빠른 시일 안에 융합대학원을 신설할 계획이다. 학과 구조조정은 일방적 개편이나 무리한 통폐합보다는 학내 의견을 수렴해 단계적으로 학과를 재조정하는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 다만 지역거점 국립대로서 기초학문이나 보호학문의 경우 최대한 살려나갈 것이다.” 

ⓒ권형진 기자

△ 과거에 비해 지역거점 국립대의 위상이 많이 낮아졌다.
“사회구조적 문제라고 본다. 지나치게 서울 집중적 사회 구조로 인해 지역대학이 소외되고 불가피하게 위상의 하락을 강요받은 측면이 있다. 외부적 요인으로 인해 학생들 또한 ‘인 서울’ 대학으로 가야한다는 막연한 관념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사회구조적 문제가 하나의 장벽이었고, 뛰어넘을 수 없는 측면이 있었던 것 같다. 구조적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자구노력을 강화할 생각이다. 교육의 내실화를 통해 지역인재 유출 방지책을 수립하고, 중장기 발전계획에 따라 떨어진 위상을 최대한 끌어올리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

“투자 대비 결과로 대학 평가해야”

△ 그렇다면 지역대학 육성을 위해 정부가 어떤 고민을 해야 한다고 보나.
“새 정부의 지역대학 육성 의지에는 상당한 의미를 두고 싶다. 그런데 지역대학의 기초체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기초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그만큼 많이 해야 한다. 실제로 부산대를 비롯해 지역 국립대를 보면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지원받는 인풋에 비해 그 결과로 산출되는 아웃풋은 상당히 뛰어나다. 그런데도 대학을 평가할 때는 투입은 고려하지 않고 절대적인 결과 위주로만 평가해 왔다. 대학의 평가는 눈에 보이는 결과보다는, 지원되는 인풋 대비 아웃풋의 상대적인 평가로 이뤄져야 한다. 예산 배정 등 지원이 실질적인 평가 시스템을 통해 이뤄진다면 지역대학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지역거점 대학들의 위상 하락은 어떻게 보면 주어진 조건 속에서 정말 발버둥 치면서 유지하려고 노력했는데도 역부족인 측면도 있었다.”

△ 국교련 사무국장을 맡기도 했는데, 국교련에서는 교원 성과급적 연봉제 시행 중단 등을 요구하고 있다.
“총장으로서 기본적으로는 대학의 자율성을 잘 지켜야 한다. 정부와의 관계에서는 메신저 역할, 매개 역할이 필요하다고 본다. 성과연봉제 문제만 해도 평가단위도 그렇고, 평가기준의 객관성과 합리성을 확보하기 굉장히 어렵다. 학문단위가 다르고 같은 학문단위 안에서도 분야에 따라 상당히 달라 하나의 잣대로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들기 어렵다. 그래도 자꾸 평가를 하라고 하니까 여기서부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특히 성과연봉제는 누진제다. 뒤로 갈수록 그 차이가 커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교수들이 평가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새 정부 들어와서 새롭게 개선하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것 같아 일단 기대를 하고 있다. 총장 직선제 문제도 대학 자율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권형진 기자

△ 수익형 민자사업(BTO)인 효원굿플러스 사태는 어떻게 해결할 생각인가.
“계약문제를 떠나 부실한 시행업자의 잘못을 학교가 책임지는 것은 곤란하다. 특히 기성회비를 담보로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자구노력도 필요하고, 한편으로 정부와 협조해 최대한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가려고 다각도로 논의하고 있는 중이다.”

△ 남은 임기 동안 어떤 점에 중점을 둘 계획인지.
“지금까지 부산대는 외형적 팽창에 상당히 많은 힘을 기울였다. 양산캠퍼스를 만들고, 밀양대와 통합해 밀양캠퍼스를 만들었다. 지금 캠퍼스가 4개다. 그 과정에서 기초를 소홀히 한 면이 많다.

다음 사람이 일을 맡더라도 그 기반 위에서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할 수 있게끔 기초와 토대를 다지는 역할을 하고 싶다. 임기 중에는 표가 안 날 수도 있다. 그러나 성과가 중요한 게 아니다. 지금 부산대에는 성과를 낼 수 있는 토대가 가장 절실하다. 기초와 토대를 닦는 것, 그것이 지금 나한테 주어진 소임이라고 본다.”

권형진 기자 jinny@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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