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是非世說_ ‘歌王’ 조용필
是非世說_ ‘歌王’ 조용필
  • 김영철 편집위원
  • 승인 2013.05.13 14: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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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많은 대중가수를 ‘스타’라고 부른다. 어둔 하늘에 빛나는 별 같은 존재다. 그러나 별은 明滅한다. 인기가 있을 때는 반짝이는 별이지만, 인기가 꺾이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별이 된다. 조용필이 언제 적 가수인가. 45년을 넘긴 가수다. 그의 대표곡인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나온 지 38년이 됐고, 「창밖의 여자」도 삼십 년이 훌쩍 지난 노래다. 환갑도 벌써 넘긴 조용필의 그런 가수로의 연조를 우리나라 가요계의 세태와 흐름으로 치자면, 그는 과거 속의 가수다. 이제쯤 ‘가요무대’에서나 볼 수 있는 가수 축에 끼어있어야만 한다. 영원한 청춘 같았던 김세환도 이제는 어쩌다 ‘가요무대’에서나 한 번씩 접하지 않는가.

그런 조용필이 이즈음 다시 새 노래로 선풍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10년 만에 내놓은 19집 『헬로』 수록곡들이 각종 음원 차트를 모조리 석권하고, 특히 대표곡 「바운스」는 미국의 빌보드 ‘K-Pop 핫 100’에서 싸이의 「젠틀맨」을 밀어내고 몇 주째 부동의 1위를 고수하고 있다고 하니. 그렇게 된 배경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회춘한 것인가. 물론 가수로서의 독창적인 음악성과 가창력은 나이와 세대를 초월한다. 하지만 그에 부가되는 그 어떤 것이 대중들의 마음을 움직여 환호를 보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싸이를 뒤로 젖히고, 각종 음원 차트를 석권했다고 하니 그의 신곡들에 대해 어떤 선입관 같은 게 있었다. 모든 노래가 지금 세대의 흐름을 타는 홍대 앞 록카페나 아이돌풍의 신세대적인 노래였을 것이 아닐까 하는 것. 그러나 노래들이 다 그런 류의 것은 아닌 것 같으니 딱히 그 세대만을 위한 차원에서 만든 앨범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특히 「바운스」는 나의 선입관을 보기 좋게 배반한 노래다. 조용필 특유의 달콤하고 경쾌한 발라드풍의 락으로, 그의 지난 인기곡 「꿈」을 떠올리게 하는 노래다. 이 노래는 리듬은 뚝뚝 끊어지듯 하면서도 전체적으로 활발한 분위기다. 그러나 그 리듬에 담겨있는 가사 내용은 안타깝고 애를 태우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묘한, 뭔가 엇박자적인 매칭의 이 노래는 중년 나이의 어떤 憂愁감을 불러일으킨다. 아이돌 스타 일색의 가요 판에 식상하고 소외받은 기성세대들의 감성을 충분히 자극할 만하다. 그래서 조용필에 다시 환호하고 있는 것이다. 기성세대들만 아니다.

송창식이 부른 「고래사냥」을 자우림의 것으로, 남진의 「님과 함께」를 김범수 노래로 아는 젊은 세대들은 기성가수들을 잘 모른다. 그런 이들도 조용필에는 지금 환호하고 있다. 조용필의 독특한 음악성과 가창력이 세대를 아우르고 있다는 증거다. 조용필은 대중들의 대중가요에 대한 이런 심리를 잘 읽고 있는 것 같다. 지금 세대에 먹히지 않을 것 같은 음악을, 조용필은 시대와 대중을 읽는 음악적 안목과 혼신을 다한, 업그레이드 된 공연감각으로 대중들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다. 그가 새롭게 발표한 또 다른 곡인 「어느날 귀로」에서라는 노래도 그런 분위기다. 그러나 이 노래는 보다 깊은 의미가 있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가 글을 쓴 이 노래는, 말하자면 기성세대를 위한 ‘獻歌’다. 어려운 시기를 먹고 살고, 살리려는 책임감으로 숨 가쁘게 달려와서는, 이제 ‘찬밥’ 신세로 전락하고 있는 50~60대 베이비부머들을 위로하는 노래다. 노래의 멜로디만 주고는 거의 강요하다시피 글을 요구한 조용필을 두고 송 교수가 그의 ‘사회적 의식’을 강조하고 있는 글을 읽었다. 조용필은 음악과 노래로써 사회적 기여를 하고 싶은 의지가 높다는 것이고, 그게 이 곡에 담겨져 있다는 글이다. 조용필의 잘 드러나지 않는 각종 ‘선행’도 이의 한 부분이다. 결국은 조용필의 이러한 튼실하고 독창적인 음악성은 나이와 세대를 초월하고 있고, 이에 더해 우리 사회를 바라다보는 그의 따뜻한 시각을 바탕으로 한 사회적 기여가 지금의 그를 있게 한 배경이 아닌가 한다.

조용필에게는 언제부터인가 ‘歌王’이라는 호칭이 붙어 다닌다. ‘가왕’은 아무 가수에게나 붙여지는 게 아니다. 노래만 잘한다고 해서도 아니다. 사회대중과 호흡을 같이하고,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음악과 노래로 독보적인 인기와 위치를 차지하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타이틀이다. 조용필에게 ‘가왕’이란 자격을 부여해도 될 만하지 않을까.

김영철 편집위원 darby428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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