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師表가 흔들리는 시대라고? … 그래도 “참스승은 멋진 부모와 같습니다”
師表가 흔들리는 시대라고? … 그래도 “참스승은 멋진 부모와 같습니다”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3.05.13 11: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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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회 스승의 날 맞는 캠퍼스 풍경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성년의 날… 그리고 스승의 날이 있다. 강소천이 작시한 ‘스승의 노래’ 가사는 ‘스승의 은혜는 하늘같아서 … 참되거라 바르거라’ 학생들에게 전인격적인 가르침을 준다는 의미에서 ‘스승=어버이’라는 등식을 성립케 한다. 몇 년 전 유행했던 조폭영화「두사부일체」(윤제균 감독, 2007)는 ‘스승과 어버이와 두목은 하나’라는 명제를 제목으로 내세웠고, 윤 감독은 속편을 제작하며 아예 ‘두사부필름’이라는 제작사를 차리기도 했다. 가정의 달 5월의 한가운데에 스승의 날이 있는 것은 이렇듯 한국인의 정서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국세시풍속사전』(국립민속박물관 刊에)에는 스승의 날을  ‘교권을 존중하고 스승을 공경하는 사회 풍토를 조성해 교원의 사기를 높이고 사회적 지위 향상을 위해 제정한 국가기념일’로 정의하고 있다. 그 기원을 찾아보면 1963년 청소년적십자 중앙학생협의회에서 5월 26일을 스승의 날로 정하고 사은행사를 한 것을 시작으로 해 1965년에 세종대왕 탄신일인 5월 15일로 날짜를 변경했다. 1973년 정부의 서정쇄신방침으로 사은행사를 규제하기 위해 폐지됐던 스승의 날은 1982년 부활해 정부 주최로 기념식이 열리기 시작했고, 올해 32회를 맞는다.

세종대왕 탄신일로 옮겨진 의미는?

왜 세종대왕 탄신일이 스승의 날로 지정됐을까. 한국에서 특정 인물의 탄신일을 기념일로 하는 사례는 ‘충무공탄신일’(4월 28일)과 ‘세종대왕 탄신일’(5월 15일) 뿐이다. 스승의 날을 ‘세종대왕 탄신일’로 부르지는 않지만, 文을 대표하는 위인으로 세종대왕을, 武를 대표하는 위인으로 이순신 장군을 꼽은 것은 이들이 바로 한국인의 대표 스승이라는 의미가 내포됐을 것이다.

교수는 연구를 평생의 업으로 삼고 배움과 가르침을 병행하는 사람이다. 교수들은 스승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그들이 생각하는 참스승과 바람직한 사제관계, 그리고 스승의 날의 의미는 무엇일까. 몇몇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지난해 교수로서 유일하게 대한민국 스승상을 수상한 이명학 성균관대 교수(한문교육과)는 고교시절의 김영민 선생님을 은사로 꼽았다. 질풍노도의 시기에 사고치는 친구들에게도 감정적인 개입이 없이 한 사람의 인격체로 대해주셨던 것이 아직도 그의 기억에 생생하다. 지금도 세밑이면 동기들과 선생님을 찾아뵙고 세배를 드리면 2달러를 세뱃돈으로 주신다며 웃는 이 교수에게 참스승의 기준을 묻자 “대단한 게 아니고, 선생님께서 하셨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제자들에게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것이 하나라도 있으면 그 분이 바로 참스승이 아닐까요”라고 반문했다.

이 교수가 학부생이었던 시절과 지금을 비교해보면 학생들이 많이 개인적이고 배려가 없어졌다고 말하는 그는 “師範은 ‘學爲人師궋爲世範’에서 나온 말입니다. 훌륭한 연구자가 많지만 단순한 지식전달자를 넘어서 학생들에게 정직하고 말의 신뢰를 받을 수 있어야 스승이 될 수 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철학연구회장을 맡고 있는 곽신환 숭실대 교수(철학과)는 여러 좋은 선생님들 만났지만 학부시절 만난 최명관 숭실대 교수(철학)와 대학원에서 만난 故유승국 성균관대 교수(유학)를 잊을 수 없다. 곽 교수는, 50대에 학술원 회원이 됐고 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을 역임했던 故유승국 교수의 好學하는 모습을 곁에서 보며 학문의 열정을 배웠고, 투명하면서도 예기가 번뜩이는 모습의 최명관 교수를 만나면서는 나만 좋다고 학문에 뛰어들 것이 아니라,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학문을 해야겠다는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이다.

참스승의 의미에 대해 곽 교수는 첫째로 자신이 찾았던 다른 길을 전해줄 것, 둘째로 세상의 여러 가지 미혹들을 이겨내는 능력을 길러줄 것, 마지막으로 평생 그가 추구해야 할 사명의식을 심어줄 것을 꼽았다.

가르쳤다고 해서 다 내 제자라고 말할 수는 없다고 말하는 곽 교수는 “학문적 지향과 삶의 자세에 있어서 기꺼이 가르치고, 기꺼이 배울 수 있는 자세가 있을 때 제자”라며 “숙제만 내줘서는 선생이 아니지요. 숙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계속해서 돌보고 북돋워줘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그가 그리는 사제관계를 이야기했다. 캠퍼스에서 맞는 스승의 날. 그는 특별한 일을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일생동안 스승으로부터 사랑과 따뜻한 관심의 눈길을 받지 못한 많은 학생들을 생각하는 심정으로 강의실에 들어오는 학생들을 바라본다.

정년퇴임을 하고 일흔 넷의 나이에도 왕성한 글쓰기로 후배 교수들의 귀감이 되고 있는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는 故김준민 서울대 명예교수(생물교육학과)와 故이주식 서울대 명예교수(미생물학)를 기억하고 있는 스승으로 꼽았다. 삶의 터를 춘천으로 잡은 권오길 교수는 두 분이 돌아가시기 전에는 매년 스승의 날마다 닭갈비를 보내드리곤 했는데, 이것이 평생에 잘한 일이라고 말했다. 퇴임을 한 노인 선생이 돼보니, 닭갈비 택배를 받자마자 바로 전화를 주셨던 두 분 선생님의 마음이 이제야 이해가 된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닭갈비 택배에 고마워하던 선생님

권 명예교수는 요즘은 스승의 날이라고 전화도 한 통 안하는 제자들이 많아 아쉽지만, 경기고 교사시절 가르쳤던 제자들 중에 10여 명이 강원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어 스승의 날을 쓸쓸하게 보내지는 않는다고 한다. 또 고3 담임을 맡았던 시절의 제자들이 음력 설이면 서울에 자리를 마련한다. 그는 제자들을 만날 때는 늘 새로 쓴 책을 한보따리 안고 간다.

권 명예교수가 생각하는 참스승의 모습은‘사랑’이었다. 그는 “사랑한다는 건 아낀다는 것, 아낀다는 것은 진심으로 가르치는것, 지식이나 지혜도 필요없이 그저 등 두드려주고 머리 쓰다듬어 주면서 아껴주는 것”이라고 말하며 “참스승은 멋진 부모랑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결국은 스승이나 부모가 모범이 돼서 이정표의 역할을 해 주는 것, 열심히 글쓰고, 건강한 모습을 보여줘야 제자들도 스승을 따라 배운다는 것이다. 살아계실 제 섬기기를 다 하란 그의 말에 진정이 녹아 있다.

캠퍼스에서 바라본 스승의 날은 한 해 한 해 그 의미가 점점 옅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많은 교수들 중에 ‘스승’으로 불리고 있는 이가 몇이나 될까. 김대행 서울대 명예교수(국문학)가 지적했듯이 대다수 교수들은 더 이상 ‘앞서 가는 당신을 따르겠다’라는 의미의 ‘선생님’으로 불리지 않는다. ‘나와 다름’을 전제로 한 직업의 명칭인 ‘교수님’이 당연해진 오늘날의 캠퍼스. 누구나 교수가 될 수 있지만 아무나 스승이 되지는 못한다. 단순한 지식전달자의 입장을 벗어나기 위해, 시간보다 빠르게 변화하는 학생들과 소통하기 위해 연구실 불을 밝히는 교수들이 32회 스승의 날을 맞아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을 향한 물음을 던져보는 건 어떨까.


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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