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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에서 열리는 ‘미쓰비시’ 공판에 주목하는 이유
광주에서 열리는 ‘미쓰비시’ 공판에 주목하는 이유
  • 김정훈 전남과학대 교수·일본근대문학
  • 승인 2013.05.13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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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평_ 김정훈 전남과학대 교수·일본근대문학

일본에서 국가권력보다 인간의 존엄성과 개인의 인권을 강조할 때 일본의 국민작가라 불리는 나츠메 소세키(夏目漱石)의 시점은 설득력이 있다. 그가 ‘나의 개인주의’라는 강연에서 개인주의를 유린하는 국가권력을 경계하는 발언을 한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근로정신대 문제도 소세키가 경계한 것처럼 국가가 개인주의 요소를 철저히 억압한 사례다. 한일협정 문서와 대법원 판결을 재론하지 않더라도 한일협정 체결 당시 한일 정부는 일제 피해자 문제 해결에 앞장서기보다 자본권력과 손을 맞잡고 과거 청산을 서두른 만큼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함은 당연하다.

최근 이 근로정신대 문제와 관련해 일본의 양심적 시민단체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 여자 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회’의 다카하시 마코토(高橋信) 대표가 새로 취임한 미쓰비시중공업 사장에게 면담 촉구 서한을 보냈다. 공판전의 최후 통첩 메시지에 다름 아닌데, 협상 당사자 입장에서 협상 과정과 결렬을 직접 경험한 심경, 일본에서 우리 근로정신대 피해자를 위해 오랫동안 투쟁해온 역정이 그대로 느껴져 감동적이었다.

다카하시 대표의 증언에 따르면 미쓰비시는 우리 원고들의 제안을 2010년 7월에 일시적으로 수용, ‘협의의 장’ 마련에 동의했었다. 협상을 요구한 우리 피해자들의 제안을 그들이 받아들인 것은 협상의 결과를 반영하겠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었기에 우리에게 일정한 기대를 갖게 했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 측에서는 미쓰비시 측에 가해사실을 인정할 것, 공식적으로 사죄할 것, 미불 임금 및 위자료를 지불할 것, 기념비를 설치할 것 등 네 가지 요구항목을 제시했다. 그러나 그들은 2011년 4월의 6차 협상 때 개인적 배상은 하지 않겠다며 완고하게 차단막을 쳤다. 또한 협상단장으로 총무부차장을 내보내는 등 격에 맞지 않는 협상단을 꾸려 형식적으로 대응하려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단지 참고할 사항은 그들이 한때 누그러진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법적 제재에 의한 것이었다. 나고야 지방재판소·고등재판소가 확인한 가해 사실을 미쓰비시 측이 인정하도록 우리 협상단이 압력을 가한 결과였으니 말이다.

그들은 2011년 12월 있었던 12차 협상에서 수정안을 제출해 강제동원과 임금 미지불 등의 가해 사실을 인정했다. 헌데 그렇게 자인해놓고서도 다시 한일협상 조항만을 거론해야 하겠는가.

미쓰비시의 표리부동한 이중성에 피해자들은 분노하고 있다. 일찍이 광주의 스승 문병란 시인(조선대 명예교수)은 도쿄 河書房新社에서 간행한 계간지 <문예>에 실은「일본」이라는 시에서 우리네의 정서를“어떻게 쉽사리 잊을 수가 있는가/ 어제의 역사가 되풀이 되는데/ 어떻게 속빈 창자 헤헤거리며/ 새로운 선린의 악수가 가능한가”라고 노래한 적이 있다. 하물며 근로정신대에 다녀왔다는 사실만으로 위안부로 오해받으며 평생을 숨어 지내야했던 피해자들의 마음은 오죽할까.

무라야마 담화를 무시한 채 우경화 정책을 표방한 아베정권에 대한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모두는 오는 24일 광주 법정에서의 첫 공판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1급 전범 기업이 유린한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의 인권은 회복될 것인지, 한일 민주시민의 공생과 미래를 위한 계기가 마련될 것인지 그 현장을 우리 모두는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할 일이다.


김정훈 전남과학대 교수·일본근대문학

 

필자는 일본 간사이가쿠인대에서 박사를 했다. 저서로『소세키(漱石)와 조선』,『 소세키(漱石) 남성의 언사·여성의 처사』, 논문으로「마쓰다 도키코‘하나오카 사건 각서’고찰」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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