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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도서 밀무역이 만든 조선 후기 지식장이 시사하는 것은?
안경·도서 밀무역이 만든 조선 후기 지식장이 시사하는 것은?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3.05.07 12: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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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국제학술대회_ 고전에서 찾는 동아시아학의 공동성과 고유성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GT10사업단(단장 한기형)은 지난달 26, 27일 ‘동아시아 고전학/문화연구 가능성과 난관: 한국문화의 고유성과 동아시아적 공동성’을 주제국제학술대회를 개최했다. 한국 고전의 현대화, 국제화, 대중화의 목소리가 높아진 요즈음, ‘한국학’이라는 좁은 틀과 ‘동아시아’라는 다소 공허한 외침 사이에서 ‘동아시아 고전학’을 기반으로 한 한국학의 재구축을 꾀한 이번 학술대회는 두 개의 세션으로 진행됐다. ‘한문공유체와 고유문화’와 ‘미디어와 동아시아 문화의 전환’이 그것.

한문을 소화해 읽는 과정에서 공유문화와 함께 고유문화도 태어났고, 안경 기술과 역관들의 도서 밀무역을 통해 근대 동아시아 지식장을 만들어졌다면? 한시야말로 보편규칙에 고유한 문화를 담는 최초의 세계문학이었다면? 각 시대 각 지역의 고전 열풍이 사회적 안정이 아니라, 역사적 유물론의 전조였다면? 이런 질문들에 대한 해답으로 제시된 발표들에서는 ‘한문학’이라는 것과 ‘한문이 만든 문화 세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한·중·일 학자들의 첨예한 시각차가 확인됐다.

대를 이은 역관이 만든 학술공화국

진재교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교수(한문학)는「복수의 한문학 하나의 동아시아」기조발표에서 지식장으로서 연결된 하나의 동아시아를 성립시킨 계기로, 연행사나 통신사와 같은 ‘使行시스템’을 통해 해외와 연결된 역관을 중심으로 한 중간계층의 존재를 부각시켰다. 대를 이어 상속된 이들의 국제적 인적 네크워크와, 도서와 신문물에 대한 밀무역까지 서슴지 않는 이들의 중개 기능으로 한·중·일이 하나의 지식장으로 연결됐다는 주장이다. 역관을 商譯이라고도 한 명명한 이유이다. 통역자이면서 상인인 계층의 밀무역이 국경을 넘은 학술공화국을 만든 셈이다. 진 교수의 주장이 흥미로운 또 다른 지점은 조선후기나 청나라, 에도 시대에 집중적으로 이뤄진 동아시아의 지식, 정보 축적의 한 원인을 ‘안경’의 도래에서 찾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서양의 안경을 찬양하는 성호 이익의 한시를 근거로 인용했다.

“내게 밝게 살피는 두 눈이 있었으니/하늘이 부여한 것이 실로 많았도다./원기가 쇠하여 어두워지자/하늘도 어찌할 수 없었는데/다시 이렇게 밝고 통쾌한 물건을 낳아/사람들로 하여금 이용케 하니/노인 눈이 아니요 젊은이의 눈이로다./털끝만큼 작은 것도 볼 수 있으니/누가 이러한 이치를 알아내었나?/바로 구라파의 사람이도다./저 구라파의 사람이여/하늘을 대신하여 인을 행하였도다.” (『성호전집』제48권)

진 교수의 발표는 중국 사행과 역관의 도서 밀무역이 동아시아 학술공화국을 만들었고, 안경이 가독 연령을 높여 동아시아의 백과전서파를 만들었다는 결론에 이르고 있다.

고전문화 공동성보다 고유성에 더 중심을 둔 발표도 있었다. 사이토 마레시 도쿄대 교수(「아언의 공간: 한자권의 문자와 언어」)와 로스 킹 브리티시컬럼비아대 교수(「Glossing and the problem of cosmopolitan and vernacular on both extremities of the Eurasian landmass: current research trends」는 오히려 문언문이라는 공통의 미디어에도 불구하고 개별 고전 문화는 훈독이나 구결과 같이 문자를 자국어의 틀 안으로 끌어 들여 읽는 고유한 방식들에 의해 확산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문언문과 구어 사이에, 雅言이나 토를 단 읽기와 같이 잘 정돈된 의례화된 음성언어가 있어 공동성과 고유성이 매개되고 개별 문화들이 문자 세계로 진입하는 한편, 서로 특수하게 갈라져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로스 킹 교수는 ‘Glossing’(윤택내서 읽기)라는 개념을 제시함으로써, 한자문화권이라서가 아니라 주석을 단 훈독문화권이란 개념을 반대로 사용해 보자는 주장을 펼쳐 주목을 끌었다. ‘한자’를 먼저두지 말고 ‘한자 읽기’를 먼저 봐달라는 주문이다. 대다수 중국학자들이 한자문화권을 분석할 때, 중국 본토의 ‘역외한문학’적인 시각을 탈피하지 못하는 것을 비판한 셈이다.

중국의 ‘역외한문학’적 시각

이는 일정한 보편 규칙만 지키면, 다양한 지역성과 독창적 내용을 전달할 수 있었던 한문 괹詩문화 역시 공동의 자산이면서, 지역적 색채도 뚜렷한 당대 ‘세계문학’이었다는 미치사카 아키히로 교토대 교수(「일본에 있어서 한시문의 의미-에도시대의 쯔한의 학자, 쯔자카 토요의『야코시와』에 대해서」)의 진단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공동성과 고유성이 자산이나 지켜야할 문화로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공동성이 낳은 고유성, 고유문화들의 공동 법칙이 있을 뿐이라는 이번 학술대회의 주장들은 오늘의 동아시아에 복잡하게 얽혀있는 현안들에게 던지는 시사점이 적지 않아 보인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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