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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 기피현상', 연구자들의 잘못은 없나?
'이공계 기피현상', 연구자들의 잘못은 없나?
  • 정승민 하버드 메디컬 스쿨 박사후연구원
  • 승인 2013.05.06 13: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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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_ 정승민 하버드 메디컬 스쿨 박사후연구원

 

정승민 하버드 메디컬스쿨 박사후연구원

“거기 가면 나중에 밥 굶는다.” 고3때 수능을 마치고 자연과학부에 지원하려는 나에게 담임선생님이 했던 말이다. 그 뒤로 15~6년의 시간이 지나고 그 당시에 비해 이공계에 대한 인식도 많이 달라졌다. 하지만 아직도 이 말을 단지 옛날이야기로 웃어만 넘길 수 없는 것은 왜일까. 여전히 이공계 기피현상은 존재하고 이과계열 학과의 경우 졸업 후 자기 전공분야에서 일하는 학생보다 의대나 치대로 편입하거나 전공과는 전혀 다른 일을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개인적인 예로 같은 학과(부)를 나온 동급생들 중에서 아직 연구를 하고 있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다.

이러한 현실을 볼 때마다 들었던 생각은 우리나라는 아직 정부 혹은 민간의 지원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연구만 하기에는 지원이 부족하고 배가 고프기 때문에 많은 우수한 학생들이 돈을 잘 벌 수 있는 곳으로 옮겨가게 된다는 생각이었다. 예를 들어 국내에서 박사과정 학생을 지원하는 장학금은 미국, 일본 혹은 유럽의 여라 나라에 비해 굳이 비교할 것도 없이 그 숫자와 종류는 물론 액수와 지원기간에서도 차이가 크다. 게다가 포스닥을 지원하는 장학금은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한국연구재단에서 지원하는 장학금이 유일한 것으로 알고 있다.

미국에 나와서 보니 이러한 현실이 더욱 와 닿았다. 미국 정부의 연구지원 규모가 엄청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민간 부문에서의 지원도 다양하고 규모도 정부 못지않게 크다. 물론 우리나라에 비해 경제 규모도 다르고 여러 가지 면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이겠지만 부럽지 않을 수 없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우리나라는 왜 이공계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 과학 분야에 좀 더 많은 지원을 하는 정책을 만들지 않는가, 혹은 왜 일반인들이 이공계의 중요성을 좀 더 인식해주질 않는가 하고 불만을 가지곤 했었다.

포스닥으로 하버드대에서 연구를 하면서 서서히 갖게 된 생각은 이러한 이공계 기피현상에 이쪽에 몸담고 있는 연구자들의 잘못은 없었나 하는 것이었다. 이곳에서 놀랐던 점은 이러한 문제에 대해 누군가 알아서 해결해주길 기다리는 게 아니라 문제를 공론화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해 나가려는 연구자들의 자세였다. 예를 들어, 대학 총장 혹은 학과장이 직접 대학 전체 혹은 관련된 과 전체에 정부에서 이러이러한 정책을 만들어 이쪽 분야의 지원을 줄이려고 하니 이를 저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이메일을 보낸다. 가끔씩은 직접적으로 어디로 항의 메일을 보내달라고 하기도 한다.

이뿐만 아니라 학교 및 여러 단체의 이름으로 매년 때마다 걷기, 마라톤 등 다양한 이벤트를 추진해 연구를 지원하기 위한 기금 모금을 하거나 야구 또는 미식축구 등을 통해 연구 홍보 및 기금모금을 하기도 한다. 이를 보면서 그동안 우리 연구자들이 소위 말해서 너무 젠체하고 있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묵묵히 연구만 하면 사람들이 알아서 중요성을 인식해주고 알아서 지원을 해주겠거니 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하게 됐다.

우리나라도 차츰차츰 이공계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나아지고 있고 하루가 다르게 지원이 늘어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연구를 하는 사람들이 좀 더 나서서 연구의 중요성을 홍보하고 대중들의 관심과 지원을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단지 실험실에서 앉아서 연구하는 것만이 이공계 기피현상을 해결하고 우리나라의 과학 발전에 기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정승민 하버드 메디컬 스쿨 박사후연구원
서울대학교에서 분자면역학(T세포의 분화)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신진대사와 암’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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