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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 가을 계간지로 읽는 시대의 흐름
[진단] : 가을 계간지로 읽는 시대의 흐름
  • 이지영 기자
  • 승인 2002.09.1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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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9-14 12:14:12
세상은 말처럼 날뛴다. 급박하게 삶의 흔적은 스러지고, 계절은 가을로 접어들었다. 월드컵의 열기가 점령했던 나라안의 도시와 골목은 다시 싸늘한 타인의 시선으로 채워지고, 사람들은 ‘환멸’에 못견뎌하기 시작했다. 시대의 예민한 촉수, 계간지들은 어떤 표정으로 이 時流를 바라보고 있을까.

‘창작과 비평’은 ‘한국의 문화지도, 어떻게 달라지나’를 특집으로 준비했다. 최원식 인하대 교수(국문학), 김홍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김종엽 한신대 교수(사회학)가 진행한 좌담 ‘월드컵 이후 한국의 문화운동’은 월드컵 열기와 그것이 열어놓은 또다른 출구를 진단했다.
그러나 이들의 논의는 월드컵에 한정돼 있지 않다. 함께 실린 송승철 한림대 교수(영문학)의 ‘서구와 한국의 교차점: 문화, 대중, 변혁 그 진실’이나 이남희 서울대 강사(서양사)의 ‘상상력으로 열어가야 할 새로운 지평’을 통해 문화지형의 변화를 예측했기 때문이다.
특히 송 교수의 글은 논쟁적으로 읽힌다. 좁게는 학계의 서구문화론 수입에 대한 비판적 성찰도 되지만, 넓게 보면 결국 이 수입 문화론이 창조적인 문화실천에서 멀어지는 것 아니냐는 메스를 들이댄 형국이어서다.
흥미로운 것은 ‘창작과 비평’의 이번 특집에 깃든 열망이랄까, 향일성인데, 이른바 소비 대중문화에 맞서 ‘민족문화’의 갱신을 조심스럽게 모색하는 한편, 이 길길이 날뛰는 대중을 ‘민족’ 앞으로 혹은 민족을 대중 속으로 되돌려보내려 한다는 점이다. 논쟁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문화과학’이 제시한 특집은 ‘식민지 근대화와 탈근대’이다. 문화과학에서 지속적으로 제기하는 화두이지만, 이번 호에서는 ‘근대화, 근대성’에 대한 평가와 더불어 현시점의 민족주의 담론에 대한 재평가를 포괄하려는 시도가 엿보인다.
반가운 글이 눈에 띈다. 윤건차 일본 가나가와대 교수의 ‘근대기획과 탈근대론 그리고 탈식민지주의’가 실렸다. 윤 교수는 탈근대 문제를 둘러싼 한국에서의 논의 지형도를 그려내며 “미완의 근대 기획과 탈식민지주의·탈근대론의 문제설정이 안고 있는 난해함과 애로사항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탈근대=탈식민주의’의 문제설정을 통해 억압자·피억압자의 쌍방에서 이뤄지는 식민주의·식민지체험의 총괄과 오늘날의 지배·피지배로부터의 탈각, 나아가 근대성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제기에 관해 논의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제안한다.
이외에도 지난 일 년 동안의 큰 사건이었던 미국 9·11테러와 한일 월드컵, 새롭게 등장한 대중의 문제를 기획으로 마련했다. 김성일 서울사회문화이론연구소 연구원은 ‘새로운 대중의 출현’이라는 글에서 대중, 다중의 출현을 하나의 중요한 ‘사건’으로 인식하면서 이를 새로운 사회분석의 틀의 중심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새로운 주장은 아니지만, ‘월드컵’을 기점으로 대중을 끌어안는 논의들이 익어간다는 인상을 준다.

역사비평은 ‘한국 현대사 속의 대통령 선거’를 특집으로 잡았다. 서중석 성균관대 교수(한국사)의 ‘선거와 바람: 바람의 정치’, 홍석률 서울대 강사(한국사)의 ‘대통령선거와 미국: 미국의 관여와 영향력’, 이종석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의 ‘대통령 선거와 북한: 남북한 적대적 의존관계와 변화가능성’, 정지환 독립기자의 ‘대통령선거와 언론: 개가 주인을 무는 풍경’으로 구성된 이 기획은 지나간 대통령 선거의 이면을 조목조목 그려내고 있다.
이와 더불어 ‘2002 대통령 선거 나는 이렇게 본다’가 기획돼 있다. 임대식 역사비평 편집주간의 글이 노풍을 역사적 관점에서 해석한 것이라면, 장상환 경성대 교수(경제학)는 진보정당의 입장에서, 정성호 한양대 제3섹터연구소 연구교수는 민주당과 노문현의 입장에서 대선의 의미를 개진했다.

‘사회비평’이 또 한번 논쟁의 불씨를 지폈다. 이른바 ‘내안의 파시즘’을 경계하자는 논자들에 대한 가감없는 직격탄이다. 김진석 인하대 교수(철학)의 ‘위험한 근본주의에 빠진 일상적 파시즘론과 비폭력주의’가 그것이다.
김 교수는 문부식 당대비평 편집위원과 임지현 한양대 교수(사학) 그리고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 교수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던진다. 그는 문부식 편집위원에 대해 “‘우리 안의 폭력’을 경계해야 한다면서 타자를 대하는 그 방식은 사실 얼마나 폭력적인가?”라고 묻는다.
또 임지현 교수와 박노자 교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일상적 권력관계들의 여러 가느다란 가지에 반자발적으로 매달리면서 자신을 형성하고 있는 민중들을, 파시즘을 근절하자는 미명 아래, 파시즘의 근대적 주체라고 싸잡아 비난하는 근본주의에 임지현이 빠졌다면, 어쩔 수 없이 반자발적으로 폭력에 맹종하는 사람들을, 폭력을 남김없이 없애자는 구호 아래, 폭력에 맹종하는 사람들이라고 싸잡아 비난하는 근본주의에 박노자는 빠진 듯하다.” 김 교수는 “권력이나 폭력에 대한 거부가 이상하게 도덕주의적 근본주의로 흐르는 경향”에 대한 경계하면서 “종교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성찰을 곧이곧대로 현실의 사회적 인간관계에 적용하면서 모든 폭력과 권력을 근절하자고 할 때, 근본주의적 이론이 생긴다. 그리고 그런 담론의 소유자들은 자신은 부인할지 모르지만, 도덕적 우월성을 전제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도덕적 근본주의는 그 엄숙한 화려함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현재 속에서는 얼마든지 공허하고 무책임할 수 있기 때문이다”는 결론을 내린다.

월드컵과 대중의 출현, 소비문화와 민족문화, 그리고 내안의 파시즘을 두고 인식의 지형도는 크게 지각변동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자, 어떤 논쟁이 가을을 깊게 만들 것인가.
이지영 기자 jiyou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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