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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 별빛 아래에서도 가슴이 황홀해진다면
밤하늘 별빛 아래에서도 가슴이 황홀해진다면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3.04.29 16: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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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로 읽는 책갈피_ 『우주를 느끼는 시간』 티모시 페리스 지음|이충호 옮김|이석영 감수|문학동네|532쪽|19,800원

밝은 별 몇 개가 하늘에서 반짝인다. 나는 망원경에 적응하기 위해 그 별들에 초점을 맞추면서 늘 그러듯이 주황색으로 빛나는 알데바란과 노란색으로 빛나는 카펠라, 흰색으로 빛나는 베가를 비롯해 별들의 색에 감탄한다. 하늘이 완전히 캄캄해지자 삼각형자리은하를 보았다. 이 은하는 지구에서 300만 광년 이내의 거리에 있어 은하 기준에서 보면 이웃이나 다름없다.

빛나는 가스 구름으로 뒤엉킨 나선팔들이 길게 뻗은 모양을 하고 있어 전체 형태가 화각을 벗어난다. 흔히 그러듯이 나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거나 작거나 혹은 뜨겁거나 차갑거나 간에 이 모든 것이 실제로 우주 저편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생생히 느끼면서 경이로운 감정에 사로잡힌다.(중략) 1980년, 칠레의 안데스 산맥 고지대에서 맞이한 자정, 태평양에서 흘러들어오는 깨끗하고 안정한 공기 속에 잠긴 이 높은 산등성이 지역은 시상이 전 세계에서 손꼽을 만큼 좋은 곳이다.

이곳에 큰 천문대 3개가 고대 로마인이 사용하던 봉화대처럼 죽 늘어서 있다. 나는 세 곳 중 가장 북쪽에 위치한 천문대의 아주 작은 망원경을 사용해 저배율로 은하수를 훑으면서 성단과 성운을 관측했다. 육안 관측자는 보통은 특정 표적에 망원경의 초점을 맞추고 조사하는 상투적인 방법으로 관측을 하지만, 때로는 뗏목을 타고 강 위로 떠내려가는 허클베리 핀처럼 아무 목적 없이 그냥 하늘 이곳저곳을 훑으며 살펴본다. 지구의 하늘에서 은하수 남쪽 지역만큼 더 큰 강은 없는데, 오늘 밤에 그것은 바로 머리 위 천정 근처에 자리를 잡고서 칠흑같이 어둡고 깊은 하늘에서 화려한 아치를 그리며 뻗어 있다. 나는 독수리자리부터 시작해 남쪽으로 천천히 내려가면서 벨벳 위에 박힌 보석처럼 반짝이는 별들의 무리를 관측했다.

일부 별들은 함께 모여 산개 성단 NGC 6755와 NGC 6765처럼 느슨하게 작은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그것들은 야간 열차를 타고 갈 때 창 밖으로 정적에 잠긴 농촌의 희미한 등불이 스쳐지나가는 것처럼 순간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풍경 같은 느낌을 풍겼다. 밝게 빛나는 방괄 성운 몇 개가 행진하듯이 지나가더니 갈수록 그 수가 점점 늘어났다. 거대하고 어두운 먼지 구름이 침묵을 밴 임산부처럼 끼어들더니 곧 더 많은 별들에게 자리를 내주었으며, 곧이어 촘촘하고 따뜻한 구상 성단의 빛이 나타나더니 발광 해파리처럼 이 세상의 것 같지 않은 반투명하고 미묘하게 복잡한 행성상 성운이 그 뒤를 이었다. 방패자리를 지나 뱀자리의 경계선을 넘어갈 즈음엔 속도가 좀 빨라졌다.

기다란 덩굴손처럼 뻗어 있는 어두운 먼지와 가스 위에서 샹들리에처럼 빛나는 여왕별성운이 미시시피 강을 따라 야간 항해에 나선 배처럼 화려한 모습으로 시야에 들어왔다. 궁수자리에서 밝은 성운 수십 개가 마치 열대의 꽃들처럼 이국적인 모습으로 나타났다. 나는 고요한 아침에 캠프파이어에서 피어오르는 연기(하지만 높이가 10광년이나 되는 연기)를 닮은 백조성운에서 잠시 머물렀다. 종이 초롱 같은 삼렬성운은 바람이 불 때에는 납작해 보였지만, 바람이 잦아들자 밝게 빛나는 3차원 구로 변했다.

그 옆에 있는 어두운 석호성운은 마치 자신을 보여주기 위해 피륙을 펼치는 듯했다. 석호성운의 발광 가스는 연속적으로 접히면서 주변의 우주 공간으로 희미하게 흩어져갔다. 구릿빛 구상 성단, 성긴 머리털 같은 성운, 반짝이는 산개 성단 등 아직 도 볼 것이 많이 남아 있었지만, 이제 관측에 집중하는 게 한계에 이르러 모든 것을 다 볼 수는 없었다. 나는 망원경에서 물러나 스트레칭을 하면서 머리를 식혔다. 깊은 밤하늘을 들여다 볼 때마다 흔히 느끼지만, 현실보다 더 환상적인 것은 없다.

□ 복잡한 것을 쉽게 설명하는 재능과 아름다운 문체로 ‘동시대 최고의 과학저술가’로 불리는 저자 티모시 페리스는 1956년부터 천체 관측을 시작해, 1960년부터 천문학에 관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NASA의 자문위원을 지냈으며, 캘리포니아대(버클리)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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