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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계 풍경] : 세계 포스터 100년 展
[예술계 풍경] : 세계 포스터 100년 展
  • 전미영 기자
  • 승인 2002.09.1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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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9-14 12:07:14

생각해보면, 우리는 참 많은 선전과 선동 속에서 살아왔다. 1970년대 판 선동의 결정체 ‘새마을 운동’, 1980년대 판 선전의 절정인 ‘정의사회 구현’ 같이 그 정권의 속성들과는 정 반대인 슬로건에서부터 금연, 마약 금지, 에이즈 예방을 넘나드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공익광고’라는 이름을 빌린 선전은 계속되고 있다.

‘국민학교’에 다닐 때는 또 얼마나 많은 ‘불조심 포스터’, ‘반공 포스터’, ‘물자절약 포스터’를 그려야 했나. 성냥개비 끝에서 벌겋게 타오르는 불길, 꽉 잠근 수도꼭지들은 방학숙제의 단골 이미지들이었다. 가장 창조적이어야 할 디자인이 틀에 박힌 관습으로 굳어지는 아이러니의 현장 뒤에는 촌스러운 색감과 정형만 남았다. 그래서일까, 성인이 된 뒤에도 ‘포스터’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그닥 달갑지 않은 까닭은.

동아일보와 세종문화회관이 함께 기획한 ‘예술과 사회의 대화들-20세기 세계의 포스터 100년 전’은, 우리가 살아온 포스터의 시대가 얼마나 빈약하고 획일화됐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해학과 기지, 함축미로 가득 찬 지난 20세기의 다양한 디자인 세계를 보실 수 있을 것”이라는 주최측의 선전은 조금 과한 면이 있지만, 전시된 1백 20작품은 우리가 그동안 잊고 있었던 ‘포스터도 예술작품’이라는 사실을 새삼 상기시켜준다. ‘고객’의 주문을 고려해야 하는 상업광고에서도 작가의 개성이 도드라지는 것이 그렇고, 마약이나 환경 같은 심각한 주제에서도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이 엿보이는 점이 그렇다.

오랜 세월 포스터는 정치, 사회, 경제, 문화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해왔다. 짧은 시간 안에 몇 개의 색채와 이미지만으로 사람의 감성과 이성을 꽉 붙들어맬 수 있는 매체가 포스터만큼 흔하지 않은 까닭이다.

‘볼셰비키 농업정책은 사회주의의 투쟁’(1931, 구 소비에트), ‘파리 5월 혁명’(1968, 프랑스)과 같은 작품들은 역사서보다 강렬하게 그 시대 정치상을 말해준다. ‘소아마비 근절을 목표로’(1948, 미국), ‘6월 목요 강연회-학문의 오컬티즘(隱秘論)에 대해서’(1955, 독일)와 같은 작품들은 사회상과 학문 경향을 나타내고, 그래픽디자인의 한 원형처럼 생각되는 마르셀 뒤샹의 ‘다다전’(1953, 미국) 포스터도 눈에 띄는 작품 가운데 하나다. 1990년대 이후에는 유독 지구와 환경에 대한 포스터가 많이 보이는 것도 특징.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1988 서울 올림픽’ 포스터가 전시됐는데, 나란히 전시된 ‘1964 동경 올림픽’이나 ‘1980 모스크바 올림픽’보다도 권위적이고 딱딱해서, 새삼 그 시절을 떠올리게 만든다.
전미영 기자 neruda73@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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