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4 17:25 (수)
연재기획 : 위기의 현장과학기술자들 4 -소외당하는 여성과학자들
연재기획 : 위기의 현장과학기술자들 4 -소외당하는 여성과학자들
  • 이지영 기자
  • 승인 2002.09.05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02-09-05 12:04:57
‘퀴리부인’과 같은 여성과학자가 되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남성도 여성도 아닌 ‘제3의 성’이라 불리는 여성공학도는 ‘공학도’와 ‘여성’이라는 이중의 굴레를 안고 가기 때문이다. 이공계 위기 담론에서조차 소외되고 있는 여성과학기술인력 문제를 짚어본다.

지난 1998년에 발표된 맥킨지社의 한 보고서는 한국이 시급히 해결해야할 최우선 과제로 우수여성인력 활용을 제시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대졸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OECD국가 평균 83%에 못 미치는 54%이며, 또한 여성의 사회참여율을 90%까지 높여야 선진국 진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54%라는 수치마저도 여성과학기술인력의 사회 진출 현황과 비교해 보면 까마득히 높은 산이다.

지난 5월 이혜숙 이화여대 교수(수학과)가 발표한 ‘여성과학기술인력의 현황과 전망’에 따르면, 2000년 여성과학기술 인력활용비율은 10.2%. 1991년의 5.7%에서 매년 평균 0.5%씩 증가한 이 수치는 여성과학기술 인력 활용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이공학 계열의 여성 비율은 2000년도 기준 이학계열 여성학사 40%, 석사 34.5%, 박사는 22.1%이며, 공학계열 여성학사는 12.7%, 석사 8.2%, 박사는 4.4%이다.

이공계열 분야에 여성이 진출할 수 없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몇몇 공학 계열 대학원의 경우 진학하기조차 어렵다는 것. ㄱ대 전자공학과의 조 아무개 교수는 “학문의 성격이 거칠어서인지, 여학생을 받는 것이 꺼려진다. 체력적인 이유도 있고, 남학생과 달리 함부로 대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 성적이 우수해도 떨어뜨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라고 말한다. 다른 하나는 석·박사 과정을 마치고 난 후 일자리를 구하기도, 설령 취직이 된다 하더라도 지속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은경 과학기술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여성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수적으로 여성이 적어서 그런지 확언할 수는 없지만 책임 있는 역할을 맡는 여성연구원의 수는 확실히 적은 것 같다”는 말과 함께 “어느 직장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연구소의 경우 출장과 야근이 잦아 육아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전한다. 취업을 하기도 어렵지만, 가정과 육아의 책임이 여성에게 전담되는 현실을 헤쳐나가는 것도 쉽지 않다.

이런 현실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WISE(Women into Science and Engineering)사업단과 같은 여성과학기술인력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발족했는가 하면, 여성과학인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는 움직임도 있다. 전길자 이화여대 교수(분자생명과학부)는 “최근 국·공립대 여성교수 채용할당제가 통과됐다”며 “제도 개선을 통해 여성과학기술인력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서 일하는 류형숙 연구원은 “여성에 대한 특혜를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성을 보는 사회적 관점부터 바뀌어야 한다”라고 지적한다. 이공계열 대학원과 연구소는 여성이 체력이 약하다, 위계질서가 강한 연구실 분위기와는 맞지 않는다, 결혼을 하면 쉽게 그만둔다 등의 이유로 여성과학기술인력의 수용을 꺼리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여성의 연구 능력에 대한 평가가 아니다. 여성과학기술인력이 섬세함, 수평적 사고 등을 장점으로 가지고 있음에도 사회의 편견은 여성이 가진 능력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내리지 않은 채, 기회조차 박탈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이공계가 처한 현실도 만만치 않은데, 여성과학기술자들은 ‘여성’이라는 죄 때문에 이중의 굴레를 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여성과학기술자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좋아서 시작한 공부이기에, 앞으로 현실이 변할 것이라는 희망을 보기 때문이다. 이공계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제도적인 개선도 시급하지만, 이들에게는 ‘여성’을 보는 사회적 시선의 변화가 더욱 절실해 보인다.
이지영 기자jiyoung@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