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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신화’ 벗어나야 … ‘로스쿨 문호개방’이 답이다
‘시험 신화’ 벗어나야 … ‘로스쿨 문호개방’이 답이다
  • 김창록 경북대·법학전문대학원
  • 승인 2013.04.23 19:1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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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_ 변호사 예비시험제도 도입을 반대한다

최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도입을 검토하면서 ‘변호사 예비시험 제도’를 둘러싼 논란이 거세다. 예비시험 제도는 로스쿨을 졸업하지 않아도 변호사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제도다. 2018년 사법시험이 완전 폐지되면 로스쿨 졸업자만 변호사시험을 볼 수 있다. 대한변호사협회 등 도입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기회의 평등’을 얘기한다. ‘(로스쿨에 갈 형편이 못 되는) 경제적 약자에게 법조계 진출 통로를 제공해야 한다’는 논리다. 로스쿨 도입 논의에 참여했던 김창록 경북대 교수가 변호사 예비시험제도 도입 주장을 반박하는 글을 보내왔다. <편집자 주>

김창록 경북대·법학전문대학원

2009년 3월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제도가 출범한지 만 4년이 지났다. 전혀 새로운 제도를 도입한 탓도 있어서 출범 초기에는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다. 하지만 이 땅의 로스쿨은 매우 빠른 속도로 정착돼 이제는 제도 자체에 대한 본질적인 비판은 들리지 않게 됐다.

로스쿨 도입은 ‘시험에 의한 선발’에서 ‘교육을 통한 양성’으로 법률가 양성 제도의 중심축을 획기적으로 옮기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를 묻지 않고’ 시험이라는 하나의 점을 통과하기만 하면 법률가 자격을 부여하던 시대로부터, 체계적인 교육이라는 과정을 통해 법률가를 길러내는 시대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물론 아직은 완전하지 않다.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총입학정원이라는 제도를 둬 로스쿨의 입구에서 수를 통제하고 있다. 변호사시험은 여전히 완전한 자격시험이 아니며, 그 합격자 수를 억눌러 로스쿨의 출구에서도 수를 통제하려는 기도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개천에서 용 나게 하는 ’예비시험?

게다가 최근에는 변호사시험 예비시험이라는 로스쿨의 ‘우회로’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급격하게 부상하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 회장과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으로 당선된 사람들의 선거 공약에 포함돼 있는 그 주장을 실천하기 위해서인지, 마치 융단폭격이라도 퍼붓듯 예비시험 도입론이 쏟아지고 있다.

도입론자들은 목소리를 높인다. ‘돈스쿨의 비싼 등록금이 진입장벽을 만들고 있어서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없다!’과연 그런가? 사법시험과 비슷하게 시험에 의해서만 변호사 자격을 부여하는 예비시험은 ‘개천에서 용 나게 하는’ 제도가 아니다.

사법연수원 입소생의 평균연령이 30세 전후다. 학원비, 고시원비, 교재비 등을 합치면 시험 준비를 위해 한 달에 150만원은 든다. 사법시험 합격률은 3~4%다. 이미 사법시험은 평균 30세가 될 때까지 매월 150만원 이상의 비용을 감당하면서 시험공부만 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 합격할 수 있는 시험이다. 게다가 그렇게 한다고 합격한다는 보장도 없다. ‘고시낭인’은 그래서 생긴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예비시험이 사법시험보다 더 어려운 시험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2011년부터 예비시험을 실시하고 있는 일본에서 확인된 사실이다. 로스쿨을 졸업해야 응시할 수 있는 변호사시험 응시자격을 부여하는 시험이니, 로스쿨 졸업생과 같은 능력이 있다는 것을 검증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당연히 로스쿨에서 가르치는 법률실무기초과목 등도 시험과목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예외적인 제도이니 합격률은 사법시험보다 높을 수 없다. 일본의 경우 2011년 1.8%, 2012년 3.0%였다. 그런 시험에 주로 합격하는 사람은 대입 경쟁을 갓 뚫고 들어와 시험기술이 뛰어난 이른바 ‘상위대학’의 재학생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로스쿨의 ‘문호개방’이 정답이다

진정으로 ‘경제적 약자’를 위하겠다면 로스쿨의 ‘문호개방’을 통해 확실한 ‘진입로’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정답이다. 총입학정원을 없애고 인가기준을 낮추면 로스쿨 등록금은 싸진다. 총입학정원이라는 좁은 틀에 들어가기 위해 무한경쟁을 강요당하는 구조에서 인가기준은 쓸데없이 치솟았다. 미국 로스쿨의 93.4%와 일본 법과대학원의 69%는 한국에서는 로스쿨 인가를 받을 수 없을 정도다. 또 총입학정원을 없애고 인가기준을 낮추면 직장인을 위한 야간로스쿨, 통신로스쿨도 만들지 못할 이유가 없다.

크게 바꿀 필요도 없다. 당장 총입학정원을 증원하고 그 증원된 인원을 전원 ‘경제적 약자’ 특별전형에 배정하면 된다. 2018년에 폐지되는 사법시험, 2020년에 폐지되는 사법연수에 드는 비용을 돌리면 연간 5천만원씩을 지원한다고 가정하더라도 ‘경제적 약자’로스쿨생 1천명 이상을 지원할 수 있다. 제1회 변호사시험 합격률이 87%이고 변호사시험은 자격시험이어야 하므로 이 합격률은 계속 유지될 수밖에 없으니, 한 해에 800명 이상의 ‘경제적 약자’가 변호사 자격을 얻게 된다. 로스쿨을 통해 ‘확실하게 개천에서 용 나는 나라’를 당장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이성으로 ‘관습’ 뛰어넘어 새로운 시대 만들어야

예비시험 도입론자들은 ‘경제적 약자를 위해서’라고 소리 높여 외치지만 정작 예비시험이 무엇인지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예비시험이 결코 ‘경제적 약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제시하면 슬그머니 ‘사법시험 존치’로 주장을 바꾼다.

이 땅에서 ‘시험에 의한 선발’의 역사는, 사법시험의 원형이 정착된 일제강점기로부터 따지더라도 100년 이상, 과거시험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수백년 이상이 된다. 그 오래된 ‘관습’을 획기적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니 어찌 저항이 없고 ‘향수’가 없겠는가?

1995년부터 10년 이상의 논란 끝에 로스쿨을 도입하자고 국가적 결단을 내린 것은 그 ‘관습’과 ‘향수’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시대적 요청 때문이다. 더 이상 사회와 담을 쌓고 시험 공부만 해야 법률가가 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는 판단 때문이다. 다양한 전공과 경험을 가진 학생들을 모아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문제를 찾아내고 해결해내는 훈련과정 속에서 법률가를 길러내야 하는 시대라는 판단 때문이다. ‘시험에 의한 선발’ 이외에는 다른 길을 알지 못하는 기존 법률가들의 ‘향수’ 때문에 그 시대적 결단을 되돌릴 수는 없는 일이다.

김창록 경북대·법학전문대학원
서울대에서 박사를 했다. 대법원 사법개혁위원회 전문위원, 법과사회이론학회장, 전국국공립대교수회연합회(국교련) 정책위원장 등을 지냈고, 법학전문대학원교수협의회 공동대표, 경북대 교수회 부의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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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2013-12-05 17:43:32
저는 사시 폐지와 로스쿨 문호개방을 지지합니다.
그런데.
사시존치나 예비시험 도입을 반대하고, 로스쿨 문호개방을 주장하는 자들을 볼 때마다..
그들은 항상 주장만 할 뿐이더군요.
이 글을 쓴 김 교수님도 마찬가지라 봅니다.
로스쿨 문호개방을 위하여 도대체 무엇을 했고, 하고 있으며, 할 생각이신지..
제가 보기에는
그저 사시나 예비시험을 막기 위한 방어논리에 그친 주장으로밖에 안 보입니다.
그들의 주장에 맞서려면,
대안을 제시하고, 그 대안을 구체화하여 실행에 옮기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