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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고동소리처럼 스러져가는 기억들 … 여기에 새로운 시간의 발자국이 새겨질 수 있을까
뱃고동소리처럼 스러져가는 기억들 … 여기에 새로운 시간의 발자국이 새겨질 수 있을까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3.04.23 16: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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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무대가 된 부산항

 

 

▲ 『길 위에서 부산을 보다』의 저자 임회숙 씨가 담은 북항대교 모습. 국문학을 전공한 임 씨는 부산이라는 공간에 깃든 이야기를 발견, 스토리 있는 부산 여행을 제안한 바 있다.
가수 조용필의 히트곡 「돌아와요 부산항에」(1976, 이하 ‘부산항’)만큼 부산항과 얽혀있는 대중의 정서를 절묘하게 노래한 곡이 또 있을까. “꽃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형제 떠난 부산항에 갈매기만 슬피우네. ……” 조용필의 이 노래가 대중으로부터 얼마나 뜨거운 호응을 받았는지는 원곡 일부가 「돌아와요 충무항에」(1970, 이하 ‘충무항’)를 일부 표절했다는 법원 판결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이게 어째서 ‘뜨거운 호응’과 관련되느냐 하면, ‘충무항’을 부른 가수 김성술 씨(1971년 사망)의 어머니가 아들의 노래가 담긴 음반의 존재를 알고 작사·작곡가를 상대로 소송을 낸 게 2004년 6월이었기 때문이다. 상당한 시차가 있는데, 조용필이 부른 ‘부산항’의 존재가 결국 사망한 아들의 노래를 환기해준 셈이다. ‘충무항’은 “꽃피는 미륵산에 봄이 왔건만/님 떠난 충무항에 갈매기만 슬피우네. ……”로 시작한다. 한 시대의 대중적 아이콘이 된 부산항의 이면을 짐작할 수 있는 작은 사건이다. 한국의 문화예술, 그 가운데 특히 영화는 아낌없이 부산항을 활용해왔다. 1965년 김수용 감독이 내놓은 영화 「갯마을」(고은아·황정순·이낙훈·신영균 주연)은 부산의 바다가 전면에 등장한 최초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 오영수의 소설(<문예>19호, 1953)을 영화화한 작품이었다. 기장 앞바다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풍랑으로 남편을 잃은 젊은 과부 해순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녀의 파란 많은 갯가 삶을 그려낸 ‘문예영화’였다. 삶의 매서운 공간, 질펀하면서도 강인한 무대였던 부산항은 시간이 흐르면서 음습하고, 비열한, 주먹과 깡패가 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공간으로 호출되기 시작했다.

2001년 곽경택 감독의 「친구」(장동건·유오성 주연)는 자갈치 시장을 배경으로 사내들의 의리와 배신, 폭력과 욕망의 흔적을 그려냈다. 이어진 영화들 역시 비슷한 계보를 형성한다. 폭력, 마약, 밀수, 경찰, 조직, 매춘…. 이런 이미지는 2009년 윤제균 감독의 「해운대」(설경구·하지원·박중훈·엄정화 주연)와 조우하면서 ‘재난’과 ‘휴머니즘’의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엄밀히 말하면, 이들 영화는 부산항을 원료로 했다기보다, 부산의 바다를 자원으로 삼은 문화적 산물이다.

소설 역시 부산항 또는 부산을 공간 삼아 오랜 진화를 거듭했다. 이인직의 『혈의누』, 염상섭의 「만세전」, 이태준의 「석양」, 황순원의 「곡예사」, 김동리의 「밀다원시대」,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 등을 떠올릴 수 있다. ‘최초의 개화기 소설’로 불리는 『혈의누』(1906)의 주 무대는 물론 하나의 공간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주인공의 의식의 성장과정은 공간의 이동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산(항)은 이 소설의 중요한 장소 역할을 톡톡히 한다. 그것은 부산항이 일본으로부터 물밀 듯 들어오는 ‘문명개화’를 상징했기에 그렇다.

서양제국과 일제가 노쇠한 대한제국에 항구의 개방을 그토록 압박했던 것도 바로 항만이 지닌 문명의 창구 역할을 인식했기 때문이었다. 염상섭의 「만세전」(1922) 역시 동경유학생이 시모노세키에서 부산항을 거쳐 경성(서울)으로 귀국하는 과정을 통해 주체의 발견과 각성을 그려낸 작품이다. 그러나 작가는 부산항을 부정적인 공간으로 묘사했는데, 이는 주인공의 인식의 허약성을 짚어내기 위한 데서 연유한다. 조선을 공동묘지라고 묘사한 것을 본다면, 부산항만 따로 부정적으로 그려낸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1951년 1·4 후퇴 때 부산으로 피난 온 한 지식인의 삶을 다루고 있는 단편소설 「밀다원시대」의 공간은 보수동, 광복동, 남포동, 범일동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김동리는 “바로 코끝에서 시퍼런 바닷물이 철썩거리고 있었다”라고 묘사했다. 전쟁을 피해 막다른 곳 부산으로 내려온 서울 문인들은 ‘밀다원’이라는 다방에서 다양한 에피소드를 연출한다. 실존인물을 모델로 한 작중 인물은 이 다방에서 수면제를 삼키고 죽어가면서 시를 썼다. 평론가인 김윤식 서울대 명예교수가 일찍이 이를 두고 ‘땅끝의식’이라고 불렀던 것도, 이 부산(항)의 공간적 특성, 막다른 삶의 끝이자, 도달할 수 없는 새로운 삶의 신기루를 자아낸 바로 그 특성을 알아챘기 때문일 것이다.

올해 타계한 부산의 사진작가 최민식도 이 끝자락에서 카메라를 만지고, 뷰파인더를 통해 바다내음 가득한 삶의 바닥을 응시했다. 부산항에서 밀수선을 타고 일본으로 건너간 젊은 청년이 사진에 압도돼 마침내 독학으로 다큐멘타리 사진가의 길을 가게 된 것도 ‘부산항’을 만난 숙명일지도 모른다. 개항과 피난 정부, 전후 미국·일본 문화의 수입 창구, 물신주의가 확산되는 난숙한 자본주의의 어두운 이면…. 가수 조용필은 이 부산항에서 떠나보낸 형제를 그리워했다. 어디 떠나보낸 존재가 형제뿐이었겠는가. 월남으로 파병 갔던 사나이들의 눈물도, 헤어져 현해탄을 건너가야 했던 연인들의 아픔도 모두 근대화의 공간 ‘부산항’에는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그러나 그런 기억들은 어렴풋이 뱃고동소리처럼 적막감 속으로 사라져가고 있다. 부산항은 어떤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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