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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思] 경영논리, 안티경영논리
[學而思] 경영논리, 안티경영논리
  • 홍익대 경영학
  • 승인 2002.09.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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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9-05 11:59:25
술이 몇 순배 돌고나면 벗들이 경영학도 학문이냐고 슬슬 시비를 건다. “그래 나는 장사꾼 선생이니까 잘난 인문학도 당신들이 술값은 내소!”라고 되받지만 집에 돌아와서도 그 찜찜함이 쉬이 가시지 않는다. 성공한 기업경영을 연구하고 이를 학생들에게 가르친 지 20여년, 컨설팅이랍시고 성공묘책을 기업에 제공한 지 15여년 동안 나를 괴롭혀온 것이 바로 경영학이 학문세계에서 갖는 위상에 대한 誤解와 경영논리 誤用이다.

다른 견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경영학은 기업의 궁극적 성과를 수익으로 보고 이를 높이는 방법을 찾아내 지식화하는 학문이라고 보면 무리가 없다. 그러기에 학자는 자고로 돈을 추구해서는 안된다는 선비적 기질을 가지고 있는 인문학자들의 눈에는 돈벌이학 정도로 비춰지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러기에 굳이 말 많은 술벗들의 무지를 탓하고 싶지는 않지만 하나는 분명히 해둘 것이 있다.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은 사람이나 사람의 집단인 사회를 그 분석단위로 하지만 경영학은 어디까지나 수익이란 목표를 추구하는 영리조직인 기업이 그 분석단위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문학적 시각이나 사회과학적 시각에서 경영학을 보게 되면 욕먹을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닐 것이다. 그래서 나는 술벗들에게 제3의 학문으로 봐달라고 하고 싶다. 흔히들 경영학을 기초학문과 연계해 응용과학이란 표현을 하지만, 사람을 목적이 아닌 생산수단으로 보기 때문에 사실 응용과학도 아니어서 인문학적, 사회과학적 소양이 있다고 기업경영을 더 잘한다는 보장은 없다.

기업이란 조직이 탄생하면서 경영학이 시작됐으니 그 나이가 2백년 정도 되는 성년의 학문이라 인기는 높지만 사실 그 독자성은 매우 취약하다. 수익을 남기는 방식이 시대에 따라 달라지고 해마다 그 내용이 수정될 정도로 급변해 아메바처럼 골간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잘 나가는 나라나 기업의 경영방식을 典範으로 꼽아 강자의 학문으로 치부되어 나이에 걸맞는 어른 대접을 받지 못한 것이 저간의 현실이다.
그런데, 근자에 묘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렇게 인문학자들이 질타하는 경영학의 지식이 모든 조직이나 개인에 도입되어 膾炙되기 때문이다. 대학의 경쟁력, 나라의 경쟁력, 개인의 경쟁력이란 말 속에서 경영논리의 위력을 짐작할 수 있다. 조직에 소속돼 있는 사람 어느 누구도 경영논리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심지어 조직바깥의 개인도 경영논리로 스트레스를 받을 정도로 제3의 학문은 그 위치가 격상하고 있다. 제3이 아니라 제1의 위치를 점하고 그 휘하에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거느리고 있는 형국이다. 이젠 쾌재가 절로 나올법하다. 헌데, 걱정이 앞서니 웬 일인가.

유감스럽지만 우리사회는 지금 경쟁력으로 간단히 표현하는 경영논리를 지배와 통제의 수단으로 誤用하고 있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이 반공이데올로기로 사람을 옥죄던 것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아니 경쟁력이란 애매한 잣대로 모든 조직을 진단하고 목줄을 조이려 하니 한술 더 뜬다고 해야 마땅하리라. 하지만 경쟁력이란 기업경영에 적합한 논리이고 지금 개발돼 있는 경영논리는 강자의 입장에서 정리해 놓은 것이라 약자에 대한 배려나 이들이 살아갈 권리에 대한 논의는 어디에도 없다. 경영논리대로라면 약자는 모두 시장에서 퇴출돼야 한다. 하지만 퇴출된 약자가 가야 할 곳은 아무것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 그러기에 경영논리가 득세해 경영학의 위상이 높아질수록 안티경영의 논리도 높아져야 한다. 경쟁력을 중심으로 한 경영논리란 시대와 나라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그 중심이 없어 우리 모두가 생활의 원칙으로 삼기에는 너무나 위험하다. 더구나 우리사회는 경영논리를 지배와 통제의 수단으로 誤用하고 있기까지 하니 바야흐로 안티경영의 논리를 심각하게 생각할 때다.

사람이 중심에 서야 하고 약자도 우리사회의 구성원임을 인식하는 것이 안티경영의 논리이며 오용되고 있는 경쟁력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그래서 가끔 이런 말을 기업가들에게 한다. “각자 가야할 길이 있다. 강자가 택한 길이 반드시 내가 가야 할 길은 아니다.” <홍익대·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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