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9 18:15 (금)
“6단어 같으면 표절? ‘비이성적 마녀사냥’ 일어나고 있다”
“6단어 같으면 표절? ‘비이성적 마녀사냥’ 일어나고 있다”
  • 권형진 기자
  • 승인 2013.04.22 12: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현장_ 논문표절 근절을 위한 정책토론회

 

▲ 지난 17일 열린 ‘연구윤리 확립 정책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은 ‘법제화보다 연구자의 윤리의식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사진 권형진 기자

 

“최근의 논문 표절 시비는 표적주의, 선정주의로 흐르면서 ‘비이성적 마녀사냥’이 일어나고 있다. 심지어 어느 대학에서는 교수들 싸움에 학생들이 동원돼 반대편 교수의 논문 표절을 찾아 제보했다는 소식까지 들린다.”

한국연구재단과 이상민 민주통합당 의원이 지난 17일 개최한 ‘논문 표절을 위한 연구윤리 확립 정책토론회’에서 주제발표를 맡은 남형두 연세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가 서두에 꺼낸 말이다. 남 교수뿐 아니다. 이날 참석자들은 논문 표절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대응해야 하지만 최근 일부 언론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표절 의혹 제기 방식에는 우려의 뜻을 나타냈다. 표절 판정은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인데 단순히 6단어 이상 같으면 표절이라는 식으로 기계적으로 접근하면서 오히려 폐해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른바 ‘일반지식’을 언론이 표절로 몰아세우는 게 대표적이다. 남 교수는 “언론 보도를 보면 개념 정의 부분을 갖고 유사하니 표절이라고 하는데, 이건 위험하다. 일반지식은 출처를 달면 오히려 그 사람의 지식으로 치부될 수 있기 때문에 출처를 표시할 필요가 없다. 충분히 숙련된 연구자는 그것이 일반지식인지 알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자기표절’ 혹은 ‘중복게재’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았다. 남 교수는 “일반학자는 메인 프레임을 갖고 있고 그걸 적용하기 위해 매번 갖다 사용하는 것이다. 그걸 20% 같다, 30% 같다고 하면 학문 발전을 저해하고 글을 못 쓴다”라고 지적했다. “학문에서는 다른 부분이 중요하다. 선행논문과 후행논문이 90% 같다고 하더라도 나머지 10%가 학계에 기여하고 의미 있다면 그것이 좋은 논문이다.” 

2006년 김병준 전 교육부총리가 13일 만에 낙마한 이후 논문 표절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는데도 표절 시비는 늘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남 교수는 “모든 논문이 데이터베이스로 저장되고 표절을 검색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좋은 게 많이 나왔다. 표절 발견이 쉬워졌을 뿐 늘어난 것은 아니다”라고 봤다. 하지만 남 교수는 “표절 검색 시스템은 일차적으로는 아주 유용하지만 최종 판단이 돼서는 안 된다. 그것에 의존하는 것은 위험하다. 심지어 프린스턴대는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표절은 대단히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다”라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한국국제정치학회장을 맡고 있는 이호철 인천대 교수(정외과)는 “학계에서 표절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대학에서 교수 임용이나 승진, 재임용이 기본적으로 양적 평가에 근거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한국국제정치학회는 논문 표절로 최근 사직한 김아무개 전 서울대 교수 문제로 홍역을 치른 바 있다. 이 교수는 “교육부에서 대학을 평가하는 여러 지표도 상당 부분이 양적평가에 근거하고 있다. 그렇게 되다 보니 교수를 뽑을 때도 양적 업적이 탁월한 분을 우선적으로 뽑게 되고, 양을 늘려야 한다는 압박이 표절 유혹에 빠지게 하는  배경이 아닌가 생각한다”라고 덧붙였다. 

김병수 고려대 교수(혈액종양내과)의 진단도 비슷했다. “교수 1인당 논문 수는 미국 유수의 대학을 넘어간다. 연구실적은 매우 높다. 그런데도 교수들은 계속 연구를 독려 받는다. 논문을 많이 써야 대학평가에서 그 대학 순위가 올라간다. 편수를 많이 내야하는 상황이고 ‘붕어빵’ 연구와 논문이 나오다 보니 표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김 교수는 “몇 편 안 써도 정말 창조적 논문, 임팩트 높은 논문을 쓴 교수가 우대받는 풍토가 되면 표절 시비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호철 교수는 “무엇보다 연구자의 윤리의식이 중요하다”면서 “만약에 문제가 생기면 지도교수도 책임을 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권형진 기자 jinny@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