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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세계문학사연구’ 지속해 온 조동일 서울대 교수(국문학)
인터뷰 : ‘세계문학사연구’ 지속해 온 조동일 서울대 교수(국문학)
  • 권진욱 기자
  • 승인 2002.09.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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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작업은 서구중심주의 극복 가능성에 무게 실었죠 ”

조동일 교수는 지금도 “저작이 몇편인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거북하다고 한다. 한국문학통사에서 말미암았던 세계문학사 다시 쓰기 작업이 불철주야의 노력으로 수 차례의 개정을 거듭하면서도 여전히 할 일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일거리가 많아 즐거운 것은 행운이지만 과로를 해도 치밀하지 못해 불행”이라고 말한다. 그런 조 교수가 ‘세계문학의 전개’를 통해 세계문학사 쓰기의 정점을 지나왔다. 조동일 교수를 자택 근처에서 직접 만나봤다.

△ 방대한 연구 분야를 바탕으로 많은 저작을 쓰고 계십니다. 어떻게 작업하고 계십니까.
“어떤 새로운 이론을 구상하는 일이 즐거워서 정신 없이 나가다 보니 성과가 나게 된 것입니다. 처음에는 세계문학사도 책 몇 권으로 하려다 지금 열 권 이상이 됐습니다. 그렇지만 계속 늘이다가는 완결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최근에 나온 ‘세계문학사의 전개’로 일단 완결을 지을까 합니다. 이 책을 먼저 읽고 나서 다른 책들을 보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책 한 권을 만들 때 세 차례 강의를 거치게 됩니다. 초고가 나오면 박사과정에서, 원고가 나온 후에는 석사과정에서, 다 쓴 다음에는 다양한 단과대 학생들이 모인 학부 교양선택과목에서 토론을 하게 됩니다. 문학에서 하는 것은 하나의 본보기일 뿐이고 경제학, 철학, 교육학, 건축학 등 다양한 전공에도 하도록 촉구하는 것에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강의를 하면서 원고를 고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만 생각이 다듬어지고 질문을 받게되면서 학생들이 진지한 관심을 갖는다는 것에 고무되고 구체적인 지침을 가져오게 됩니다.”

△ 세계문학사 다시쓰기 작업과 생극론은 어떤 연관이 있습니까.
“생극론은 역사전개를 이해하는 철학으로 의미가 깊습니다. 역사를 이해할 때, 상극론과 상생론, 갈등론과 조화론, 발전론과 순환론 어느 한쪽에 치우쳐 이해할 수 없습니다. 상극이 상생, 갈등이 조화, 발전이 순환이라고 봐야 합니다. 제1세계와 제2세계의 이념대립을 다 받아들임으로써 극복하는 생극론은 근대 극복의 새로운 시대를 만드는 전략으로서 구체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계급모순은 소수의 가해자와 다수의 피해자 사이의 관계이므로 투쟁으로 해결한다면, 민족모순은 다수의 가해자와 소수의 피해자 사이의 관계이므로 화해로 해결해야 하는 것입니다. 문학사에 적용하면서 재창조하자는 것이고 다른 문화사회 현상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 제3세계, 혹은 동아시아에서 세계문학사를 정리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처음인 것으로 압니다. 이 작업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입니까.
“세계문학사를 쓰는 일도 한국문학을 연구하고 한국문학통사를 쓰는 과정에서 시작됐습니다. 서양과의 관계를 가지기 전에 우리 고전문학의 세계, 그리고 한국문학 통사의 성과의 보편적 기준으로 동아시아 문학사를 이야기하고 세계문학사를 이해하게 됐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유럽문명이 세계를 제패하고 우리도 변방으로 밀려나게 됐는데 문학에 있어서는 제1세계 문학의 제패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과 원천을 잘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문학에 대한 내 연구가 탈식민주의든, 반제국주의든, 유럽문명권 중심주의와 제1세계의 횡포를 극복하는 대안으로서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실제로 입증해 보이는 것이 세계문학사를 쓰는 작업이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무슨 작업을 해서 자신에게 필요한 작업을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세계적인 전체에서 학문을 바꿔놓고 문화를 돌리고 역사의 방향을 돌리는 큰 작업을 하려면 세계문학사 쓰기와 같은 작업을 다른 분야에서도 실제로 해야합니다. 그런데 다른 분야에서는 정치경제적인 쪽에서 앞서는 곳에서는 문화분야는 뒤쳐지고 있기 때문에 정치경제가 앞서는 곳에서 대안을 마련하기는 어렵습니다. 유럽문명권 학문, 특히 미국학문이 가지는 치명적인 결점은 세계문학사를 새로 쓰는 작업을 포기해버렸다는 것입니다. 문학이 선두에 서서 하고 다른 문화부분도, 그리고 사회학문이나 자연학문도 차례로 작업의 가능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보여주도록 해야 합니다.”

△ 큰 틀을 강조하다보면, 세부적인 특징을 놓칠 수 있습니다. 미시사적 측면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요.
“거시적인 작업이냐 미시적인 작업이냐 하는 것은 기질에 따라서 다를 뿐 어떤 것이 옳으냐의 문제는 아닙니다. 제1세계 학문은 이미 난숙해서 거대이론의 시대는 끝났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는 다른 우리 학문에서는 여전히 학문의 전체적인 중요도에서 큰 범위로 작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가 하는 세계문학사 다시쓰기는 정밀하지 못하다든가 부분적으로 잘못됐다든가 논증이 미비하고 거칠고 엉성한 것이 있다든가 하는 비판이 가능합니다. 크게 한 작업은 방향과 의미를 생각하면서 거칠고 엉성하지 못한 것은 제 자신과 후속 연구자들이 다듬으면 됩니다. 사람의 일생이 정해져 있기에 혼자 다 정리하는 것은 충분히 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본말을 따져서 그것을 살리는 방향으로 재검토해주길 바랍니다.”

△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습니까.
“문명권 문학사, 세계문학사를 보면서 크게만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최근 완성한 ‘지방문학사 연구의 방향과 과제’는 인도, 중국, 미국, 영국, 불란서, 독일, 일본의 7개국에서 지방문학사를 어떻게 서술했는가를 살펴보는 지방문학사 원론에 해당하는 책입니다.
또한 연구의 촉발점이 된 한국문학사통사를 한번 더 고쳐서 제4판을 써야 합니다. 더 시간이 있으면 그간에 있었던 많은 작업에서 잘못된 것은 고치고 생각이 달라진 것을 새로 써서 부기를 다는 작업을 할 것입니다.” 권진욱 기자 atom@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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