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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목소리도 못내는 교수들…그래서 나섰습니다”
“아무 목소리도 못내는 교수들…그래서 나섰습니다”
  • 김봉억 기자
  • 승인 2013.04.08 09: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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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 만에 다시 설립한 수원대 교수협의회

 

경기도 화성에 있는 수원대는 2012년 2월 현재, 누적적립금이 3천119억 원에 달한다. 전국 사립대학 가운데 네 번째로 많다. 2011년에는 전년도보다 147억 원이 늘었다.

2011년 전국 사립대 법인의 법정부담금 납부 현황을 보면, 수원대는 18억3천만 원의 법정부담금을 내야 하지만, 11.04%인 2억2백만 원만 납부했다. 2011년 수원대의 수익용 기본재산은 54억2천만 원이 늘었다.

수원대는 종편 TV조선에 50억 원을 투자하기도 했다. 국회 유은혜 의원(민주통합당)이 지난해 2월말 기준으로 전국 사립ㆍ전문대학의 종편 투자실태를 조사해 발표했는데, 13개 대학에서 129억 원을 종편 4곳에 투자하고 있다고 밝혔다. 수원대는 투자 액수가 가장 많았다.

2012년 이 대학의 평균 등록금은 연간 767만원. 예체능계열은 851만원으로 가장 많고, 공학계열은 829만원, 인문사회계열은 638만원이다.

올해 2월, 학생들이 학교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불만을 쏟아 냈다. 학교 시설이 낡고 수업용 기자재와 실험용품이 부족하며, 수업용 소프트웨어를 구입하지 않아 수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했다. 학생들은 “수원대 재단 적립금은 전국 4위인데 학생들의 형편없는 학교시설과 수업환경 개선에는 본채 만 채하면서 TV조선에는 50억 원이나 투자했느냐”고 불만을 털어 놓았다.

연극영화학부 학생들은 수원대 총장에게 공개질의를 했다. 지난 15년간 등록금에 포함된 실험실습비, 기자재구입비 집행 내역, 정원 70명 학부에 전임교수가 5명밖에 되지 않는 이유, 매년 1억 원에 달하는 연영과 입학전형료의 사용 내용, 재단 적립금의 조성 경위와 사용 계획 등을 밝히라고 요구했다. 학생들은 “학생으로서 당연한 최소한의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제는 학교 홈페이지의 자유게시판도 자유롭게 볼 수 없게 됐다. 학내 구성원들만 이용하고 볼 수 있도록 시스템을 바꿔 놓았다. 지난 달 19일, 수원대 교수협의회 설립 이후에 일어난 일이다.

수원대 교수들이 교수협의회 창립을 서두르게 된 것은 올해 2월, 연극영화학부 학생들이 열악한 교육환경을 개선해 달라며 학교 자유게시판에 글을 올리면서부터다. “최근에 학교 게시판에 학생들의 불만이 많이 올라오고 있는데, 교수들이 그것을 제대로 수렴해 반영시키도록 노력을 해야 하는데도 제 역할을 못하고 있었어요. 학생들의 요구사항을 학교 당국에 제안하고 반영할 수 있는 창구역할을 하는 단체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교수협의회를 만들게 됐습니다.”(이상훈 수원대 교수협의회 공동대표)

수원대 교수협의회에는 300여명의 교수 중 30여명이 가입해 뜻을 함께 했다. 지난달 19일, 교수협의회 설립을 선언하는 기자회견장에는 공동대표 3명과 학생들만 참석했다. 교수협의회 설립 취지와 필요성에 공감을 하고 회원으로 가입도 했지만, 드러내 놓고 활동하기에는 아직 조심스럽기 때문이다.

수원대 교수협의회 공동대표를 맡은 세 교수는 지난 정부 시절, ‘4대강 반대 교수 모임’ 활동을 하면서 가까워 졌다. 후원금도 내고, 4대강 현장도 함께 다녔다. 그러면서 의기투합을 하게 됐다.

가장 안타까운 건 부당한 일을 당해도 어디 하소연할 때도 없는 100여명의 계약제 전임교수들이라고 했다. “1년 마다 평가를 하고 재계약을 하다 보니까 아무 목소리를 못 내요. 전임교수인데도 1년마다 계약을 해요. 승진심사는 별도로 하고요.”(배재흠 공동 대표)

공과대학 학장과 교무처장을 지낸 배 공동 대표는 계약제 전임교수들의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안다. 교수협의회를 재창립해야 겠다고 마음먹게 된 것도 그들 때문이라고 한다. “계약제 전임교수들이 1년마다 재계약을 하는 근거를 보여 달라고 하면 ‘없다’고 해요. 계약서 달랑 1장만 씁니다. ‘실적을 맞추지 않으면 재계약을 하지 않을 수 있다’고 하고요. 실적을 맞추지 않으면 연봉을 깎기도 합니다. 10년차 교수인데도 연봉 4천만 원이 안 되는 교수도 있어요. 가장 중요한 건 규정을 만들어 규정대로 하는 겁니다.”

수원대 교수협의회 출범 이후, 대학 측은 예년 보다 교수 승진 수를 늘리고, 학과운영비를 다시 지급하고, 필요한 기자재도 구입하겠다고 교수들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원래 계획하고 있던 일이었는데, 그동안 시행이 늦어졌다고 했다. 단과대학 학장들은 배 공동 대표의 연구실을 잇달아 찾아와 “학교가 바뀌고 있으니 교협 활동을 그만 두시라”고 했다.

배 공동 대표는 “학교의 인사제도나 교수업적평가, 예산 운영을 그때그때 한 사람에 의해 결정을 해요. 계획도 없이. 시스템에 따라 해야죠. 이런 걸 고쳐보겠다고 나선 겁니다”라고 말했다.

수원대는 지난 1982년 문을 열었다. 설립자는 故 이종욱 전 총장으로 현 이인수 총장은 설립자의 아들이다. 수원대 이사장은 이 총장의 부인이 맡고 있다.

이원영 수원대 교수협의회 공동대표는 교협의 역할에 대해 이렇게 생각한다. “경영기능을 갖는 재단이 교육기능까지 도맡아 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아이를 기를 때 부모의 역할이 따로 있듯이, 사람을 길러내는 대학에서도 교육프로그램의 운영은 그런 전문성을 갖춘 사람이 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지요. 지금 수원대는 그런 면에서 절름발이 입니다. 이로 인해 생기는 문제가 많은데 이를 바로 잡기 위해서도 교수들의 중지를 모으고 창의적으로 해결해가는 과정이 필요하겠지요.”

이 공동 대표는 “현재 사립학교법의 구조적 문제를 수원대가 고스란히 안고 있다”며 “교협 활동을 통해 사립학교법의 올바른 개정에 기여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수원대 교수협의회는 지난 달 19일, 설립 선언을 하면서 “수원대는 외견상 많이 성장한 듯 보이지만, 학령인구의 급격한 감소 속에 대학 전체를 압박하며 위협하고 있는 정부의 대학퇴출정책 등의 심각한 상황에서 교수, 학생, 지원, 재단 등 본교 가족들 모두가 힘을 합쳐 헤쳐 나가야 할 처지에 있다”며 “하지만 학내 현실은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기에 더욱 어렵고 열악한 상태로 퇴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대학의 공공성과 민주적이고 투명한 운영체계 확립 △교수가 안정된 신분으로 연구와 교육에 전념할 수 있도록 노력하며 △학생의 인권과 학습권의 보호 증진에 노력한다고 했다. 이들은 “수원대 교협의 목표는 재단과 학생, 교수, 교직원의 상생과 행복임을 분명히 한다”라고 강조했다.

수원대의 한 교수는 교수협의회 카페 게시판에 ‘나는 왜 교수협의회에 가입하였는가’라는 제목으로 이렇게 글을 올렸다. “어제는 각시가 며칠 동안 시골에 갔기 때문에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연구실에 8시에 도착해 운동화로 갈아 신고 학교를 한 바퀴 둘러보았다. … 우리 학교는 조경을 참 잘 한다. 곳곳에 나무를 잘 배치해 사계절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자랑스러운 캠퍼스이다. 서울 시내에 있는 대학과는 달리 건물과 건물이 널찍이 떨어져 있어서 전체적으로 여유로운 느낌을 준다. … 산책을 마치고 제1공대 5층 베란다에서 학교 전체를 내려다보았다. 훌륭한 캠퍼스이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한탄이 흘러 나왔다. 하드웨어는 참 좋은데 소프트웨어가 문제로구나!”

김봉억 기자 bo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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