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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속 한국학의 도전과 과제
세계 속 한국학의 도전과 과제
  • 교수신문
  • 승인 2013.04.0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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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샌디에고에서 열린 아시아학회

학문도 국력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국력에 의해서 연구비의 지원, 연구테마의 무게, 연구결과의 영향력, 학자간 횡적 네트워크 형성, 그리고 후학양성의 종적 네트워크 등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유럽학자들이 종종 미국 중심적 학문 思潮에 딴지를 거는 이유도 미국이라는 헤게모니가 장악하고 있는 연구와 교육의 권력관계 속에서 배태, 형성되는 중심부와 외곽이라는 구도에 불만이 있기 때문이다.

작금의 실증주의 중심의 미국 사조에 대응하기 위해 독일에선 프랑크푸르트학파가 프랑스에선 포스트모더니즘이 등장했다. 사회현상을 코드로 단순화한 뒤 통계처리를 하고 그 결과가 마치 진실인양 주장하는 풍토를 비판, 견제하려는 제 3세력들의 노력은 지구적 학문커뮤니티의 발전을 위해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남미의 종속발전론과 아프리카의 탈식민지론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국력중심의 학문적 재편에서 동아시아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과 중국 두 나라의 축으로 상징되는 G2시대의 도래로 아시아연구가 매우 활발해지고 있다. 이는 아시아적인 시각으로 西洋發 이론을 검증, 비판하는 성향들로 나타난다. 대륙을 피로 물들인 양대 세계전쟁 이후 유럽에서 등장한 기억(memory)이나 인권연구가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홀로코스트(Holocaust)라는 유럽적 경험을 바탕으로 등장한 기억연구를 아시아적 맥락에서 비춰 보았을 때 드러나는 인식의 편향, 그리고 식민제국주의의 가해자들이 주장하는 보편적 인권담론에 저항하는 피지배국가들의 방콕선언 등은 서양학문의 헤게모니가 받고 있는 도전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런 의미에서 지난 3월 20일부터 24일까지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고市에서 열린 아시아학회에서 관찰한 변화가 현재 한국학이 당면한 도전에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 1941년에 조직된 아시아학회는 지난 수 십여 년 동안 매년 평균 20여개 씩의 패널이 증가하는 발전을 해오고 있다. 올해 회의에서도 전 세계에서 1천800여명의 전공자들이 참가한 380여개의 패널이 조직됐다.

중국관련 패널이 120여개로 압도적 다수였고, 일본 패널이 50여개, 한국 패널은 25개였다. 회원들의 1차 관심지역도 중국이 약 3천여 명으로 절대다수이고, 일본이 약 1천800여명, 그리고 한국전공자가 약 500여 명으로 분포하고 있다. 이런 분포는 현재 시점 중심인 국력이라는 변수이외에도 아시아의 각 사회가 세계의 다른 지역과 맺고 있는 인연의 역사와 그 심도라는 다른 변수들도 나름 작용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예를 들면 비교적 빨리 서양의 관심을 끈 일본의 경우는 연구자의 층도 두껍고 쌓아놓은 업적도 많아 후속세대들이 비교적 쉽게 뛰어들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 있고 중국연구도 영국학계를 중심으로 선행연구가 많은데다가 중국 밖에서 활동 중인 중국계 연구자들의 수가 다른 지역에 비해 많다는 점에서 비교우위를 점하고 있다. 현재의 구도 속에서 한국학이 좀 더 건실한 학문분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우선 비한국계 연구자들을 적극 포용하고 지원할 필요가 있다.

일본학은 에즈라 보겔 등을 포함한 석학들의 공헌으로 연구의 깊이가 더해졌고 중국학도 페어뱅크스와 같은 대표적인 학자들을 중심으로 넓은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다. 한국학은 역사가 비교적 짧아 미국의 평화봉사단이나 한국전 참전용사 세대를 중심으로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는데 하와이대의 네드 슐츠, 시카고대의 부르스 커밍스, 브리티쉬 컬럼비아대의 도널드 베이커 교수들이 앞서간 세대로 활동 중이다.

그 다음 세대는 교포나 이민자 출신의 연구자들 중심인데 조지타운대의 빅터 차, 남가주대의 데이비드 강, 캘리포니아주립대(버클리)의 존 리, 컬럼비아대의 챨스 암스트롱 교수 등의 역할은 주목할 만하다. 물론 신기욱, 문승숙, 최혜월 교수 등을 포함한 유학파들의 연구 활동도 높이 평가받고 있다. 이와 동시에 한국학이라는 분야가 인류보편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관점을 제시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당면과제라 할 수 있다. 미국학은 냉전구도 속에서 소련식 공산주의보다 미국식 자유민주주의의 우월성을 보여주기 위한 선전도구적인 성격이 강했고, 1980년대부터 등장한 일본학은 경제력을 바탕으로 일본인과 일본문화의 특수성에 방점을 찍는 작업에 주력해왔다.

반면 히브루학은 화해, 용서 등과 같은 종교적 색채를 바탕에 깔고 있다. 한국학이 국제적 연구분야로서 기여할 수 있는 테마로는 전쟁과 분단의 경험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는 반전평화존중의 전통, 동학운동과 함석헌 선생의 씨알사상을 근거로 하는 사람중심의 박애사상, 도덕적 정의감을 기초로 하는 저항정신과 민주화의 경험 등을 꼽을 수 있겠다. 학문적 연구도 결국은 좀 더 나은 세상을 지향한다는 규범적 당위성을 가진다.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연구지원과 개방적 네크워크 형성 전략에 집중한다면 인류사에서 한국학이 기여할 수 있는 여지는 충분하고도 남는다.


김미경 일본 히로시마시립대-평화연구소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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