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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소를 잡아 나눠 먹고… 제관은 1년 동안 궂은 곳을 가지 않는다
함께 소를 잡아 나눠 먹고… 제관은 1년 동안 궂은 곳을 가지 않는다
  • 송기태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
  • 승인 2013.04.01 13: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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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이야기 27 완도군 넙도의 ‘제사공동체’

넙도 방축리에서 제물로 사용할 소를 잡고 있다. 기술도 남다르다. 사진=송기태
서남해 도서해안지역 사람들은 의례를 하루 일찍 당겨서 지낸다. 마을제사를 비롯한 모든 명절차례를 하루 전날 지내기 때문에 답사를 위해서는 항상 하루 전날을 생각해야 한다. 하여 올 해 설에는 넙도의 마을제사와 명절풍속을 답사하기 위해 섣달그믐 새벽 해남 땅끝에서 귀성객들과 함께 넙도로 가는 첫 배에 몸을 실었다.

넙도는 완도군 노화읍에 속한 섬으로 땅끝에서 남쪽으로 12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넙도는 동넙도와 서넙도로 나뉘어져 있다. 동넙도에 내리와 방축리 2개 마을 313가구 696명이 거주하고 있고, 서넙도에 서리 1개 마을 80가구 179명이 거주하고 있다. 세 마을 모두 자연마을로는 큰 마을이어서 유치원에서부터 넙도초등학교, 노화중학교 분교가 운영되고 있다. 흔히 하는 말로, 청년들이 많아 갓난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섬이다.

당집에 있는 당할머니의 한복과 고무신. 사진=송기태
넙도 사람들은 해마다 소를 잡아 당제 제물로 바치고, 마을사람 모두가 나누어먹는 제사공동체를 유지하고 있다. 넙도에서 모시는 마을신은 당할머니로 해남 땅끝 당하리에서 건너와 좌정했다고 한다. 내리와 방축리 모두 당할머니를 모시고 있는데 두 마을의 당할머니는 자매관계에 있다. 땅끝에서 넙도로 건너와서 언니는 내리에 좌정하고 동생은 방축리에 좌정했기 때문이다. 다도해지역에서는 마을신이 바다를 건너와 좌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넙도의 사례가 전형적이라고 할 수 있다.

내리의 당은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남쪽 언덕배기에 위치해 있다. 겉은 당숲으로 우거져 있고 그 안에 당집이 축조돼 있다. 당집에는 당할머니가 좌정해있는데, 특별한 신체가 있는 것은 아니고 당할머니가 입는 한복 두 벌이 걸려있고 그 밑에 고무신 두 켤레가 놓여있다. 한 벌은 봄가을에 입는 옷이고, 한 벌은 겨울에 입는 옷이다.

내리와 방축리는 섣달그믐 밤부터 음력 1월 1일 새벽 사이에 당제를 지낸다. 당제의 가장 중요한 제물은 소다. 최근에는 당제를 지내기 며칠 전 해남에서 수소를 구입하는데, 과거에는 몇 달 전에 구입해 방목을 했다. 방목한 소가 밭을 돌아다니면서 농작물을 뜯어먹어도 몰아내지 않고 일도 부리지 않았다. 당제에 쓰이는 신성한 제물이기 때문에 그 누구도 함부로 손대지 않았다. 2013년 당제에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수소를 잡아 제사를 지내고 마을 주민들이 공평하게 나누어 먹었다. 

내리마을에서 도축한 소를 8개 반으로 공평하게 나누는 모습이다. 사진=송기태
소의 도축과 고기의 분배과정은 알래스카의 원주민들이 고래고기를 분배하는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내리마을은 섣달그믐 아침에 잡고, 방축리는 오전 10시 무렵에 잡았다. 해마다 소를 잡아서 제사를 지내는 만큼 기술도 남달랐다. 열댓 명의 젊은이가 소의 목과 다리에 줄을 걸어서 팽팽하게 힘겨루기를 하는데 이때만큼은 소가 날뛸 수 있기 때문에 긴장감이 고조됐다. ‘저렇게 줄을 매어서 어떻게 하는 거지?’ 하고 의문이 들 때쯤, 다리에 묶인 줄이 당겨지면서 소의 다리가 묶이고 무릎이 꿇려지는가 싶더니 이내 힘없이 넘어졌다. 그때서야 여러 명이 줄을 잡아당기는 이유를 알게 됐다. 이후 머리에 천을 덮어서 멱을 따는 과정은 순식간에 진행됐고, 가죽을 벗기고 뼈와 살을 잘라 분배하는 것도 한두 시간이면 족했다.

내리의 경우 8개의 반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각 반의 반장들이 참석해서 고기를 자르고 분배하는 데 참여했다. 한 쪽에서는 도끼와 칼로 고기를 잘라내고, 한 쪽에서는 잘라낸 고기를 저울에 달아 각 반의 바구니에 집어넣고, 또 한 쪽에서는 내장을 손질했다. 누가 특별히 일을 지시하는 사람이 없었지만 이장을 중심으로 각각 자기 일을 찾아서 하고 있었다. 물론, 옆에서 생간에 소주를 마시며 우스갯소리를 하는 사람들도 있고, 도끼질 실력에 대한 품평들을 하며 나서는 사람들도 있었다.

도축이 끝난 후 소머리와 가죽은 당으로 먼저 옮겨졌다. 소를 구입할 때부터 당할머니 제물로 사용하기 위함이었으니 소를 상징하는 소머리를 먼저 당으로 옮기는 것이다. 몸통과 다리는 8개 반으로 골고루 나누고, 8개 반 반장은 마을로 돌아가서 각각의 가구별로 고기를 분배했다. 이렇게 분배된 소고기는 당할머니의 제물과 각 집안의 차례 제물로 사용됐다.

설날 자정을 기해 마을의 모든 주민이 출입을 삼가는 상태에서 당제의 유사가 당할머니께 제사를 올렸다. 소머리와 나물, 과일, 떡, 술 등등 모두 유사가 직접 준비하고 장만한 제물로 당할머니께 제사를 올렸다. 제물을 진설한 후 유사는 당할머니께 절을 올리고 마을의 풍요와 안녕을 빌며 소지를 올렸다. 이제 당제를 주관한 유사는 이제 1년 동안 궂은 곳을 갈 수 없다. 심지어 친척집에 혼례나 초상이 나도 마을에 해가 될까 우려해 참석하지 않는다. 유사가 마을의 정신적 지킴이로서 근신해야하기 때문에 그 대가로 마을의 공동소유인 솔섬의 해조류 채취권을 주기도 했지만, 경제적 보상으로 따질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당제를 지내고 설날 아침이 되면 성묘를 가고 친지를 방문하느라 바쁘다. 그러나 바쁜 와중에도 청년회를 중심으로 한 군고패(농악대)는 가장 먼저 당으로 가서 당굿으로 당할머니께 인사를 하고 마을의 모든 가구를 돌아다니며 마당밟이를 시작한다. 당할머니의 영험을 받아 온 마을을 돌아다니며 축원을 하고 액을 몰아내는 것이다. 2013년 설에도 이틀에 걸쳐 마을의 모든 가구를 돌며 마당밟이를 진행했다. 마당밟이를 하면 어제 분배한 소고기가 어떤 음식으로 만들어졌는지 확인할 수 있다. 마당밟이를 할 때 군고패를 맞이하며 제물로 사용된 음식을 내놓기 때문이다. 소고기로 국을 끓이기도 하고 산적을 만들고, 꼬치를 만들기도 하는 등 각 집안의 솜씨대로 음식을 만들어서 차례상에 올린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마당밟이의 현실적인 기능은 당제의 비용을 마련하는 데 있었다. 마당밟이의 수익으로 소 구입비용을 비롯한 당제와 농악 관련 비용 일체를 충당하기 때문이다. 군고패가 들어오면 형편껏 기부금을 내는데, 올 해 소를 구입한 비용이 500만원이었으니 나머지 제물 구입과 유사 수고비를 제하고도 많이 남는 금액이 걷혔다.
필자는 쉼 없이 이어지는 마당밟이를 뒤로하고 막배를 탄 채 뭍으로 향했다. ‘넙도의 제사공동체!’ 돌이켜 회상할 때마다 가슴이 벅차다. 넙도는 당제와 마당밟이, 소의 도축과 분배, 제관의 근신기간 설정 등을 통해 그 기능을 유지하고 있었다. 마을신의 영험을 토대로 모든 집안의 평안과 풍요를 빌어주고, 소를 잡아서 당할머니와 조상신, 마을주민들 모두가 나누어 먹으며, 제관은 마을을 위해 1년 동안 근신하는 제사공동체를 생각하면 마을이라는 전통적 공동체가 갖는 건강성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송기태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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