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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은 죽었다
대학은 죽었다
  • 권경우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문화평론가
  • 승인 2013.04.01 13: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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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_ 권경우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 · 문화평론가

 

권경우 한예종 강사 ·문화평론가

모  언론사가 마광수 교수의 수업 방침을 보도하면서 사회적 논란이 됐다.  그렇게까지  논란이 될 만한 사항은 아니었지만 특정 언론이 자세하게 보도하면서 파장이 커졌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수업  과제로 책을 읽은 후 리포트를 제출할 때 구매 영수증을 첨부하라고 한 것이 문제였다. 

이에  대해 교수가 자신의 책을 강매하려는 불순한 의도였다고 보는 반면,  수업  교재도 구입하지 않는 요즘 대학생들에 대한 한탄이 있었다.  마광수  교수는 이 논란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학생들이  비싼 커피는 잘도 마시면서 책은 사지 않는 풍토를 비판하면서,  실제로  작년에도 수강생 6백명  중 50명  정도만 책을 샀다는 것이다.  대학(생)의  실태가 그러하니 영수증 첨부와 같은 방법이라도 동원해서 그러한 잘못된 현실을 바꾸고 싶었던 것이다.

이  논란에 대해 교수가 심했다라거나 요즘 대학생들이 문제라는 식으로 비판하는 것은 현실의 단면만을 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대학을  졸업한 지 오래된 이들의 반응은 대체로 밥 사먹을 돈을 아껴 가면서 교재를 사거나 읽고 싶은 책을 샀다는 식으로 말한다.  전형적인  ‘꼰대’의 반응이다.  마광수  교수의 방침을 둘러싼 문제는 단순히 교재나 책을 사지 않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것은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대학이 어떤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최근  대학 강의실에는 모종의 긴장감이 흐른다.  그것은  학문에 대한 열정이나 치열한 논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교수와 학생이 ‘서비스’라는  영역에서 만나게 되는 불편함이 제공하는 긴장감이다.  교수는  학생의 요구와 필요에 부응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자신의 입장이 과도하게 개입할 경우 서비스를 받는 학생들은 노골적이고 직접적으로 대응한다. 

전임  교수가 아니라 시간 강사의 경우에는 그러한 긴장감이 훨씬 더 심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수업시간에 하는 발언은 학생들에 의해 필터링되고 누군가에게 전달되고 검열된다.  가르치는  자는 배우는 자의 눈빛을 읽고 그들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여전히 학점을 부여하는 막대한 권한을 갖고 있는 교수의 성향과 스타일을 파악하는 것은 눈치빠른 학생들의 몫이다.  지난  학기 서울의 한 대학에서 대다수의 수강생들에게 ‘F  학점’을  부여했던 강사의 행위는 어쩌면 무너지는 자신의 권위에 대한 몸부림이었는지도 모른다.

얼마  전 언론 보도에 따르면,  서울의  어느 사립대가 ‘커리큘럼 평가위원회’를 도입해서 교수들의 강의를 사전에 점검하고 관리하기로 했다고 한다.  외부  전문가를 위원으로 위촉해서 강의가 학생들의 역량을 끌어올리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그리고  현실을 얼마나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를 평가한다고 한다.  만약  이 제도가 시행된다면 지금까지 대학이 해왔던 역할과 기능뿐만 아니라 대학의 개념과 정의 등 존재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 제기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계속 불거져 나오는 ‘논문 표절’ 문제와 동떨어져 있지 않다.  이미  2000년대를  전후로 모든 대학이 경쟁적으로 직장인을 대상으로 하는 대학원과정을 새롭게 개설하거나 전업 학생이 부족한 일반대학원에까지 직장인들을  받아들였다.  그  과정에서 수업은 야간이나 주말에 파행적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었으며 이미 양질의 전문가나 연구자를 배출하는 대학원 고유의 목표를 포기한 상태에서  논문의 수준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대학은  고액의 등록금이 중요했고,  대학원생들은  학위가 필요했다. 

일반  직장인,  전문가,  연예인,  공무원  등 많은 사람들이 대학원을 거쳐 갔다.  그들은  굳이 논문을 쓰거나 학위를 받을 필요가 없는 이들이었지만,  점차  스펙이 강조되는 사회에서 그들 역시 피해갈 수 없었을 것이다.  주경야독의  노력을 하는 이들도 많았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도 많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표절  논란은 대학의 ‘학위장사’와 유명인의 ‘학력포장’이라는 사회적 산물이 만나서 빚어낸 욕망의 결과물이다.

논문  표절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대학의 정의나 역할,  사명이  사라진 이 시대에,  유독  ‘논문 표절’만 논란이 되고 있는 현실은 아이러니이다.  만약  대학에 아직 희망이 남아 있다면 그 희망은 누가 만들어내는 것인가?  학생들은  더 이상 대학에서 스승이나 선생을 구하지 않는다.  TV 토크쇼나  특강에서 교훈과 감동을 받고,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상주하는 멘토들로부터 힐링을 받는다.  교수들도  이것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이  택한 것은 ‘체념’이다.  대학을  둘러싼 현실이나 구성원의 모습은 절망에 가깝다.  대학에  대해 아무도 말하지 않는 진실이 있다면 ‘이미 죽었다’는 것이 아닐까?  이  말에 충격을 받는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라는 게 더 안타까울 따름이다.

권경우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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