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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름한 개인박물관에 들어선 느낌 … ‘和樂’이란 두 글자와 사슴눈망울에 마음 애잔
허름한 개인박물관에 들어선 느낌 … ‘和樂’이란 두 글자와 사슴눈망울에 마음 애잔
  • 교수신문
  • 승인 2013.03.25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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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대학생이 찾은 이화장 이야기

 
2009년 4월 사적 제497호 지정된 ‘이화장’은 다른 기념 공간과 달리 접근이 쉽지 않다. 1988년부터 역사자료 및 이승만 대통령 내외가 평소 사용하던 가구 및 유품을 전시해 개방하고 있지만, 사흘 전에 사전 예약을 해야 입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화장이 시민들에게 공개된 이후, 많은 이들이 이화장을 다녀갔다. 자신의 블로그에 사진과 글을 올려 이화장을 만난 소감을 밝히고 있지만, 블로그 http://pockgun.tistory.com을 운영하는 ‘형석’씨의 글 하나가 유난히 눈길을 끈다. 그는 연세대 정치외교학과에 복학한 이후 2009년 10월 어느날 휴강을 핑계로 이곳 이화장을 찾았다.

그의 블로그 글 제목은 ‘이화장, 짜증나는 첫 인상, 그리고 이승만의 和樂’이다. 2013년의 시점에서 본다면 약간의 시차가 있긴 하지만, 그의 글은 이화장을 찾은 시민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이 낯선 장소에 대한 그들의 느낌은 어떤 것인지를 솔직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근현대한국을 만든 40곳-이화장’ 편에서 공유할 만하다고 판단해 게재한다.

 

떨리는 마음으로 초인종을 눌렀다. 이번에는 한 번 만에 문이 열렸다. “어? 아까 그 학생 아니야?” 나는 간신히 웃으면서 예약을 하고 다시 찾아뵙는다고 말씀 드렸다. “이 학생 참 어이없네. 그건 의미가 없지! 오늘 바빠서 안 된다니까 그러네. 참 이렇게 막무가내로 다시 오면 어떡하나.” 아침부터 바쁘신 것 같아서 1시간 있다가 다시 찾아온 것이라고 말씀드렸더니 아저씨는 마지못해서 관람을 허락해주셨다. 단 조건이 붙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관람을 허락해주기는 하겠는데, 제초작업을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나서도 이어지는 아저씨의 하소연 비슷한 질책들, 학생 하나가 이렇게 불쑥 찾아오면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아느냐, 찾아오기 전에 충분히 조사하고 예약하는 것은 기본 아니냐, 114에 이화장 물어보면 바로 연결돼서 예약이 가능한데 도대체 무엇을 알아본 것이냐, 학생 한 사람 때문에 내가 여기 문을 열어주면 여기서만 30개가 넘는 스위치를 켰다가 학생이 가면 30개가 넘는 스위치를 다시 꺼야 한다 기타 등등 정문에서부터 전시관까지 발길을 옮기는 내내 위와 같은 말들과 더불어 추가적인 주의사항이 덧붙여졌다. 학생도 알다시피 여기는 유서가 깊고 오래된 건물이니 첫째로 화재에 유의할 것이며, 건물 주위에 달려있는 액자들을 가리키며 오래돼서 건들면 떨어질 정도라 청소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며, 건들면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죄송하고 고맙다는 말을 연발하며 관람할 수 있었다. 기분 나쁜 삼고초려 끝에 얻어낸 값진(?) 관람기회였다.

본관에 들어서자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에 들어선 기분을 느꼈다. 혹은 중국의 허름한 개인 박물관에 들어선 기분. 시간이 느껴지는 방들이었다. 색이 바랜 사진들과 물건들 그리고 먼지들, 공기마저도 텁텁했고 나를 무겁게 만들었다. 이승만 대통령의 연대기를 담은 벽보 군데군데에는 후에 스티커를 덧붙여 고친 흔적들이 남아 있었고, 그 부분만 색이 선명해 ‘저는 최근에 고쳐졌습니다’ 하고 스스로를 알리고 있었다.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의 물건들은 그 본색 빛을 잃고 주인이 떠나간 자리에서 옛일들을 기억한 채로 말없이 장식장 안에 갇혀 있었다. 전시품들과 나 사이에는 일정한 거리가 있었고, 서로간에 조심스러운 그 간극 속에서 지킬 것을 지키는 관람이 이어졌다.

본관 정문으로부터 오른편 방 두 개는 이승만 대통령에 관한 물건들로 그의 일생을 말해주고 있었고, 왼쪽 편은 방 한 개, 화장실, 부엌 등으로 부엌에서는 이승만 대통령과 관련된 기념품과 책들을 판매하고 있었고 방에서는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와 관련된 물품들이 전시돼 있었다. 전시관은 독립운동부터 건국, 6·25전쟁, 그리고 하야까지 굴곡 많은 대한민국의 초기역사를 대표하는 그의 찬란했던 기억들을 그를 대신해 말해주고 있었다. 그 중에서 나에게 가장 인상 깊게 다가왔던 것은 이승만이 부인에게 써준 和樂이라는 붓글씨와 프란체스카 여사와 관련된 전시실 벽 뒤에 자수로 표현된 사슴 병풍 비슷한 것이었다. 화락이라는 두 글자로 된 붓글씨는 단순하면서도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그는 아내에게 왜 이 말을 선물한 것일까. 그는 화락이라는 말을 평소 좋아하고 중요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아내에게 갑자기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말을 붓글씨로 써서 선물했을 리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의 집권 기간 동안 和와 樂은 대한민국 역사에 얼마나 반영됐는지를 생각했다. 지극히 이승만 자신의 개인적인 가치였었던 것인지, 아니면 그가 진정으로 대한민국에 이루고자 한 가치였는지 알 수 없지만, 결론적으로 볼 때 개인과 국가 중에서 위의 가치는 이승만 개인에게 더 치우쳤던 가치가 아니었나 한다. 중요한 것은 저 두 글자가 내 마음에 깊이 새겨졌다는 것이다. 마지막 전시실에서 프란체스카 여사와 관련된 물품들을 구경하다가 마주친 사슴의 눈동자를 오래도록 가만히 서서 바라보았다.

저 사슴은 이 자리에 서서 여기에 왔다가는 많은 사람들을 저렇게 쳐다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 사람이 자신을 알아보든 그냥 지나치든 말이다. 쌓여있는 먼지와 옛날 조명기구, 창 사이로 들어오는 뿌연 햇살, 꽤 무겁게 느껴지는 공기에 둘러싸인 기분을 물씬 느낀 후, 들어오기까지 우여곡절을 겪어서였을까, 막상 다 둘러보고 나니 곰팡내나는 헌책방에 들러서 그동안 찾고 있었던 절판된 책을 찾기라도 한 것 마냥 기분이 좋아졌다. 다시 돌아본 전시실을 나오는 길 문 옆에는 방명록과 함께 ‘제주 4·3 폭도를 희생자로 결정한 잘못을 시정하라는 탄원서명’이라는 이름으로 서명을 받고 있었다. 1924년생, 1934년생 등, 그리고 놀라운 것은 Suet.Amede라는 외국사람의 서명까지.

이 서명이 무슨 내용인지 알고는 했을까 싶었다. 그리고 본 전시관을 나와 건물 밖을 감싸고 있는 빛바랜 사진들을 감상했다. 아기 사슴과 같이 찍은 이승만 전 대통령의 사진 속에서, 그의 굴곡 많은 인생과 대비되는 묘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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