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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은 ‘권한 없는’ 비판가 … 비판 정신 잊지 말자”
“지식인은 ‘권한 없는’ 비판가 … 비판 정신 잊지 말자”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3.03.25 12: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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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임 후 프랑크푸르트대에서 강의하는 전태국 강원대 명예교수

전태국 강원대 명예교수(사회학과). 지난달 28일에 정년퇴임한 그는 다음달부터 독일 프랑크푸르트대에서 유교화 한국의 성장에 대해 강의할 예정이다.
퇴임 후 본격적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교수가 있다. 지난달 28일로 약 30여년 강의하던 캠퍼스를 떠나는 전태국 강원대 명예교수(사회학과·사진). 그는 다음달부터 독일 프랑크푸르트대에서 강의를 시작한다.

비판적이고 자유로운 학문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준 국가와 학교에 고맙고, 또 좌절하고 기가 죽었을 때 힘을 준 학생들에게 감사하다고 퇴임 소감을 밝힌 전 교수가 퇴임 직후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이유는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찾을 수 있다.

그는 서울대 석사과정 후 유네스코 근무 당시 방문한 독일 출장에서 <프랑크푸르트알게마이네> 신문에서 장학생을 모집한다는 정보를 접했다. 석사논문 레주메도 독일어로 쓸 정도로 유학 준비가 돼있었던 그였지만 2명의 독일 정교수의 추천 조건을 충족하기는 버거웠다. 그때 도움을 준 사람이 임석진 명지대 명예교수다.

임 명예교수는 과거 프랑크푸르트에 유학할 때 함께 공부했던 독일 친구 기센대 교수를 소개해줬고, 전 교수는 그 길로 2명 교수의 추천을 받아 장학생이 됐다. 박사학위를 마치는 4년 동안 독일학술재단(DFG)로부터 독일 교수 월급과 맞먹는 지원을 받을 정도로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프랑크푸르트대와의 인연은 계속 이어졌다. 전 교수는 지난해 여름 프랑크푸르트 공자연구소에 초청을 받아 특강을 했다. 멕켈 프랑크푸르트대 사회과학장은 그 자리에서 정년퇴임 이후 프랑크푸르트대에서 강의를 해 달라고 요청했고, 전 교수가 여기에 응하면서 이번 강의가 성사됐다.

전 교수가 사회학의 본고장 독일에서 맡은 강의는「유교와 한국의 성공」. 그는 유교의 두 가지 측면을 설명했다. 막스베버의 1915년 저작『유교와 도교』에서 자본주의 발달에 필요한 좋은 조건을 가졌던 아시아가 유교 문화 때문에 발전하지 못했다는 ‘유교테제’가 동아시아 근대화론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이론이라면, 1970년대 들어서며 오히려 유교 문화야말로 동아시아 지역의 급속한 사회발전을 가능케 했다는 유교가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는 유교를 장애요인, 촉진요인으로 바라보는 두 시선이 한국사회에서 어떻게 적용됐는지에 대해 강의할 예정이다. 권력의 엘리트층의 말로가 비참하게 점철된 경우가 한국 같은 경우는 드물다고 말하는 전 교수는 한국의 고도발달과 유교에 대한 종래 이론의 상관관계를 어떻게 풀어낼 것인지에 대해서는 그동안의 실증적 조사자료와 기존기관의 자료에 근거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강단을 떠나며 사회학계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과거 민주화 과정에서 권위주의 체제를 중지시키고 민주화시대를 앞당긴 데에서 국내 사회학이 주도적 역할을 했다고 자부하지만, 민주화 이후 다층적인 정보사회에 들어서면서 사회를 진단하고 변화를 이끄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개발해 줄 것을 후배들에게 부탁한 것이다. 당장 사회학과가 인기가 없고 졸업생이 적다는 것을 보고 위기라고 하는 협소한 시각에서 벗어나, ‘소강상태’에 빠진 사회학에 새로운 활력을 넣어달라는 주문도 덧붙였다.

교수사회에 대해서도 그는 “교수는 연구자로서 기본 자세를 놓쳐서는 안 되며 항상 비판적인 정신으로 객관적 연구를 해야 그 연구가 축적돼 한국사회가 발전하는 밑거름이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권력과 정신이 융합돼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의 유토피아다. 권력이 이성의 화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성을 희화화시키는 것이다”라는 오스트리아의 사회학자 테오도르 가이거의 말을 인용한 그는 권력의 언저리를 서성대는 교수들에게도 “지식인은 권한 없는 비판가이다. 만약 권한 있는 비판가라면 그는 지식인임을 포기하고 전문가가 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권력으로부터 곤란을 당할수도 있고, 전문가가 아니기에 위치가 불안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한없는 비판을 할 수 있는 지식인으로 남아달라는 당부다.

전 교수의 강의는 프랑크푸르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는 상반기는 독일과 미국의 대학에서 강의하고, 하반기에는 한국에서 강의하는 것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할 계획이다. 그동안 모아뒀던 권위와 권위주의에 관한 자료와 사상사에 대한 자료로 올해 2권의 책도 발간할 예정이다. 제2의 인생을 시작한 그의 분주한 발걸음이 반갑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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