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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은 효율성에 앞서 ‘반듯한 운영’이 먼저 아닌가요?”
“대학은 효율성에 앞서 ‘반듯한 운영’이 먼저 아닌가요?”
  • 김봉억 기자
  • 승인 2013.03.25 12: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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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_ 김기언 경기대 신임 총장

“30여년 동안 우리 대학은 많은 갈등과 반목 속에 유지돼 왔다. 우리는 화합하고 통합해야 한다. 화합으로 역량을 모으고 그렇게 역량이 결집됐을 때 비로소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

일시 : 2013년 3월 18일 오후 2시, 경기대 총장실
대담 : 최익현 편집국장
사진·정리: 김봉억 기자
bong@kyosu.net

지난 1일, 김기언 교수(58세, 행정학과ㆍ사진)가 경기대 제9대 총장으로 취임했다. 경기대가 8년 만에 임시이사체제를 벗어나 정이사체제로 전환(2012년 7월)한 뒤 처음 선출된 총장이다.
김 총장은 화합과 통합을 첫 과제로 꼽았다.  김 총장은 “우리 구성원들은 지난 25년간 구재단으로 인한 갈등과 반목을 겪었다”며 “정이사체제에서는 학교 발전을 위해 모두가 화합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반듯한 대학운영’이라고 했다. 김 총장 자신도 ‘반듯한 삶’을 추구한다. “총장이나 법인은 효율적인 대학운영 이전에 반드시 기본적으로 갖춰야 하는 것이 ‘반듯한 대학운영’이라고 생각한다.”
대학 총장은 CEO형ㆍ학자형 총장을 떠나서 ‘반듯한 인격’에 바탕을 두고, 훌륭한 행정가여야 한다는 것이 ‘행정학자’인 그의 생각이다. 상식적인 얘기이지만, ‘대학다운 대학’을 만들어 보고 싶다고 했다.
 

김기언 경기대 총장은 1955년생으로 연세대 경영학과를 나와 같은 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와 박사를 했다. 재무행정을 전공했다. 경기대 행정대학원장ㆍ총무처장ㆍ기획처장ㆍ제3대 교수회장, 한국지방공기업학회 회장 등을 지냈다. 저서로 『한국교육정책과 예산』『지방재정학』 등이 있다.
김 총장은 요즘 1시간 덜 자고, 1시간 더 걷자고 다짐한다. 생각해야 할 때 걷고, 몸이 힘들 때도 걷는다. “뛰는 것도 매력이 있지만, 걸으면 생각이 난다. 여러 가지 생각이 정리가 된다. 오늘 아침에도 5시에 일어나 1시간 걷고 학교에 나왔다.”
△내부적인 어려움 때문에 다른 대학은 달려갈 때 경기대는 소극적이었다고 했다. 경기대를 어떻게 이끌고 싶은가.

△내부적인 어려움 때문에 다른 대학은 달려갈 때 경기대는 소극적이었다고 했다. 경기대를 어떻게 이끌고 싶은가. “제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반듯한 대학운영’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든지 대학운영은 바르게 해야 한다. 개인의 삶이 ‘바른 것’을 추구하는 가치관이 있듯이 대학운영도 바르게 해야 한다. 대학들이 어려운 여건에 놓이면서 경영마인드를 강조하지만, 총장이나 법인은 효율적인 대학운영 이전에 반드시 기본적으로 갖춰야 하는 것이 반듯한 대학운영이다.

 

저는 ‘반듯한 대학운영’을 제1의 행동지침으로 삼고자 한다. 저의 희망이라면 누구나 쉽게 얘기는 하지만 ‘대학다운 대학’이어야 한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이런 상식적인 얘기가 제대로 돼 있지 않은 것이 오늘의 ‘한국대학’일지도 모른다. 대학다운 대학이 뭔가? 교수는 열심히 연구하고 교육하고, 학생은 그런 교수 밑에서 열심히 공부해 한국과 세계가 원하는 그런 인재로 성장해야 한다. 직원은 가르치고 배우는데 불편이 없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이 세 가지 일은 당연한 일이지만, 아직은 부족한 상태라고 생각한다. 그런 기본적인 대학의 모습을 만들어 가겠다.”

△앞으로 가장 중점적으로 추진해 나갈 역점사업은 무엇인가.
“제 임기 중에 추진하려고 하는 것은 크게 세 가지다. 우선은 옳건 그르건 짧게는 10년, 조금 더 길게는 25~30년 동안 우리 대학은 많은 갈등과 반목 속에 유지돼 왔다. 이제는 그렇게 갈 수도 없고, 그렇게 가서도 안 된다. 우리는 화합하고 통합해야 한다. 화합과 통합으로 역량을 모으고 그렇게 역량이 결집됐을 때 비로소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

첫 째는 무조건 반목을 줄이고 서로 이해하고, 또 서로 위로하자. 그동안 반목했던 상황들은 학교발전을 위한 것이었다. 이제는 서로 이해하고 위로하면서 화합하자. 그러기 위해서는 말로만 화합은 되지 않는다. 만나야 한다. 반대쪽에 서서 크게 싸움을 벌였던 사람일수록 제가 만날 것이다. 이미 만남을 시작했다. ‘이렇게 반목하면서 경기대가 갈 수 있겠느냐, 그렇게 하면 안 되겠지요, 우리 힘을 합칩시다’ 이렇게 말씀드리고 같이 가자고 했다. 그쪽에서도 좋다고 했다.

이런 분위기로 전환되면서 두 번째로 대학 구조조정을 해나갈 것이다. 세 번째는 재정확충이다. 그동안 총동문회와 대학본부간에 유기적이고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지 못했다. 과거 비정상적인 대학운영이 낳은 씨앗이다. 총동문회와 새로운 방향으로 마음을 모으기로 했다. 취업률 향상을 위해 총동문회도 지원하기로 했고, 소액 발전기금 ‘1인 1구좌’운동을 벌이기로 했다.

사실, 그동안 내부적으로 안정이 안 돼 있었기 때문에 경기대는 밖으로 뛰지를 못했다. 이제는 정이사체제가 됐고, 총장도 정이사체제에서 선출이 됐기 때문에 저희도 당당하게 지역사회와 기업에 학교 현황을 설명하고 학교를 어떻게 이끌어 나가겠다는 의지도 설명을 드리겠다. 경기도와 수원시와의 관계도 긴밀하게 개선해 나가겠다.”

△학령인구가 줄고 있고 대학 안팎의 도전이 거센데 총장도 구조조정을 강조했다.
“경기대는 30여 년간 대학여건 변화에 적극 대응하지 못했다. 우리 대학은 학부생 1만5천500명, 대학원생 2천명 등 재학생이 1만7천명이다. 비슷한 규모의 대학보다 구조적으로 군데군데 군살이 박혀 있다. 대학운영도 느슨하게 늘어져 있었다. 이 두 가지가 맞물려 있다.

구조적인 군살은 제거하고 느슨한 운영은 팽팽히 당길 것이다. 우선 구조조정은 한 학과나 두 개 학과로 구성된 소규모 단과대학은 통합돼야 한다. 두 번째는 유사한 특수대학원이 중복 개설돼 있다. 이게 비효율을 초래한다. 이런 것도 통합하겠다. 그 다음에 이미 단과대학과 특수대학원은 없어 졌는데, 인원 배치를 해당 학과에 하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대학원에 배치시키고 있는 곳도 개선돼야 한다.

핵심적인 구조조정의 내용은 서울캠퍼스와 수원캠퍼스의 유사학과 통합이다. 수원캠퍼스에 있는 유사학과도 통합돼야 한다. 서울캠퍼스는 경쟁력 있는 단과대학으로 특성화해야 한다. 일부 진행된 곳이 관광대학이다.

제가 경험한 바로는 구조조정은 첫째, 학교가 진정성을 갖고 추진해야 한다. 진심으로 현안을 설명하고 데이터를 갖고 필요성을 보완해 줘야 한다. 구조조정 기준은 편파적이지 않아야 한다. 누가 봐도 사적인 견해가 들어갔다고 보지 않도록 불편부당한 기준에 입각해 시도해야 한다. 끊임없이 대화하고 설득하고 회합, 설명, 공청회를 열어야 한다. 이런 일은 아마 수십 차례는 있어야 할 것이다. 일방적인 구조조정은 안 된다. 그래서 엄청난 각오와 인내심이 필요하다.

경기대 교수와 직원들은 그동안 우리들 끼리 얘기로 ‘편하다’라는 말을 해온 게 사실이다. 그래서 교수들은 연구도 더 해야 하고, 학교에 더 자주 나와야 하고 강의도 더 열심히 가르쳐야 한다. 심지어 학기 중에는 해외 출장도 많이 나가지 말자고 여러 주문을 하고 있다. 직원들도 근무 평정에 따라 이번에 처음으로 팀장 보직을 떼인 사람도 있다. 앞으로 더 팽팽히 당겨야 한다. 지금까지의 근무평가 방식도 바꾸는 등 여러 조치를 취할 것이다.”

△구조조정을 통해 경기대를 어떤 대학으로 키우고 싶은가.

△구조조정을 통해 경기대를 어떤 대학으로 키우고 싶은가.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 평가를 위한 지표를 놓고 보면, 사실 국ㆍ사립대를 포함해 30위 보다 지표가 훨씬 낮더라. 우리 대학은 좋은 입지와 훌륭한 인적자원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이런 지표 때문에 허덕이는 상황이 안타깝다. 아무것도 못하고 지표 관리에 몰두하고 어떻게 하면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에 안 걸릴까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 이게 현실이다. 중장기적으로는 평가 지표를 염려해 대학운영을 걱정하지 않는 대학을 만들고 싶다.

 

두 번째는 적어도 경기대를 졸업한 사람들의 특징은 ‘믿고 쓸 만한’ 사람이라는 평판을 듣게 하는 것이다. 잔꾀를 부리지 않고 성실히 일하며 배반하지 않고 믿고 쓸 수 있는 사람. 이런 사람을 양성하는 게 우리가 가야할 길이 아닌가 싶다. 우리 학생들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친구들이다.

2년 뒷면 대학 인근에 지하철 신분당선이 들어온다. 접근성이 좋아지는 것이다. 강남역까지 26분이면 갈 수 있다고 한다. 이보다 더 좋은 입지를 가진 대학이 어디 있나. 대학순위를 따지기 전에 우리 대학의 규모에 걸맞은 위상을 만들고 싶다.”

△위기를 극복해야 하는 시점에 총장을 맡게 됐다. 여러 보직도 거쳤는데 바람직한 총장상이라면.
“앞서 대학운영에 대해 ‘바름’을 강조했다. 대학이 어렵다고들 하니까, 대학이 총장을 볼 때 ‘경영자적인’ 것을 너무 강조하는 것 같다. 대학 총장은 경영능력을 갖춘 사람이 돼야 한다, 학자적인 총장은 요즘 세상에 맞지 않는다, 이런 말을 많이 한다. 저의 대학 재직 경험과 제 삶의 지침으로 볼 때는 대학 총장은 경영자다, 학자다 이걸 떠나서 아주 반듯한 인격체여야 한다. 바른 인격에 바탕을 두고 훌륭한 행정가여야 한다. 행정가는 경영자와 차이가 있다. 경영은 적게 들여서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지만, 행정은 그게 아니다. 학교 행정은 제한된 자원 안에서 학생들의 만족감을 높이는 것이다. 유능한 행정가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학자적 스타일의 총장이 능사는 아니다. 지금 세상은 ‘학자’ 역량만으로는 대학을 경영하기 어렵다. 우리대학만 해도 재학생이 1만7천명, 전임교수만 500여명, 강사까지 합하면 1천명이 있다. 직원도 정규직만 240여명 계약직까지 하면 500명 정도가 된다. 관련 구성원이 엄청나다. 학문적인 깊이만 따져 대학총장이 돼야 한다고 하는 것도 어울리지 않는다. 유능한 행정가 스타일의 총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반드시 바름, 반듯함, 정의로움이 바탕이 돼야 한다. 세상에 정의가 없이 무슨 효율이 있겠나.”

△진정한 대학경쟁력이란 무엇일까.

“대학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 대학경쟁력을 얘기하자면, 한국의 대학경쟁력은 언론에서 발표하거나 영어권 위주의 평가 방식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특히 인문사회계열에서 영어로 논문을 써서 외국대학과 경쟁을 하라니. 스위스 IMD 같은 곳에서 대학경쟁력과 정부경쟁력이 이렇다 저렇다 얘길 한다. 이건 아니다. 언론에서도 대학이 호위호식하면서 노력하지 않는다고 지적을 한다. 대학의 본질과는 거리가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대학경쟁력을 어떻게 높일 수 있을까. 창의적인 사람을 길러내는 것이 대학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기업에서 필요한 사람이 대학에서 갖춰야 할 자질과 미스 매치되니까 신입사원 교육에 1인당 6천만 원이 든다고 기업은 말한다. 그런데 당연한 일 아닌가? 그게 아니라면 대학 전체를 경영학과로 만들어야 하나? 그렇다면 인문학을 싹 없애야 하나. 이건 대학을 때리는 얘기다.”

△새 정부는 대학평가부터 바꾸겠다고 했는데 어떻게 개선해야 할까.
“대학평가에서도 연구논문 실적을 주로 평가하는데, 인문사회 분야에선 SCI논문을 강조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인문사회 분야의 SCI 논문이 얼마나 창의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가? 논문의 질을 보장할 수 있나? 공허한 내용이 많지 않던가? 이런 게 대학경쟁력을 높이는 게 아니다. 영어강의 비율도 외국 유학생들이 많이 오니까 어느 정도 높일 필요가 있겠지만, 100% 영어강의로 하라고 하는 건 난센스다.

취업 문제도 그렇다. 교수들이 노력해서 학생들이 사회에 진출해 일할 수 있게 해야지, 교수들의 기업 인사담당자를 쫒아 다녀야 한다. 이게 대학 맞나? 오늘 교무회의에서도 1교수 1취업을 강조하고 왔다. 하지만 이건 아니지 않나. 일자리 늘리는 것은 국가와 기업이 할 일이다. 왜 대학이 일자리를 책임져야 하나. 취업률 높이려고 갖은 편법을 많이 쓰는데 이게 무슨 짓인가? 대학이 제정신이 아니다. 3~5월은 완전 취업 모드다. 이건 개선돼야 한다.

대학평가는 전체 대학을 하나의 잣대로 평가하는 것이 문제다. 교수 7명이 있는 신학대학이나 2~3천명이 있는 종합대학을 하나의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무리다. 대학도 반성할 것은 있다. 너무 안주해 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목표가 교수를 달달 볶는 것이라면 소기의 성과가 나왔을 텐데 분발심을 높이고 긴장도는 높였지만, 과연 성과가 좋아졌나? 대학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획일화다. 획일화는 창의성의 절대적 부정 요인이다. 자유로움속에서 창의가 나온다. 우리가 분발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다. 이런 식의 평가는 오히려 발전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8년 만에 정이사체제로 전환한 경기대
구성원 의사 존중해 정이사 구성

경기대는 지난 2004년 임시이사가 선임됐다가 8년만인 지난해 7월, 정이사체제로 전환됐다. 정이사 비율은 종전이사측에 4명, 학내 구성원 2명, 교육부에 1명의 추천으로 구성됐다. 종전이사 측 1명은 임시이사로 선임했다. 교육부 추천으로 정이사를 맡은 박승철 성균관대 교수가 이사장으로 있다.

학교법인 경기학원은 지난 달 21일, 김기언 교수(행정학과)를 경기대 제9대 총장으로 선출했다. 임시이사체제에서 정이사체제로 전환한 뒤 첫 총장으로 선출이 된 것이다. 김 총장은 “임시이사체제 8년 만에 구성원들의 의사가 존중되는 방향으로 정이사가 구성됐다”며 “경기대의 큰 전환일 뿐 아니라 대한민국 사학에 있어서도 정의로운 대학운영이라는 측면에서 아주 큰 시사점을 주는 사건”이라고 말했다.

김 총장은 한국의 사학 역사에서 경기대는 중요한 표본이 된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사립대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특별한 재정적 기여도 없이 구성원들에게 정상적인 방식으로 의사표시도 못하게 하고 구성원들 위에서 군림하는 그런 대학운영에 대해 하나의 경종을 울렸다. 이런 측면에서도 경기대는 대단히 의미 있는 첫 걸음을 내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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