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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적 감정기억 극복하면 이해와 우호의 동아시아 공동체 가능”
“부정적 감정기억 극복하면 이해와 우호의 동아시아 공동체 가능”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3.03.25 12: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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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해외석학강좌 잇따라 초청받은 쑨거 중국사회과학원 교수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단장 김성민 철학, 이하 통일연구단)은 지난 21일 쑨거(孫歌) 중국 사회과학원 교수를 초청해 ‘동아시아 공동체와 한반도 문제’를 주제로 ‘석학초청강연회’를 개최했다. 쑨거 교수의 본래 전공은 중국문학이다. 2000년 이전까지는 비교문학을 연구했고, 2000년 이후부터는 분과학문의 벽을 넘어 일본에서 정치사상사를 연구하며 동시에 현실사회의 문제를 주요 연구과제로 삼아온 학자다. 중국에서 동아시아 단위의 상태에 대해 가장 먼저 의견을 개진하기도 했던 쑨거 교수는, 이번 통일연구단 초청 석학강좌에서 인문학적 관점에서 본 동아시아와 한반도 문제에 대해 이야기했다.

인문학적 관점에서 본 동아시아와 한반도

쑨거 교수는“적대적 갈등이 해결되지 않으면 과연 동아시아를 하나로 볼 수 있는가? 동아시아를 하나로 만들 수 있는 매개체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역사적으로는 유학이 그런 역할을 해왔지만, 지금 이 모델은 현실에 맞지 않는 형식적인 서사에 불과하다”라고 대답하며 긴장과 충돌이 계속되는 오늘날 동아시아의 근본적인 현상에 주목했다. 동북아시아의 역사가 협력관계가 아닌 ‘대립’과 ‘저항’관계 속에 얽혀 있었고, 동북아 지역에서 매개체가 된 것은 이해와 우호가 아닌 저항과 적대 관계였음을 지적한 쑨거 교수는 이 저항관계의 가장 극단적인 예로‘전쟁에 관한 기억’을 예로 들었다. 그는 “동아시아 각 지역의 감정기억(특히 전쟁기억)은 서로 다르고, 다른 지역과 소통하지 않고 있다. 동아시아 사회는 사회마다 역사·사상·문화가 다르지만 공통성이 있다”라며 “우리는 지금 ‘아시아의 고뇌’를 담은 ‘아시아 서사 혹은 동아시아 서사’라는 역사적 시각을 갖고 서구가 보편적인 서사로 강조해온 서사를 극복하고 지역적인 서사를 만들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서사를 통해 부정적인 감정기억(전쟁기억)을 극복하고 이해와 우호의 동아시아 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쑨거 교수는 건국대 석학초청강연에 앞서 지난 6일부터 연세대 국학연구원(원장 백영서 사학, 이하 국학연구원)에서‘방법으로서의 중국-사상사 연구의 인식론 문제’를 주제로 해외석학초청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다. 매주 수요일에 진행되는 국학연구원 석학초청세미나는 오는 27일 중일, 한중 관계에대한 강연을 끝으로 총 4회 세미나 일정을 마친다.

중국과 일본에 관한 문제들을 집중 연구해온 쑨거 교수가 잇달아 한국에서 석학강좌에 초청된 것은 백영서 국학연구원장과의 인연이 깊다. 2008년 국학연구원HK연구단이 발족하며 어젠다로 삼은 ‘사회인문학’은 단순한‘사회’와‘인문’의 합이 아니라 인문학의 사회성을 회복함으로써 인문학 본연의 ‘통합인문학(humanities as a comprehensive discipline)’적 성격을 회복하자는 연구주제다.

사회인문학에 대한 조언을 듣기에는 스스로 분과학문의 벽을 넘고 국가와 지역을 넘어서는 연구를 해 온 쑨꺼 교수가 적임자였기 때문에 백 원장은 지난 2010년 7월에 쑨거 교수를 초청해‘사회인문학의 과제와 곤경’을 주제로 강연을 요청했고, 사회인문학의 방향설정 및 제반 문제에 대해 대담을 나눈 적이 있다. 2011년에도 쑨거 교수는 국학연구원 국제학술대회에 초청돼「다케우치 요시미와 마루야마 마사오」로 발표를 했다.

쑨거 교수의 이번 한국 방문은 약 한 달간의 일정이다. 백 원장은 중국문학과 비교문학을 거쳐, 일본정치사상, 중일관계 등을 연구한 쑨거 교수의 다음 연구과제가 한국이기 때문에 짧은 일정으로는 한국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어려울 것 같다는 쑨거 교수의 요청으로 긴 한국체류가 이뤄졌다고 말했다.

문학에서 타 영역으로 연구를 전환한 동기에 대해 쑨거 교수는“당시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중국의 극렬한 변화를 겪으며 동시대사를 이해하고 싶었다”라며 “사회 변화를 제대로 인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효과적인 도구를 찾기 위해서. 자본주의, 글로벌화라는 단선적인 결론보다는 보다 효과적인 인식론을 찾기 위해 다른 학과 학문 공부 시작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 과정으로 쑨거 교수는 지식에 대해 자문하기 시작했다. 일반적 통념상 지식은 고정화될 수 있는 기성품, 사상은 유동적인 정신활동으로 간주하는데 반해, 그는 정말 효과적이고 생명력 있는 사상활동은 동시에 지식을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울타리만 넘나드는 학제간 교류가 아닌 진정한 인문학과 사회학의 만남을 실천했던 그의 연구성과가 사회인문학을 주창하는 국학연구원의 고민과 맞아 떨어진 것. 그리고 그 만남은 이번 석학초청세미나로 이어지고 있다.

해외석학초청강좌 기대 효과는?

해외석학이 한 국내 대학에 초청되면 여타 대학에서도 석학강좌를 만들어 초청하는 것은 학계에 흔히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일례로『라틴 아메리카, 만들어진 대륙』의 저자이자 서구중심주의에서 비롯된 ‘식민성’문제를 깊이 연구해 온 아르헨티나의 기호학자 월터 미뇰로는 2010년 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소장 김창민 서어서문학)에서‘인식적 불복종과 탈식민적 선택’을,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소장 김동철 사학)에서‘세계시민주의적 로컬리즘’을 주제로 특별 강연을 펼쳤다. 국민의 세금에서 나온 연구비로 진행하는 해외석학강좌는 어떤 기대효과가 있을까. 단순히 외국의 사례와 시각을 수신하는 것에 그칠 것이 아니라 국내 연구의 발신도 겸해야 더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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