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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학술원 선정도서 둘러싼 잡음 무엇 때문일까
[이슈] 학술원 선정도서 둘러싼 잡음 무엇 때문일까
  • 전미영 기자
  • 승인 2002.08.3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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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8-31 14:51:32
대한민국 학술원이 올해 처음 시작한 ‘우수학술도서’ 선정 작업이 도마 위에 올랐다. 학술원은 지난 7월 말, 1999년 1월1일부터 2001년 12월31일까지 2년 동안 출간된 국내도서 가운데서 뽑은 3백73종의 우수학술도서를 발표했다. 인문학 1백56종, 사회과학 84종, 사회과학의 인문학적 연구 25종, 자연과학의 인문학적 연구 14종, 한국학 47종, 기초과학 47종에서 우수도서를 뽑은 이번 사업이 ‘공정성’과 ‘형평성’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심사위원, 선정도서 특정대학 편향

교육인적자원부가 예산을 지원하고 학술원이 집행하는 이 사업에서, 학술원은 48억원을 지원받았다. 선정된 책은 학술원이 지원 받은 예산으로 1천만원∼2천만원어치씩 사들여 대학도서관과 공공도서관 등에 배포하기 때문에, 형편이 어려운 인문 학술 출판사들에는 관심이 갈 수밖에 없는 사업이다. 그런데 학술도서선정 작업이 끝난 뒤 심사위원 선정 경위, 특정 출판사 편중, 수준 미달 도서 선정 등의 논란이 일었다. 무엇보다도 특정 출판사의 책이 대량으로 뽑힌 사실에 대해 출판사들은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선정대상 6개 분야를 통틀어 가장 많이 뽑힌 출판사는 서울대학교출판부로, 모두 28종이 뽑혀서 3억∼5억의 지원을 받게 됐다.

이번 선정의 심사위원은 심사위원장 김태길 학술원 회원을 비롯해서 고병익, 김창환, 변형윤, 차주환 회원 등 학술원 회원 24명과 권영명 서울대 교수(생명과학부)를 비롯해서 대학교수 51명, 정신문화연구원 2명, 국사편찬위원회 1명 등 모두 79명으로 구성됐다.

그 중 서울대는 김신일 교수(교육학과), 민경환 교수(심리학과), 이익섭 교수(국어국문학과) 등 모두 8명이나 되고 그 뒤를 성균관대 5명, 고려대 4명, 경희대, 서울시립대, 한양대가 3명, 서강대, 연세대, 이화여대, 전남대, 홍익대가 각각 2명씩, 경북대를 비롯해 15개 대학에 각각 1명씩의 심사위원을 두고 있다. 특히 군산대, 부산대, 순천향대, 제주대, 한남대 등 지방대학들에는 심사위원이 1명씩밖에 없어서 형평성 논란이 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학술원 회원들도 4명을 뺀 20명이 서울대 출신이어서 특정 학맥이 작용했다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

발표가 난 뒤 학술원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선정 기준과 심사 기준을 묻는 질문들이 올라왔다. “나는 역사학도이기 때문에 모든 책을 평가할 능력이 없습니다만, 역사 서적에 국한하여 말씀드리면, 훌륭한 학술 서적은 누락되고, (몇몇 서적을 제외하면) 2류급의 책들이 채택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럴 수가 있습니까! 명예로운 학술원에서 이렇게 불명예스러운 선정을 할 수가 있습니까? 선정목록에 있는 것보다 많은 우수한 기초학술 분야의 책명을 대라면 대겠습니다. 어떠한 분이 어떠한 기준으로 어떠한 책을 선정했는지, 선정되지 못한 책은 어떠한 이유에서 제외됐는지, 한 출판사에서 도대체 몇 종까지 선정될 수 있는지, 몇 종을 냈길래 10종 이상씩 몰아치기로 선정이 됐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등등의 의견들이 올라왔다.

‘취향’ 아닌 객관적 판단 기준 마련해야

학술원은 일부 출판사들의 ‘독식’ 의혹에 대해 “우수 학술도서를 많이 응모한 일부 출판사의 책이 많이 선정되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정문권 학술원 사무관은 “심사위원, 저자와 출판사 등 선정과 관련된 모든 대상이 열려있기 때문에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다. 애초에 ‘우수도서’를 뽑는다는 취지에는 한 출판사에서 몇 종을 제한한다거나 하는 제한이 없었다. 아마도 그런 제한이 없다는 사실을 공표하지 않았기 때문에, 선정되지 못한 출판사에서 불만을 제기하는 듯 하다”라고 밝혔다.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한 교수는 이번 선정 작업에서 잡음이 일고 있는 것에 대해 “조직적인 잘못보다는 심사위원 개개인의 판단 때문에 잡음이 일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심사위원을 뽑을 때의 원칙은 학술원 회원 반, 외부인 반이었고, 도서 선정의 원칙은 학술원 회원이나 심사위원이 쓴 책은 무조건 떨어뜨리는 것이었다”라고 밝혔다. “지원한 출판사의 책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자체조사라고 할 수 없다”라고 전제한 뒤 몇몇 출판사의 책이 몰려서 선정된 이유에 대해서는 “다른 학자의 의견에 이견을 달지 못하는 학계의 분위기 때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사람이 몇 권씩 추천하는 방식이었는데, 교수와 학자들을 한데 모아놓으면 대체로 다른 사람의 의견에 이견을 달지 못한다. 가령 전혀 말도 안 되는 책을 추천한다 해도, 그 자리에서 동료 학자에게 이의를 제기할 수 있겠는가. 불합리한 면이 있지만, 다른 방법은 없는 듯 하다”라고 밝혔다.

최석만 전남대 교수(경제학과) 또한 심사의 가장 큰 기준은 “심사위원의 판단”이라고 밝혔다. “번역서는 빼는 등의 최소한의 기준이 있기는 했지만 형식적인 조건이었고, 결국 최종 판단은 심사위원이 내렸다”는 것. 논란이 되고 있는 특정 출판사 편중에 대해서 최 교수는 “특정 대학의 편중 문제는 특별히 고려하지 않았다. 서울대출판부에서 워낙 책을 많이 지원해서 가능성이 높아진 것 아니겠느냐”라고 밝혔다.

애당초 특정 출판사나 특정 대학에 편중될 것에 대한 염려나 고려가 없었고, 그렇기 때문에 의혹을 살수밖에 없었던 구조인 것이다.

학술원은 우수학술도서 사업에 의욕을 가지고 준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학술원의 바람대로 매해 사업을 진행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공정하고 합리적인 심사구조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에 귀기울여야 할 것이다.

전미영 기자 neruda73@kyosu.net

우수학술도서 심사위원 명단

김태길(심사위원장, 학술원 회원), 고병익(학술원 회원), 곽수일(학술원 회원) 권영명(서울대 교수), 김규영(학술원 회원), 김규원(경북대 교수), 김동수(서울시립대 교수), 김상배(서울시립대 교수), 김수자(경희대 교수), 김신일(서울대 교수), 김영작(국민대 교수), 김영정(전북대 교수), 김용복(광운대 교수), 김우창(고려대 교수), 김운태(학술원 회원), 김진엽(홍익대 교수), 김진영(경희대 교수), 김창환(학술원 회원), 김학성(성균관대 교수), 김현구(성균관대 교수), 김현자(이화여대 교수), 노재식(학술원 회원), 류보선(군산대 교수), 류승국(학술원 회원), 문국진(학술원 회원), 문희수(연세대 교수), 민경현(고려대 교수), 민경환(서울대 교수), 민병수(서울대 명예교수), 민형원(덕성여대 교수), 박광서(서강대 교수), 박길준(연세대 교수), 박성래(한국외국어대 교수), 박세희(학술원 회원), 박수혁(서울시립대 교수), 박영식(학술원 회원), 박영은(정신문화연구원 교수), 변형윤(학술원 회원), 성기주(동덕여대 교수), 손주찬(학술원 회원), 신길순(경원대 교수), 심정자(한남대 교수), 안윤옥(서울대 교수), 안호용(고려대 교수), 양광민(중앙대 교수), 염흥렬(순천향대 교수), 유세경(이화여대 교수), 윤무병(학술원 회원), 이기동(동국대 교수), 이기문(학술원 회원), 이기백(학술원 회원), 이대근(성균관대 교수), 이동준(성균관대 교수), 이두현(학술원 회원), 이성무(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이승곤(경희대 교수), 이익섭(서울대 교수), 이종묵(정신문화연구원 교수), 이좌용(성균관대 교수), 임희섭(학술원 회원), 장사선(홍익대 교수), 전성우(한양대 교수), 전윤식(부산대 교수), 전인영(서울대 교수), 정명환(학술원 회원), 정병철(전남대 교수), 정봉영(고려대 교수), 정요일(서강대 교수), 정진곤(한양대 교수), 정진홍(학술원 회원), 조대경(학술원 회원), 조성윤(제주대 교수), 주진순(학술원 회원), 차기벽(학술원 회원), 차주환(학술원 회원), 최래옥(한양대 교수), 최석만(전남대 교수), 최태영(숭실대 교수), 허수열(충남대 교수)
서울대출판부 선정도서 28종

한국현대의 유교문화(금장태), 미학의 중심(김문환), 교우론·스물다섯 마디 잠언·기인십편-연구와 번역(마테오 리치/송영배 역주), 중국문학사론(김학주), 한국 현대문학사상 논구(조남현), 한국현대시인연구 상·하(김용직), 중국당대문학사조사연구 1949∼1993(김시준), 한국현대문학비평사론(김윤식), 한자자의론(漢字字義論)(이영주), 한국의 역학(강신항), 21세기 한국사회의 안과 밖-세계체제에서 시민사회까지(임현진), 외국인 노동자와 한국사회(설동훈), 월남민의 생활 경험과 정체성-밑으로부터의 월남민 연구(김귀옥), 일본의 도시사회(이시재) 외, 북한경제의 구조-경제개발과 침체의 메커니즘(양문수), 근·현대 한일관계와 재일동포(강덕상 외), 갑오개혁과 독립협회운동의 사회사(신용하), 한국천문학사(나일성), 고려시대의 국가와 지방사회-’본관제’의 시행과 지방지배질서(채웅석), 고려시기 재정운영과 조세제도(박종진), 성학십도와 퇴계철학의 구조(금장태), 한국의 명문 종가(이순형), 한말의 서양정치학 수용 연구-유길준·안국선·이승만을 중심으로(김학준), 서포 김만중의 생애와 문학(김병국 외), 조선시대 간행 중국문학 관계서 연구(김학주), 카오스와 비선형동역학(문희태), 한국의 갯벌-환경, 생물 그리고 인간(고철환 엮음), 한국의 제4기 환경(박용안 외) 철학과 현실사 선정도서 14종

플라톤의 변증법(송영진), 전통·근대·탈근대의 철학적 조명(길희성), 에리히 프롬과의 대화(박찬국), 존재와 진리-칸트 순수이성비판의 근본문제(백종현), 서양근대철학(백종현), 프래그머티즘의 길잡이(루이스 메난드/김동식 외 옮김), 칸트의 인식론(김정주), 개념 논리학(윤병태), 현대철학 특강(엄정식 외), 한국인을 위한 윤리와 논리(김영진), 토론수업을 위한 응용윤리학(바루흐브로디/황경식 옮김), 윤리학의 다섯가지 유형-스피노자, 버틀러, 흄, 칸트, 시즈위크(C. D. 브로드/박찬구 옮김), 철학적 윤리학(한스 라이너/이석호 옮김), 칼 포퍼 과학철학의 이해(박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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