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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글픈 ‘지방의 운명’을 가르친다
서글픈 ‘지방의 운명’을 가르친다
  • 노대환 동양대
  • 승인 2002.08.3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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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강의시간
노대환
동양대·교양학부

갑작스레 마음이 불안하고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을 보니 개강이 다가오긴 다가온 것 같다. 그래서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 못한다고 했던가. 강의가 있다는 사실 자체에 감격해 개강 날짜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시간강사 시절이 엊그제인데 벌써부터 배부른 소리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변명거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교수라는 직함을 달고 나니 무엇보다 수업에 대한 부담감이 커졌다. 업적평가니 연봉제니 하는 회피할 수 없는 조류가 주는 부담감은 그래도 견딜만하다. 그보다 더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 것은 빠져나가는 학생은 많고 학생을 유치하기는 어려운 지방 대학의 서글픈 현실이다. 그런데 혹시 나의 부실한 강의가 상황을 어렵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간혹 내 수업을 들은 학생 가운데 학교를 떠나기로 결심한 학생이라도 있으면 내가 그의 결심을 도운 것이 아닌가 하는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다. 그 때문에 한 명의 학생이라도 학교에 붙들어 놓기 위해 최상의 강의를 제공해야 한다는 시덥잖은 의무감을 스스로에게 부여하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부터 강의가 꽤 부담스러운 일이 되어 버렸다. 어쨋든 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이제 내게 연구보다는 교육이 훨씬 더 중요한 임무가 되었다. 뾰족한 성과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의 문제가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한국사를 가르치고 있으니 무엇보다도 올바른 역사인식을 심어주는 데 주력해야 하겠지만 나는 다른 목표 하나를 가지고 있다. 지방에 관심과 애정을 가진 학생을 키우는 것이 그것이다. 지방 대학을 다닌 학생들이 지방을 외면해서야 말이 안 되겠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나는 최소한 내 수업을 들은 학생만큼은 그렇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강의에 임한다.

그러면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나는 지역에 대한 애정이 나와 내 주변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학생들의 첫 리포트 과제로 항상 ‘나와 내 가족의 역사’라는 주제로 첫 리포트를 작성하도록 주문한다. 그리고 나서는 나와 내 가족에 대한 관심이 지역에 대한 관심으로 확산될 수 있도록 유도한다. 그런 목적을 달성하는 데 답사만큼 유용한 것도 없다.

기껏해야 지하철을 타기 위해 길어야 2, 3분 정도나 기다려 보았을 법한 서울 출신 학생들은 한참 만에야 오는 목적지행 버스를 기다리기 시작하면서부터 지방민으로 사는 불편함과 수시로 마주하게 된다. 이름난 관광명소에 밀려 퇴락할 대로 퇴락해버린 많은 유적들은 지방의 슬픈 자화상에 다름 아님도 어렴풋하게 나마 깨닫게 된다. 뙤약볕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촌로의 안쓰러운 모습조차도 대물림되는 농촌의 가난이 정당한 것이 아님을 일깨워주는 데 더 없이 값진 자료이다. 자연은 그들의 강의실이며 그런 점에서 보면 좁은 강의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서울 학생들에 비해 행복한 편이다.

목적의식으로 가득 찬 강의를 진행하면서 가끔씩 다양한 교양 지식을 섭렵해야 할 학생들에게 못할 짓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미안함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어쩌랴, 지방의 운명은 그들의 양어깨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는 것을.

이번호부터는 ‘나의강의시간’ 꼭지를 새롭게 선보입니다.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늘 고민하는 교수님들의 생생한 목소리가 2주에 한번씩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나만의 강의 노하우와, 학생을 맞닥뜨리는 특별한 경험을 함께 나누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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