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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STS가 시사하는 것
일본 STS가 시사하는 것
  • 송상용 한림대 명예교수·과학사/과학철학
  • 승인 2013.03.18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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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지마 히데토 교수의 『사회속의 과학』을 보고

나는 1965년 12월 인도에 가는 길에 처음으로 일본 땅을 밟았다. 한일 국교가 열린 직후였다. 1967, 1969년 미국에 가고 오면서 다시 일본에 들렀다. 일본이 목적지였던 것은 1974년 도쿄, 교토에서 열린 국제과학사회의가 첫 번째였다. 그때 이후 70번 쯤 일본에 갔다. 대부분 학회 때문에 갔지만 여행만 즐긴 것도 여러 번이었다.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다. 관광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사람을 만나는 재미다. 나카지마 히데토는 나이로는 아들뻘이나 끈끈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는 젊은 친구다.

한국과학사학회는 1960년에 태어났다. 일본과학사학회가 1941년, 중국과학기술사학회가 1980년에 출발했으니까 한국은 중간인 셈이다. 나는 학회 창립회원이었고 1972년부터 20년 동안 간사를 맡았다. 50년대에 시작된 과학사 교류는 80년대부터는 서울과 교토를 오고 간 한일과학사 세미나로 발전했다. 2000년 이후에는 STS(과학기술학/과학기술사회론)에서 긴밀한 협력이 이뤄지고 있다.

나는 40년 동안 일본의 과학사학자들과 폭 넓은 교류를 했다. 이미 고인이 된 야부우치, 와다나베, 요시다와 원로 나카야마, 야마다 등은 그 대표라 할 수 있다. 1993년 도쿄의 학회에서 도쿄대 조수 나카지마를 처음 만났다. 19세기 일본의 서양기술 도입에 관한 그의 발표는 너무 좋았다. 4년 뒤 내가 대전에서 ‘과학기술과 문화’에 관한 국제회의를 조직했을 때 나카지마를 초청했다. 그는 그때 도쿄공대 준교수였는데 과학사학회장 (미국), 독일과학사학회장, 일본과학철학회장과 함께였으니 파격이었다.

나카지마는 도쿄대에서 과학사 · 과학철학을 전공했고 런던대 임피리얼 컬리지에서 연구한 뒤 후크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가 쓴 『로버트 후크, 뉴튼에 가려진 남자』는  오사라기 상을, 『일본의 과학/기술은 어디로 가는가』는 산토리 상을 받았다. 그는 과학기술사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80년대 이후 활기를 띤 STS 운동을 이끌었다. 현재 그는 도쿄공대 교수로서 방송대학과 유엔대학 객원교수를 겸하고 있으며 일본과학기술사회론학회 회장이다.

관심이 비슷한 우리는 4S(과학기술사회연구학회, 미국), EASST(유럽과학기술학회) 회의에서 자주 만났다. 우리는 뉴요크에서 9.11 테러가 일어난 직후 MIT의 4S 학회에서 공동발표를 할 예정이었다. 일본대표단이 회의를 보이콧하자 나는 호텔 예약금 5백 달러를 포기하고 미국행을 단념해야 했다. 2000년에 나카지마의 제안에 따라 쩡꾸오핑과 나 세 사람은 베이징에 모여 동아시아 STS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뒤에 타이완, 싱가폴에도 참여해 해마다 돌아가며 STS 회의를 하고 있다.

작년 말 서울에서 열린 STS 회의에서 5년 전에 나온 나카지마의 역저 『사회 속의 과학』을 받은 것은 큰 기쁨이었다. 이 책은 고대에서 현대까지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사회적 맥락에서 탐구한 보기 드문 책이다. 나카지마의 도쿄대 후배 김성근 전남대 교수(과학기술사)의 산뜻한 번역으로 ‘도서출판 오래’에서 한국판이 나온 것은 축하할 일이다. 나는 섭외와 교정을 열심히 도왔고 판촉에도 뛰어들 작정이다. 내가 이렇게 열을 올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나는 1970년부터 「과학과 사회」 강의를 해 왔는데 영어 교재를 쓰는 것이 불편했다. 1981년 한국에 온 일본의 원로 과학사학자 나카야마 시게루는 김포공항에 내리자마자 막 나온 저서 『과학과 사회의 현대사』를 줬다. 이 책은 이듬해 이필렬, 조홍섭의 공역으로 ‘도서출판 풀빛’에서 나왔다. 나는 이 책과 조홍섭이 엮은 『과학기술과 인간해방』을 교재로 정년퇴임할 때까지 「과학기술과 사회」 강의를 했다. 나는 나카지마의 새 책이 한국에서 큰 구실을 할 것을 믿는다.


송상용  한림대 명예교수·과학사/과학철학
철학연구회장, 한국과학사학회장, 한국생명윤리학회장을 역임했고 현재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종신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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