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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소홀했던 연구 분야 집중 탐구… 전문가들 "매몰변수도 고려해야"
해방 후 소홀했던 연구 분야 집중 탐구… 전문가들 "매몰변수도 고려해야"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3.03.18 12: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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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적 가치 재정립과 한국학 연구방향 제시
일러스트 돈기성

한중연은 지난해부터 한국학 연구가 어떻게 돼 왔는지에 대해 최근 5년의 자료부터 거슬러 해방 직후까지 시대별로 연구를 시작한다. 세종대왕 이전까지 조선의 과학기술이 일본보다 우월했을 것이라는 가정을 증명하고 싶다고 말하는 정정길 한중연 원장은 해외로 수출하는 국내 제품을 예로 들었다. 그는 “싼 인건비로 10년 전만해도 일본 기술을 흉내내서 국제경쟁력이 있었지만 지금 중국이 그 자리를 넘보고 있다”라며, “가격경쟁력을 획득한 중국은 머지않아 공자, 유학, 4천 년 북경문명을 자국제품에 덧입혀 문화대국에서 싹이 나온 제품이라고 이야기할 것" 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경제부흥을 이끌었던 한민족의 과학적 창의성이 자칫 값싼 인건비 덕분으로 치부될 것을 경고한 것이다.

한중연이 추진하는 세 가지 과제를 살펴보면, 우선 해방 이후 어떤 주제가 가장 많이 연구됐고, 어떤 주제가 소홀히 다뤄졌는지 검토하는 ‘한국학 연구정보의 집대성을 위한 연구지형도 구축사업’ 이 있다. 매우 방대한 규모의 이 사업은 최근 5년간 발표된 연구 성과를 대상으로 한중연 교수와 대학원생들이 연간 2만여 편 규모(국사, 고문헌관리, 민속학, 인류학 등 15개 분야)의 논문을 분석할 예정이다. 총 50여 명의 연구진이 투입돼 인당 320여 편의 논문을 분석한다. 리뷰 결과는 전산화되고 모두 D/B화 된다. 구축된 정보는 다시 거시적 차원에서 분석 후 그 결과를 학술회의에서 보고하고 총서로 발간할 예정이다.

한중연은 대학원대학이라 교수들의 수업시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그럼에도 만만치 않은 논문 양에 대해 한도현 한중연 연구처장 “교수들이 연구비를 일절 받지 않고 강의 대신 책임연구과제로 대체하는 형식이기에 불만도 있다”라고 말하며 “올 한해 사업을 전개해보고 세부전공이 너무 좁아서 커버하지 못하는 분야에 대해서는 외부 교수를 초빙하는 방식도 고려중이다”라고 말했다. 경제학처럼 논문이 많은 분야와 민속학처럼 논문이 적은 분야에 대한 형평성도 고려해야하는 것도 풀어야할 과제다.

▲ 일러스트 돈기성

 

일인당 연간 논문 300편 이상 분석토록

두 번째 과제인 ‘글로벌 시대의 한국적 가치와 문명연구’ 는 한국인의 정서와 생활에 담긴 여러 ‘가치’를 검토하고 그것이 글로벌 시대에 갖는 의미를 탐구하기 위한 사업이다. 지난해부터 시작한 이 사업은 2013년, 한국인의 합리성과 창의성, 역동성과 공공성을 확인하기 위해 ‘한국인의 가치와 공공의식’, ‘한국인의 과학적 합리와 문화역량’의 2개 영역에서 10개 과제를 발족했다(표 참조). 총 92명의 국내외 석학(국내 62명, 일본 23명, 중국 7명)이 참여한 10개 과제팀들은 현재 고대·고려·조선시대의 ‘공공의식’ 및 대장경, 금속활자, 동의보감, 개성 복식부기 등 한국인들의 대표적 문화유산에 대한 연구를 진행중이다.

모든 과제팀은 지난해 국제학술회의를 통해 연구 성과를 발표했다. 수십여 차례의 콜로키움을 통해 발표된 우리 역사 속 과학·창의성과 공공성의 우수성에 대한 2년간의 연구 성과는 팀당 2권씩의 단행본을 통해 출판될 예정이다. 외국학계의 수요가 높다는 점도 확인됐다. 한국적 가치의 세계사적 위상을 확인하기 위해 모든 과제팀들이 동아시아 비교연구를 목표로 일본, 중국의 여러 연구진과 공동연구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연간 9억 원의 예산으로 진행되는 이 사업은 오는 2014년부터는 진취성, 배려성, 개방성 등 다양한 키워드로 더욱 확대될 계획이다. 한중연은 이 사업을 통해 한국인의 문화적 역량이 세계를 향해 발산된 역사적 사례를 발굴하고 그 안에 숨은 창의적 사고를 재확인함으로써, 한국사와 한국문화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불식하고, 주변국의 역사왜곡에 강력하게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허울만 좋은 명분으로 남지 않으려면

마지막으로 추진하는 사업은 ‘한국적 가치의 재정립: 한국의 정신적 가치·시민정신 발전 연구 사업’ 이다. 한국의 경제 발전 수준에 맞는 도덕적 문화국가, 선진복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그에 부응하는 정신적 자본에 대한 사업이다. 이는 한중연의 전신인 ‘정신문화연구원’의 기치와도 밀접히 맞닿아 있는 지점이다. 한중연은 한국적 가치의 발굴이라는 목표 아래 ‘한국적 가치의 재정립을 위한 기획연구’와 ‘한국적 가치의 재정립을 위한 정신자본 연구’ 영역에서 3억원을 투입해 사업을 진행한다.

‘한국적 가치의 재정립을 위한 기획연구’는 총 3개의 사업으로 나뉘어 진행되는데, 먼저 한국의 역사문화적 전통, 그리고 그 속의 정신적 가치에 대한 기존의 연구성과를 검토해 ‘한국적 가치의 지형도’를 작성한다. 다음으로 그러한 지형도에서 추출된 대표적 ‘한국적 가치’들에 대한 오늘날 한국인들의 인식을 조사하는 ‘현대 한국의 시민정신 실태조사’를 시행한다. 마지막으로 ‘시민의식지표사업’의 2014년 발족을 위한 기획 연구를 수행한다. 세 번째 사업의 예비조사를 위한 과제를 공모했다고 말하는 한도현 연구처장“통계청 사회지표조사나 성균관대의 KGSS 한국일반조사처럼 한중연에서도 매년 연구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라고 말하며 “미국 미시건대의 잉글하트 교수의 세계가치관 조사나 유럽의 유로바로미터를 벤치마킹해 이것을 한국적 맥락으로 해석해내는, 동아시아의 역사문화적 맥락이 보여지는 모델이 개발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세 사업 중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업은 두 번째 과제인 ‘글로벌 시대의 한국적 가치와 문명연구’ 뿐이다. 나머지 분야도 큰 그림은 있지만, 첫 단계의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연구틀이 잡혀질 전망이다.

한중연의 이번 사업추진에 대해 고영진 광주대 교수(사학)“그동안 무계획적으로 추진했던 것을 제대로 한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다”라고 평가하며, “다만, 예전 정신문화연구원 시절로 회기하지 않기 위해서는 해외한국학에 대한 정리도 함께 심층적으로 정리하고, 동아시아의 맥락에서 비교연구도 병행해야 한다.”라고 제언했다. 한국인의 가치가 이래서 특별하다고 제시할 것이 아니라 일본, 중국과 비교해 한국인은 이렇다라고 말할 수 있을 때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고 보편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연구관리 정책 전문가인 한 교수 “한중연은 한 기관에서 연구와 교육, 지원사업까지 겸하는 유일한 기관인데 모든 분야를 골고루 잘 하지 않는 이상 매몰변수가 나올 수밖에 없다”라고 말하며 “해외한국학 지원의 경우도 먼저 사람을 키우고, 외국의 한국학 연구자들에게 한국에서의 일자리를 창출시켜줘야하는 선순환 사이클에 대한 고민을 좀 더 해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국학 연구의 새 틀을 짠다는 대의가 허울만 좋은 명분으로만 남지 않을지 학계의 기대와 우려가 교차되고 있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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