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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f-com’과 학문 균열내기
‘aff-com’과 학문 균열내기
  • 권명아 동아대·국어국문학과
  • 승인 2013.03.13 11: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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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思

충원율, 취업률 등 이른바 교육부 지표가 모든 것을 잠식하고 착취하는 오늘날 대학사회에서 ‘인문학은 생산성이 없다!’는 말을 듣는 것은 이제 일상적이 돼 버렸다. 인문학자나 인문학을 전공하는 학생들 모두 이런 규정 속에서 무기력해지거나 분노를 곱씹지만 별다른 대안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별다르지 않을 수도 있으나 많은 인문학자와 연구자들은 새로운 별자리를 만들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aff-com’이라는 이름의 내가 속해 있는 연구 모임 역시 이런 별다른 자리를 모색하는 모임 중 하나다. 아프꼼의 출발점은 저런 분노와 무기력을 곱씹거나, 거기 침잠하는 수동적 휩싸임으로 내버려두지 말고 다른 것을 만드는 에너지로 삼아보자는 발상에서 시작했다. 나는 때로 이것을 속된 말로 ‘적들에게 감사하자!’는 모토로 말하기도 한다. ‘인문학은 생산성이 없다!’는 ‘적’들의 규정과 거기서 비롯되는 분노와 무기력을 고스란히 돌려주면 남는 것은 파국뿐이다.

그러나 그 분노와 무기력을 잘 받아 안아서(파토스란 어원적으로 받아 안다는 뜻이다) 다른 것으로 만들어 이 세상을 향해 되돌려줄 때 그것은 더 이상 파국과 복수나 무기력이 아닌, 다른 세상의 형상이 될 수 있다. 아마 이런 말이 듣는 이들에게는 백일몽이거나 낭만적인 공상으로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아프꼼의 지난 세월과 시도, 그리고 오늘날의 자리는 이것이 공상만은 아니라는 점을 입증하는 한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학문적으로 보자면 아프꼼의 이러한 이론과 실천은 정동(affect)과 정념(pathos)을 키워드로 삼아서 타자로 열린 지평 속에서 새로운 관계와 주체성을 구축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일련의 연구들과 맥을 같이 한다. 들뢰즈와 스피노자의 논의를 화두로 삼아 기존의 페미니즘과 젠더 연구, 서발턴 연구와 문화연구 등 많은 결들이 이러한 연구에 결합돼 있다.

실천적 차원에서는 기존의 국민국가와 자본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관계와 삶의 양식으로서 어소시에이션을 구상하는 실천적 모색들도 아프꼼의 이론과 실천의 맥락이 닿아있는 지점이다.

보다 현실적으로 아프꼼은 대학이나 학회와 같은 기존의 학벌중심과 지연(수도권 중심)으로 강력하게 구축된 학문장이나 인문학의 공간을 이와는 다른 방식으로 전환시켜서 새로운 결속의 원리를 구상하고 이를 현실화하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학문장은 수도권 중심주의의 폐해를 전형적으로 답습할 뿐만 아니라 이를 재생산하는 가장 강력한 제도다. 따라서 이른바 지방대 출신 연구자들이 서울의 몇몇 거대 대학 중심으로 재생산되는 학문장에 자신을 동등하게 기입할 수 있는 가능성은 원천적으로 봉쇄돼 있다. 게다가 지방의 경우 학문장은 특정 대학을 중심으로 배타적으로 독점돼 있는 처지여서 지역 연구자들의 입지나 선택지는 매우 제한적이다.

아프꼼은 매우 작은 모임이지만, 이런 학문장의 주어진 조건에 균열을 내기 위한 상징 투쟁을 중요한 이론과 실천의 방법으로 삼고 있다. 나는 이것을‘지렛대 이론’이라고 스스로 이름을 붙여보기도 했다. 즉 나보다 더 큰 물건을 혼자서 들어 올릴 수는 없다. 그러나 나에게 하나의 좋은 지렛대가 있고, 내가 들어 올릴 물건의 정확한 포인트에 그것을 기입할 수 있다면 나는 나보다 엄청 무거운 저 대상을 들어 올릴 수도 있다.

하여 아프꼼은 너무나 거대하게만 보이는 이 학문장에‘나’와‘너’가 서로에게 지렛대가 돼 주고, 디딤판이 돼서 저 거대한 학문장, 제도, 혹은 세상이라는 것을 언젠가는 들어 올릴 수 있다는 꿈을 꾸고 있다. 해서 그날, 이 세상을 들어 올릴 수 있는 그날을 꿈꾸며 아프꼼은 오늘도 이 세상을 요리조리 살펴보고 연구하고, ‘나’와‘너’가 이 세상 속에서 경쟁하고 견제하는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지렛대가 되고 디딤돌이 돼서 이 세상을 들어올려서 다른 세상을 만들 방법을 나누고 있다.


권명아 동아대·국어국문학과
연세대에서 박사를 했다. 연구모임 아프꼼(aff-com)의 오거나이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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