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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 사회철학’ 구호 뒤에 숨은 학문적 허약함 경계해야”
“‘한국적 사회철학’ 구호 뒤에 숨은 학문적 허약함 경계해야”
  • 교수신문
  • 승인 2013.03.11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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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대회 참관기_ 사회철학자 역할 고민한 사회와철학연구회 심포지엄

사회와철학연구회(회장 권용혁 울산대)는 지난달 22일 연세대 위당관에서 집담회 형식의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한국에서 사회철학자들의 역할과 위상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논의”함으로써 “앞으로 사회철학자들이 떠맡아야 할 시대적인 임무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기 위한 자리였다. ‘한국에서 사회철학자란 누구인가?’ 달리 말해서 ‘지금 여기’의 사회철학자는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그것이 2013년 심포지엄의 주제였다. 이러한 자기 성찰적 물음에는 물론 ‘지금까지 한국의 사회철학자는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라는 자기 인식 및 ‘그와 같은 직무유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라는 자기 평가가 배경으로 놓여 있었다.

오랜 기간 ‘대중을 위한 인문학’을 강의해온 철학자 강유원은 한국 사회에서 요구되는 것은 흔히 생각하듯 ‘알기 쉬운’ 인문학 콘텐츠가 아니라 오히려 ‘良質의 고급’ 인문학 콘텐츠임을 역설했다. 현재 한국 학계에서 횡횡하는 논문式 글쓰기에 사망선고를 내린 이택광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영미문학비평)는 오늘날 철학이 해야 할 일은 철학 자신의 터전을 확보하는 것이며 아마도 그것은 ‘철학하기를 실천하는 철학자의 스타일’을 창출함으로써 가능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국 사회철학의 ‘과거’는 김석수 경북대 교수(철학과)에 의해 제시됐다. 한국의 철학은 때론 독재 권력에의 負役으로, 때론 사회 현실의 극단적 白眼視로 한국의 사회와 만났으며 결국 ‘사회에 대한 철학’은 등장할 여지가 전혀 없었다.

이러한 사회철학의 不在는 학계와 대학에서 관념주의철학과 실존주의철학의 과도한 비대화와 맞물려 있으며, 이와 같은 불합리한 철학 생태계는 한 세기 전 日帝의 교육정책, 즉 한국의 지식인이 한국의 사회 현실에 눈감도록 만들고자 했던 식민지 교육정책의 결과이다. 과거의 진단은 가감 없이 현재에도 적용되는바, 이러한 진단을 토대로 김석수 교수는 한국 사회철학의 비정상성을 극복할 것을 강력한 어조로 요구했다. 그와 같은 요구에 부응하려는 하나의 사례가 나종석 연세대 국학연구원 HK교수에 의해 제시됐다. 그에 따르면, 한국의 사회철학은 동아시아 철학의 전통 위에서 구축되어야 하며 그를 위해선 먼저 서구 중심주의에 의해 포획·왜곡돼온 동아시아 철학을 再專有해야 한다.

철학의 비정상성을 넘어서
‘지금 여기의’ 사회철학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에 대한 다양한 대답이 토론 시간에 제시됐다. 가장 원론적인 대답은 ‘현실 사회에 대한’ 철학의 창출, 즉 구체적 사회 현실의 분석에서 출발하고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 및 그것에 배태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책을 제시하는 사회철학의 창출일 것이다. 하지만 해결해야 할 문제들의 시급성은 사회철학자에게 그와 같은 먼 길을 허락하지 않으며 따라서 발달된 서구 이론을 수입·활용하는 것이 오히려 ‘지금 여기의’ 사회철학자가 가져야 할 바람직한 자세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양극단 사이의 중간지점에 서있는 신중한 학자들은 지난 수백 년 동안의 ‘우리의’ 사회철학을 추적·복원함으로써 ‘우리의’ 사회철학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그것을 토대로 ‘미래의’ ‘한국적’ 사회철학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보다 장기적 기획이 선행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참가자 모두는 한편으론 모든 대답들에 동의하면서도 다른 한편 그것들 사이의 우선순위에 대해선 서로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다. 다섯 시간의 발표와 토론은 십 년 전의 그것과 너무도 닮아 보였다. 또한 십 년 전의 발표와 토론은 30여 년 전 한국철학사상연구회(회장 김성민 건국대)가 창립되던 무렵 사회철학자들이 공유하고 있던 문제의식과 너무도 닮아 있었다(토론을 보고 있는 것은 그야말로 데자뷔의 반복이었다).

그렇다면 지난 30년 동안 한국의 사회철학자는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단 말인가? ‘우리의’ 사회철학의 구축을 위해 그들은 정기적인 립서비스 외엔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단 말인가? 학술대회장을 짓누르던 무거운 열패감은 ‘그렇다’라고 말하고 있는 듯했지만, 토론 시간이 조금만 더 주어졌었다면 아마도 다른 대답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의 사회철학자는 폭발적으로 증가했으며 그중 상당수는 ‘서양의’ 사회철학을 배우기 위해 자신의 청춘을 헌납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의 진정성은 ‘우리의’ 사회에 대한 애정과 ‘동시대인’에 대한 책무의식에 뿌리박고 있으며, 그것은 또한 그들의 학문적 열정의 원천이기도 하다. 실제로 그들은 한국의 사회 현실에 무관심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끊임없이 연구해 왔다. 다만 철학적 논의의 특성 때문에 그들의 활동이 철학의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을 뿐이다.

책무의식에 뿌리박은 진정성의 의미
가령 ‘수도권 집중으로 인해 야기되는 지방의 붕괴 현상’을 이해하고 해결책을 찾기 위해 한국의 사회철학자는 예를 들어 롤즈의 『정의론』을 연구하고 그곳에 있는 수많은 주제들 중에서 특히 ‘차등의 원칙’을 선택해 학계에 제시한다. 그의 연구 성과는 철학에 인접한 학문분과에서 시작하여 점차 학계 전체로 확산되고 시간이 지나면 학문적 전문성을 갖지 않은 사람들의 입에도 오르내리게 된다. 만일 누군가가 ‘수도권 집중’을 롤즈의 입을 빌어 비판하게 된다면, 그러한 비판은 분명 사회철학자가 아니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바로 이것이 철학이 사회 현실과 만나는 고유한 방식이며 가장 오래되고 가장 일반적인 ‘철학의 사회적 작동 방식’이다. 지난 반백 년 동안의 한국사회에서 들뢰즈의 ‘차이’가 그러했으며 헤겔의 ‘변증법’이 그러했으며 플라톤의 ‘올바른 국가’가 그러했다.

한국의 사회철학자가 아니었다면 한국 사회는 그러한 낯선 개념을 알지 못했을 것이고 그 개념으로만 표현될 수 있는 한국의 현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사회 문제의 이해를 위해 요구되는 개념과 이론을 가장 추상적인 차원에서 제공해야 하는 사회철학자에게 그것들의 확산 역시 떠맡기는 것은 분명 지나친 조치이며 많은 경우 바람직하지 않기도 않다. 30여 명의 회원은 자리를 옮겨 ‘함께 어울려 마시는’ 두 번째 심포지엄을 가졌다. 그때야 만날 수 있었던 즐거움은 한국의 사회철학자가 자신에게 주는 위로라기보다는 스스로에 대한 다짐으로 보였다. 다른 나라의 사회철학자에게선 찾아볼 수 없는 가혹한 자기검열은 종종 불필요한 열패감으로 귀착되곤 하지만, 진정 우리가 경계해야 하는 것은 오히려 한국적 사회철학의 구축이라는 ‘선언적 요구’ 뒤에 숨어서 자신의 게으름에 면죄부를 주려는 학문적 허약함일지도 모른다.

 


이충진 한성대·철학
필자는 독일 필립스대에서 박사를 했다. 주요 논문으로 「칸트의 正義論」, 「헤겔의 絶對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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