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亡者의 저승길 함께하는 영혼의 길동무… 조상의 生死觀 엿볼 수 있어
亡者의 저승길 함께하는 영혼의 길동무… 조상의 生死觀 엿볼 수 있어
  • 김영철 편집위원
  • 승인 2013.03.11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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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의 源流를 지키는 사람들 2. 목인(木人; 상여장식 인형) - 김의광 목인박물관장

 

▲ 남사당패 목인

 

한국 전통문화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뇌리에 떠오를까. 어느 프랑스 여행자가 한국 전통문화를 상기해주는 현대적 물품이 지나치게 획일화돼 있다고 지적한 것은 어떻게 생각할 수 있을까. 일례로 인사동에서 구입할 수 있는 전통상품을 전주 한옥마을에서도 쉽게 구입할 수 있다면, 이것은 아마도 우리 문화의 원류를 잘못 이해했기 때문에 빚어진 현상일 것이다. <교수신문>은 김양동 계명대 석좌교수의 ‘한국 고대문화 원형의 상징과 해석’과 함께 격주로 ‘우리 문화의 源流를 지키는 사람들’(이하 ‘원류를 지키는 사람들’)을 기획해 673호부터 연재를 시작했다. ‘원류를 지키는 사람들’은 민화·부적, 무속, 탈춤, 木人, 족보, 단청물감, 장례, 염색 등 전통시대에 형성된 한국 문화를 현대적으로 계승, 재해석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속깊은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우리 문화의 원류를 재인식하기 위한 기획이다. 이번 호에서는 木人 수집·연구자인 목인박물관 김의광 관장을 소개한다. 김영철 편집위원 darby4284@kyosu.net

인생은 흐르면서 변한다. 그래서 人生流轉이라 했다. 인생의 양태가 어떻게 될지 그래서 속단할 수 없다. 반평생을 우리의 ‘전통 木人’ 수집과 연구에 빠져 살아온 김의광 목인박물관장을 보면 그 말의 의미가 실감난다.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대기업 계열사 CEO가 2004년 어느 날 자리를 사임한다. 그동안 발품 팔아가며 모아온 수장품을 대중과 공유하기 위한 박물관 설립에 전념하기 위해서다. 그리고는 결국 2006년 박물관을 세운다. 그가 바로 김의광(64)관장이며, 그 박물관이 서울 종로구 견지동에 있는 목인박물관이다. 그의 인생전환의 키워드인 목인 수집 및 연구의 계기가 있을 것이다.

들어보니 그게 과연 인생의 진로를 바꿀 만큼 중차대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김 관장은 연세대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했는데, 우리 전통 문화유물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 참 멀다. “1975년인가 회사에 다닐 때, 미 8군 군인으로 복무중인 미국인 친구 집을 가게 됐는데, 거기서 그 친구가 소장하고 있는 우리 전통 목조 공예품을 보게 됐는데, 그 게 나에게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지요.”

대기업 계열사 CEO서 수집가로
그 충격은 말하자면 ‘문화적인 충격’인데, 우리의 전통 목조 공예품의 소박한 아름다움에 정신이 번쩍 들 정도였다는 것이다. 서울토박이인 김 관장은 그때 처음 나무로 만들어진 우리 전통 민예품을 접했는데, 그것이 지닌 입체감과 색감, 그리고 정형화되지 않은 파격의 매력에 빠져든다. 충격의 이유가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김 관장의 옛 인터뷰 글을 보니까 이런 대목이 있다. “외국 사람도 한국 전통문화를 알아보고 음미하는데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 자신의 뿌리를 모른 척해서야 되겠냐 하는 생각이 들어서…….” 하여튼 김 관장은 그 때부터 인사동과 청계천 등의 골동품 가게를 뒤지며 모으게 된다.

목인을 만난 것은 어느 시골 마을에 갔다가 신당에 모셔져 있는 인형을 손에 넣으면서부터다. “얼굴에 주름이 많이 가 있는 매력적인 인형인데 해학과 풍자가 넘쳐 났어요. 그것이 목인 컬렉션의 시작이었지요.” 목인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겠다. 목인은 사전적 의미로는 ‘나무로 만든 사람의 형상’을 말 한다. 木偶, 木像, 木偶人으로도 불리 우며 마을 어귀에 세워졌던 장승, 절이나 신당 앞에 모셨던 동자상. 부처상 등도 모두 목인에 포함된다. 그러나 보다 포괄적인 의미로는 사람이나 동물의 형상을 한 우리의 전통 목조각상을 통칭하는 말이다. 이런 관점에서 목인의 범주는 넓다는 게 김 관장의 설명이다.

그는 “상여를 장식하는 인형이나 망자와 함께 무덤에 묻는 명기, 그리고 불상 및 동자상 등 종교용의 인형 등도 목인의 범주에 모두 포함된다”라고 말한다. 특히 상여의 난간을 장식하는 목인은 현세의 기쁨과 슬픔, 죽은 자에 대한 애도와 명복의 뜻을 담아 망자를 좋은 곳으로 안내하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김 관장의 설명에 따르면 목인은 史書에도 나오는 용어로, 세종실록에 물시계인 자격루의 타종을 목인을 만들어 하게 했다는 기록에서 그 근거를 제시했다.

▲ 목상여 목인박물관

목인의 포괄적 의미는 전통 목조각상 통칭
김 관장의 목인박물관은 물론 목인 전반에 관해 수집, 연구, 전시하고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특히 상여를 장식하는 목인이 대종을 이룬다. 쉬운 말로 상여인형이라고 할 수 있는 상여장식 목인은 그 형태와 종류가 다양하다. 형태별로는 각각의 기능을 갖고 있다. 상여에는 사람을 비롯해 많은 형상의 목인이 장식돼 있다. 상여는 비록 시신을 묘지까지 운반하는 도구이지만 망자가 타고 가는 마지막 집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모양도 산 사람의 집처럼 난간과 툇마루 형식을 취했다.

더욱이 망자가 마지막으로 타는 것이기에 산자의 가마보다 훨씬 더 화려하게 꾸며졌는데 이의 한 수단이 바로 상여장식 목인이었다. “우리 조상들의 죽음에 대한 관념은 공포나 두려움보다는 또 다른 출발, 그리고 새로운 세계에서의 새로운 삶에 더 가깝게 이어져 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목인을 만들고 그 것으로 상여를 장식했던 것이지요.” 조선시대 평민들의 상여는 화려했고, 그에 장식되는 용과 봉황 등의 목인들도 많았다. 이승에서 양반과의 신분차별로 누리지 못한 호사를 죽어서 가는 마지막 길에 누려보라는 산 자들의 배려였다. 이런 맥락에서 목인은 특권층보다는 기층민을 포함한 평민층의 숨결이 더 느껴진다는 게 김 관장의 설명이다. 김 관장은 “상여인형은 망자의 마지막 길을 함께 가는 영혼의 길동무로, 망자를 두려움 없이 편안하고 즐겁게 저승으로 보내고자 하는 산 사람들의 배려와 염원이 담긴 상징물”이라며 그 의미를 강조한다. 이 부분에서 상여인형의 종류를 구분해볼 수 있다. 망자에게 저승길을 안내해 주는 목인, 잡귀로부터 망자를 보호하는 목인, 망자가 불편함이 없게 수발을 들어주는 목인, 그리고 저승길의 슬프고 허전해하는 망자를 갖은 유희 등으로 달래주는 목인이 그 것이다.

목인에 깃든 풍자와 해학

▲ 龍首板 목인
저승으로 안내하는 목인은 말하자면 저승사자를 일컫는 것으로, 대표적인 것으로는 호랑이를 타고 명부를 든 선비형상의 목인이 있다. 망자를 보호하고 호위하는 목인으로는 주로 장군형상의 것이 있는데, 도끼를 든 일본 순사형상의 목인도 있다. 재미있는 것으로는 남사당패 재인들이 줄을 타고 물구나무를 선 목인이 있는데, 이는 망자를 위로하고 즐겁게 하기 위한 것으로 ‘살판’으로 불린다. ‘살판났다’에서 유래됐다는 것인데, 김 관장이 아끼는 목인 중의 하나다. “남사당 목인을 보고 있으면 생과 사, 그리고 이승과 저승의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목인을 좋아하는 이유를 김 관장은 이 말로 대신한다. 목인에 깃든 풍자와 해학에서 김 관장은 그런 의미도 읽어내는 것이다.

상여인형의 형태는 크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는 게 김 관장의 설명이다. 첫째, 호랑이, 말, 해태, 봉황 등 瑞獸(상서로운 짐승)나 봉황, 학 같은 錦鳥를 타고 있는 인물상의 목인이다. 이러한 서수나 금조를 타고 있는 인물상들은 망자를 형상화한 선비, 마지막 가는 길을 악귀로부터 호위하는 장군이나 山神, 저승사자, 差使, 그리고 천상의 세계로 인도하는 동자, 동방삭에 이르기까지 매우 폭넒은 인물들이 표현돼 있다. 특히 이들 가운데 호랑이나 말을 타고 있는 기호, 기마 인물상 같은 경우는 악귀를 몰아내는 벽사의 역할은 물론 망자의 신분과 지위를 높여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둘째는 인물상의 목인인데, 상여인형 중 가장 많이 등장한다. 극락왕생을 염원하는 각종 종교적 영향을 받은 신선, 북·장구·꽹과리·바라를 연주하는 악공들, 연주에 맞춰 재주를 부리는 재인이나 남사당패, 그리고 망자를 저승으로 인도하는 사자에 이르기까지 그 역할이나 모습이 다양하다. 이러한 인물 조각상들은 크게 존재하지 않는 설화나 신화 속의 인물들을 형상화한 것들과, 실제 당시의 생활상에서 존재하는 인물들의 모습으로 구분할 수 있다. 셋째로는 龍首板이 있다. 상여의 상단 앞 뒤에 부착하는 반달 형태의 판으로, 귀면 혹은 용면판으로도 불리 우며, 대부분 도깨비나 용의 모습을 하고 있다. 방상시와 마찬가지로 잡귀를 쫓는 벽사의 역할을 하는 목인이다. 새겨진 도상으로 볼 때 크게 ‘도깨비형상’, ‘물고기를 입에 문 도깨비형상’, ‘용의 형상’, 그리고 사람의 얼굴 형태를 한 ‘인면형’ 용수판으로 분류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판 조각상이다. 주로 상여의 난간을 장식할 때 쓰였던 것들로, 꽃과 새가 노니는 내세의 이상향에 대한 염원이 깃들어 있는 판(plate) 형태의 목인이다. 꽃의 종류로는 불교의 영향을 받은 연꽃과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모란을 주로 형상화했다. 꽃과 함께 표현된 물고기는 다산을, 그리고 새는 하늘과 땅, 이승과 저승을 오가며 신의 메시지를 전하는 메신저의 역할을 의미한다고 김 관장은 설명한다.

김 관장의 목인박물관에는 이들 상여인형들이 다른 목인들과 함께 전시되고 있다. 박물관이 전시, 수장하고 있는 목인들은 조선조 후기 것에서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상태가 좋은 것으로 조선조 후기이전 것은 상여와 함께 찾아보기 힘들다. 상여와 목인을 마을에서 喪事 때마다 조립과 해체작업을 통해 공동으로 사용하는 과정에서 훼손된 게 많았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목인에서 나타나고 있는 시대상황이다. “조선시대에 장군이었던 목인이 일제 때는 순사가 되고, 이후는 군인으로 바뀝니다. 시대상황이 목인에 스미는 것이지요. 하지만 오방색을 칠하는 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현대적인 목인에는 페인트로 칠해진 것도 있는데, 그렇다고 오방색을 포기하지는 않습니다. 악귀를 물리치는 벽사의 의미가 사라질 수는 없으니까요.” 김 관장의 목인박물관에는 이들 목인을 보러오는 관람객들이 많다. 우리 옛것에 대한 사랑과 호기심에서 이기도 하겠지만 또 다른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것을 김 관장은 이렇게 설명한다. “상여인형의 경우 그동안 죽음과 관계되는 것이라는 측면에서 이에 따른 선입견과 배타적인 시선으로 그 의미와 가치가 평가절하 됐지만, 최근에 들어서는 상여인형의 화려한 채색과 조각술, 그리고 망자를 좋은 곳으로 보내고자 하는 의미가 깃들인 상징물임이 부각되면서 그 가치와 평가가 새롭게 해석되고 있습니다.”

문화의 원형 밝히는 민속자료적 가치
김 관장은 목인이 소수 지배계층 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다고 강조한다. “양반 계층도 물론 포함되지만, 특히 평민들의 생활풍습과 신앙, 문화 등이 체화돼 그들의 삶이 반영되면서, 그 계층 나름의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고 풍자와 해학을 즐긴 지혜를 엿볼 수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목인은 우리 문화의 원형을 밝히는 민속자료로서의 그 가치가 높습니다.” 그는 또 “목인을 통해 우리 선조들의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 당대 사람들의 생사관을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현재의 사람들이 역으로 그를 통해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라며 목인에 대한 철학적 해석도 빼놓지 않았다.

목인박물관에는 이들 상여인형들 외에 다른 목인들과 그밖의 여러 유물도 많이 전시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불교 불상 및 동자상과 무덤 부장의 각종 목인, 그리고 상여도 상설 전시하고 있다. 지금껏 모은 국내 유물은 6천 점에 이른다. 국내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중국과 네팔, 일본, 인도, 티베트, 미얀마 등 아시아권의 목인도 김 관장의 수장 대상이다. 이게 무려 1만 점이 넘는다. 여기에는 불교와 도교 등 각종 종교의식의 도구와 인형, 마스크, 지팡이 등 희귀한 유물도 포함돼 있다. 나무로 된 유물만 있는 것도 아니다. 돌로 만들어진 국내외 유물도 많다. 김 관장은 박물관을 확장해 이들 수장 유물의 상설 전시도 계획하고 있다. 아울러 해외 전시도 그의 머지않은 계획 중의 하나로 잡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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