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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 달고 문신 새긴 ‘생명의 자리’
고리 달고 문신 새긴 ‘생명의 자리’
  • 교수신문
  • 승인 2013.03.11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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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79_ 배꼽

 
‘배꼽 빼다’라거나 ‘배꼽 쥐다’란 말은 하는 짓이 하도 어이가 없거나 어린아이장난 같아서 가소롭기 짝이 없을 때를 말하고, 아이를 낳은 뒤에 탯줄을 끊는 것을 ‘삼 가르다’라 하며, ‘배꼽도 덜 떨어지다’는 막 끊은 탯줄자국이 채 떨어지지 않은 어린애를 칭하고, 무엇을 잔뜩 붙잡을 때 ‘탯줄 잡듯 한다’고 한다. 이렇게 배꼽과 탯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탯줄을 먼저 논하는 것이 순서이겠다. 탯줄[臍帶]은 한 마디로 모체자궁의 태반과 태아의 배꼽을 잇는 굵은 줄(띠)로 모체의 산소와 영양분, 비타민, 호르몬들이 든 피가 지나는 길이다.

‘태아의 먹이’인 이것들이 태아의 전신을 도는 ‘태아순환’을 하고, 그 끝에 만들어진 이산화탄소나 요소 등의 태아대사산물(노폐물)이 제대를 통해 고스란히 모체로 든다. 말해서 母子一體다! 胎盤은 태아의 漿膜과 임신부의 자궁(새끼보)내벽이 합쳐져 형성되고, 탯줄은 ‘생명의 뿌리’인 태아가 5주 될 즈음에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알다시피 태반에서 양분을 얻어 새끼가 되어 태어나는 태생하는 동물은 오직 포유동물뿐인데 당연히 사람도 태생한다. 때문에 젖빨이동물에만 탯줄자국인 배꼽[제·臍·navel]이 있으며, 사람은 그 흉터가 썩 또렷하지만, 동물에 따라 납작하거나 밋밋하고, 가는 금 같거나 털에 가려 거의 보이지 않는 것도 있다.

저런? 다른 동물들은 새끼를 낳자마자 탯줄을 입으로 깨물어 자르고, 태반을 서둘러 먹어치우니 이는 태가 양분이 되는 것은 물론이요, 포식자들이 냄새를 맡고 달려드는 것을 방비하자는 것. 영검한 어미들이다! 그리고 탯줄에 든 혈액을 臍帶血(cord blood)이라 하는데, 거기엔 미숙하고 분화하지 않은 줄기세포가 들어있어 여러 각도로 쓰이고, 혈액을 만드는 造血母細胞 또한 혈액질환, 골수이식들에 쓴다. 탯줄은 지름이 약 2cm, 길이 50cm 정도로 두 개의 동맥과 한 개의 정맥이 지나며, 빨리 자라는 정맥이 동맥 주위를 돌돌감기 때문에 대부분 왼쪽 방향으로 구불구불 꼬인다.

분만 후 2분 이내에 탯줄박동이 멈추며, 서둘러 탯줄을 칭칭 동여매고 가까이를 절단하는데, 동여맴이 늦어지면 태반에서 신생아로 지나치게 혈액유입이 일어나 여러 부작용이 생긴다고 한다. 또 解産하고 10~30분 사이에 임산부의 태반과 거기에 붙은 나머지 탯줄이 자궁에서 탈락하니 이를 後産이라 한다. 이렇게 태어남은 마무리 된다. 탯줄 자름하고 나면 다들 안절부절못한다. 네 다리를 발짝거리며 기를 쓰고 들입다 내지르는 갓난아기의 첫 울음소리인 呱呱之聲이 다부지고 세차면 튼실한 아이다. 으앙 으앙 으앙!!! 여태 羊水(모래집물)에 잠겨있어 쭈그러든 풍선 같았던 허파를 확~~,좍~~ 펴게 하는 것이 이 소리 지르기다.

갓난이가 ‘희미한 모기 소리’를 내거나 숫제 울지 않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 것이다. 여태 탯줄을 통해 엄마의 산소와 양분들을 얻었지만 이제 막 탯줄이 잘려졌으니 비로소 숨통이 막히고 말았다. 하여 이젠 제가 알아서 숨을 쉬어야 한다. ‘죽을 힘’을 다해 울어 제치는 순간 지금껏 우심방에서 좌심방으로 흐르던 구멍[卵円孔]이 막히는 등 신체에 여러 생리적 변화가 일어나며, 이런 구멍 하나만 제대로 막히지 못해도 심장판막증이 되고 만다. 정녕 나도 고함지르며 이렇게 태어났고, 2~3일 안에 태변을 쌌었고… 낯설고 물 선 이승에 당신은 태어났소이다! 축하하면서, 이제 산전수전공중전 다 겪어야 하는 험난한 앞길이 그대를 기다라고 있나니…. 이제 배꼽이야기 차례다. 배꼽은 卵黃囊과 尿膜에서 만들어지고, 신생아에 붙어있던 탯줄이 떨어지면서 생긴 흉터자리다. 달이 차 만삭이 가까워 오면 임부의 배꼽도 따라서 볼록 튀어나온다.

마땅히 작아야 할 것이 더 크거나, 적어야 할 것이 많아 주객이 전도 될 때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하지. 배를 쑥 내밀고 두 팔 흔들며 거만하게(?) 걸어가는 생명을 잉태한 妊婦의 모습이라니! 무엇이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겠는가. 그런데 극도로 영양상태가 좋지 않은 어린아이들도 배불뚝이가 되니 몸에 물이 차는 浮腫인 물배다. 물은 저장액(저 농도)에서 고장액(고농도) 쪽으로 스며드는(삼투)성질이 있으니, 핏줄 속에 혈장단백질이 부족해(저 농도) 조직의 체액을 빼내지 못하고 몸에 물이 고인 것이 부종이며, 간이 좋지 않아도 마찬가지로 혈중단백질 부족으로 腹水가 차니 그럴 때 알부민단백질을 주사하여 혈액농도를 올려줘 체액을 뽑아낸다.

배꼽은 일종의 흔적기관으로 특별히 수행하는 기능은 없다. 배꼽은 ‘배꼽유두’와 ‘배꼽 테’로 나뉘는데, 배꼽유두는 피하조직이 약해 배꼽 가운데가 불쑥 올라온 부위를 말하며, 배꼽 테는 배꼽유두의 테두리부위(배꼽노리)를 이르는 것으로, 통상 생후 며칠 지나면 배꼽노리가 좁아지게 되는데, 그렇지 못하고 널찍이 남아있으면서 배꼽탈장 일으키는 수가 있다. 어릴 적에 여름 빼고는 목욕을 거의 못한 지라 배꼽에 쇠똥 같은 때가 끼니 그것을 손톱이나 작은 꼬챙이로 발라내곤 했지. 고개 내려 처박고 배꼽 때를 빼내다가 엄마한테 들켜 혼줄 나곤 했으니, 우리엄마도 배꼽자리가 얇고 여린 조직임을 알고 계셨던 것. 필자 또한 그때만 해도 하도 빼빼해 배꼽이 불룩 ‘나온 배꼽(outie navel)’이라 그 짓을 했는데 나이 먹어 뱃살이 뒤룩뒤룩 붙으니 옴폭 ‘든 배꼽(innie navel)’이 되고 말았다.

이걸 ‘즐거운 비명’이라 해야 하나? 실은 비만에 따른 대사증후군이란 판정을 받고 小食에 운동으로 군살빼기에 죽을 맛이다. 두 번 살아볼 수 없는 하나뿐인 몸인지라…. 옛날부터 배꼽을 몸의 정중심부라 ‘생명의 자리’로 보았으며, 바로 아래에 丹田이 있으니 건강하려면 배꼽을 수련하고 늘 따뜻하게 하라한다. 그런데 웬걸, 망측하고 아니꼽게도 배꼽티에 배꼽춤, 배꼽노출은 고사하고 민망스럽게도 이 ‘생명줄의 들머리’에 구멍 뚫어 고리 달고 문신까지 한다니, 고얀 지고. 딱 그렇다.

식물열매의 꽃받침이 붙었던 자리도 배꼽(臍)이다. 일테면 사과꼭지(탯줄)가 사과나무(모체)와 사과열매(태아)를 이어주는 양분이 지나가는 길이요, 깊게 움푹 파인 사과배꼽이 청상 내 배꼽이로다. 암튼 사람(동물)과 사과(식물)가 쏙 빼닮았다! 사물을 정확히 보고 싶으면 시를 쓰라했겠다. 속절없이 사과되어 사과를 바라보는 赤心이 바로 詩心인 것을! 이래저래 ‘배꼽만큼 남은’ 앞날을 ‘배꼽 덜 떨어진’ 철부지로 살아보리라.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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